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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옛 관문

올레18길(하), 화북에서 조천까지

by 정순동


뒤로 오현중ㆍ고등학교를 두고, 화북천을 따라 걷는다. 비석거리를 지나서 화북동 중심지로 들어간다. 고려 원종 11년(1270) 삼별초군이 제주를 점령할 때 동제원(오현고 근처)에서 관군과 전투를 한 기록, 고려 충렬왕 6년(1300)의 별도현 설치 기록, 선조 34년(1601) 김상이 기록한 남양록의 별도포라는 명칭 등으로 볼 때 화북동에는 최소 40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화북동 비석거리

지방관들이 부임하고 이임하면서 제주의 관문이었던 화북포구를 거쳐 갔다. 이곳 비석들의 비문에는 제주를 떠나는 관리들이 자신의 공적을 과시하는 글을 남겨 놓았다.


제주의 관문이었던 화북포구


화북포구. 별도포구라고도 부른다. 제주 목사 김정이 직접 돌을 나르면서 독려하여 축조한 포구다. 지금은 현대식 방파제가 포구를 삼중으로 둘러싸고 있다.

화북포구(별도포구)

조선시대 화북포구는 조천포구와 함께 육지, 일본 등과의 교류로 크게 번성했다. 제주에 새로 부임하는 목민관들은 이곳으로 들어왔다. 김정희, 최익현 등 제주로 유배 온 사람들도 모두 이 화북 포구를 통해서 들어오고 나갔던 사연이 많은 바닷길이다.

곤을동에서 본 화북동 마을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제주공항과 제주항에 '제주의 관문'의 자리를 내주었지만 옛 관록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이 씨 와가, 김 씨 와가 등 오래된 기와집이 보존되고 있다.


옛 화북진 터에는 화북 청소년문화의 집이 들어서 있다. 조선 숙종 4년(1678) 제주 목사 최관에 의해 만들어진 화북진은 군사 방어 시설이다. 동서 2문, 북성 위에 망양정도 지었다. 진지 안에는 진사, 공수, 마방 사령방, 무기고 등이 있었다. 후에 객사인 환풍정을 세웠다.

화북청소년문화의 집, 옛 화북진(제주도특별자치시 기념물 제56호) 터

해신사로 간다.

순조 20년(1820), 제주목사 한상묵에 의해 설립된 해신사는 매년 정월 대보름이나 배가 출범하기 전에 제사를 드리던 곳이다. '해신지위'라고 새긴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들어 관헌이 주관하는 제의는 폐지된다. 해신제는 화북마을 어부와 해녀들을 중심으로 그 주체가 바뀐다. 제의 성격도 화북마을 전체의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제로 변하여 음력 1월 5일에 제를 올린다.

해⁠신사(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2호)

별도연대. 주변에 갯무가 꽃을 피워 바람에 하늘거린다.

연대는 봉수와 함께 통신을 담당했던 옛 군사시설이다. 별도연대는 직선거리의 동태를 살피고 해안의 경계를 담당하는 연변봉수로 원당봉수, 사라봉수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별도연대(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9호)


벌랑포구와 삼양 검은 모래 해수욕장


벌랑포구. 파도 소리가 서로의 파도를 가르는 듯하여 칠 벌(伐), 물결 랑(浪)을 이어 '벌랑'이라 한다. 일주동로 북쪽에 자리 잡은 삼양3동은 3면이 바다다. 별도환해장성을 돌아 벌랑마을로 들어선다. 덩이괭이밥이 진한 분홍색의 꽃을 송이송이 달고 있다. 벌랑마을을 꽃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벌랑마을

포구 앞의 새각시물에 정인수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동네 사람들이 마시고 멱 감고 빨래하던 용천수다. 그 생김생김이 여자의 몸매를 닮았다고 옛사람들은 새각시물이라 이름을 지었다.


벌랑 새각시물에서

술잔을 들면

술잔에 파도가 친다.


서동 파도는 벌랑!

중동 파도는 거문여!

동동 파도는 사근여!


파도가 잦아들면

다시 누각 아래로

새각시 멱 감는 소리ㆍㆍㆍㆍ


<벌랑 새각시물> 시인 정인수


삼양해수욕장. 올레18코스의 중간 기착지다. 백사장 가장자리에 스탠드가 있고, 방조제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검은 모래사장 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은 수반처럼 깨끗하다. 육지에서 풍화되어 내려온 검은 현무암 성분과 바다에서 올라오는 조개껍데기 부스러기가 함께 쌓여서 검은 모래처럼 보인다.

삼양 검은모래해수욕장

제주 시내에서 동쪽으로 6㎞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해수욕장. 물이 깨끗하고, 반짝이는 검은 모래가 신경통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제주시민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1970년대 후반 인근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해수욕장은 폐쇄되고, 모래찜질하는 사람들과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찾고 있다.


삼첩칠봉의 원당봉 산 모랭이 '신촌 가는 옛길'


가름 선착장에서 삼양 방파제 쪽으로 방향을 잘 못 잡아 한참을 둘러서 대유아파트 뒤편 삼양1동 어린이공원을 찾아간다. 어린이공원 북동쪽 모서리가 원당봉 입구다. 원당봉(169.8m)은 서로 다른 종단의 조계종 불탑사, 태고종 원당사, 천태종 문강사를 품고 있다. 능선 셋, 언덕 일곱으로 알려진 '삼첩칠봉'의 원당봉은 굼부리 안에 습지(연못)를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오름 중의 하나다.


들머리의 불탑사를 들른다.

원제국의 기황후가 황자를 얻기 위해 불공을 드렸다는 절, 원당사지를 먼저 만난다. 기황후의 득남으로 아들을 원하는 이들의 기도처로 명성이 높았던 원당사는 17세기 중엽 폐사되고 불탑도 땅에 묻힌다. 1914년 불탑사로 재건되었지만 4.3의 혼란 속에 다시 폐허가 된다. 그 후 재건과 중창 불사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원당사지 표지석

경내에 묻혀 있던 석탑을 파내어 복원한 현무암 오 층 석탑은 보기 드문 고려시대 유물이다. 1층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있고, 기단면석에는 귀꽃문이 있는 점이 특이한다. 무엇보다도 제주도 특유의 돌, 시커멓고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을 탑의 재료로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신촌 가는 옛길. 삼양동과 신촌마을 경계에 산 모랭이 돌아가는 길을 '신촌 가는 옛길'이라 한다. '삼양에 사는 사람들이 신촌마을에 제삿밥 먹으려 가던 길'이라 전해지는 정감이 있는 길이다.

신촌 가는 옛길

들녘에는 보리가 익어간다. 조금 더 가면 길이 넓어진다. 삼양 - 신촌 간의 새 도로가 공사 중이라 아직은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모르고 들어온 승용차가 먼지를 날리며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다.


시비코지에서 닭모루로 이어지는 바당길


시비코지로 내려간다. 여기부터 닭모루까지 오랜 세월 파도에 침식되어 해식애가 형성된 해변 벼랑길을 따라간다. 멀리 수평선 가까이 고기잡이배가 지나간다. 파도는 연신 밀려와 바위에 부딪친다. 현무암 빌레의 틈새에 암극대가 밀고 올라온다. 정말 억척스러운 생명력이다. 시비코지의 끝에 누군가가 비석을 세워 놓았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다.

시비코지

올레18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시비코지에서 닭모루로 이어지는 바당길이다. 탁 트인 해변의 언덕과 수평선, 시비코지의 해안 풍경에 아내는 넋을 잃는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바당길에 노란색 산괴불주머니가 우쭐거리며 올레꾼을 반긴다.

시비코지에서 닭모루로 이어지는 바당길

닭모루. 닭의 머리처럼 독특하게 생긴 바위로 이 동네를 유명 관광지로 만들었다. 바닷가에 툭 튀어나온 바위의 모습이 닭이 흙을 걷어내고 들어앉아 모래 목욕을 하는 모습이라고 붙여진 지명이다.


지나는 사람들은 닭모루 정자 옆의 버섯 모양의 너설을 닭모루라고 사진을 찍어댄다. 나 역시 그 바위를 찍는다. 길을 지나와서 신촌포구의 안내판을 보니 엉뚱한 곳에 카메라를 댄 것 같지만 확인이 안 된다.

닭모루 해변

신촌포구와 대섬


닭모루와 신촌 환해장성을 지나서 신촌리 마을을 들어선다. 곳곳에 마을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펜션, 게스트하우스와 탐방객이 많아진다.


신촌마을 돌담길과 신당. 신촌리 농가의 올레다. 돌담과 길섶의 잡초가 초록의 나뭇가지와 어우러져 정감을 더 한다. 장미 덩굴이 덮고 있는 담장과는 다른 멋이 있는 길이다. '일뤠낭거리 일뤠당'을 지나간다. 어선과 해녀를 관장하는 어업 수호신을 모신 신당이다.

신촌마을 돌담길과 신당

대섬으로 들어선다.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어 섬인 줄 모른다. 신촌마을과 조천마을의 경계에 있는 섬이다. 점성이 낮은 용암류가 넓은 지역으로 퍼지면서 흘러내린다. 표면만 살짝 굳어진 상태에서 내부의 용암이 표면을 들어 올려 부푼 빵 모양으로 섬이 만들어졌다. 요염하다 할 정도로 예쁜 개양귀비, 갯완두가 대섬을 차지하고 있다.

대섬

다시 본섬으로 돌아오는 길목인 빌레에 촌로들이 앉아 해조류를 펼쳐서 말리고 있다. 아내는 다가가서 무엇인지 물어본다. 우뭇가사리란다.


아~ 이덕구


대섬을 나온 올레는 조천리로 넘어간다. 조천리는 물이 좋기로 유명한 마을이다. 용천수 탐방길을 따라가며 마을의 문화와 역사를 체험한다. 조천초등학교를 지나서 독립운동가 김년배, 김용찬, 김시은, 김형배 생가터가 이어진다. 대로변으로 나오면 조천파출소와 조천보건소가 마주 보고 서 있다.

조천중학원 옛터

조천보건소에서 4.3 민중항쟁 때 무장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를 떠올린다. 이 자리는 조천중학원(현 조천중학교 전신) 옛터이다.


조천읍 신촌리 출신인 이덕구는 일본 유학 중 학병으로 입대하여 관동군 장교로 종전을 맞는다. 해방 후 귀향하여 큰형 이호구가 설립한 조천중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47년 3.1절 집회를 계기로 입산한다. 아이들에게 '한동안 서로 못 볼지도 모른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던 이덕구는 2년 후 십자가에 매달린 주검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4.3 항쟁은 끝이 난다.


이후 침묵 속에 묻혀 있던 4.3의 진실은 소설 '순이삼촌'이 발표되면서 공론의 장으로 나온다. 4.3은 재평가된다. 하지만 아직도 젊은이들은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 셔츠는 입고 다니면서, 4.3 무장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는 모른다. 짠한 마음에 이덕구 가족묘지가 있는 제주시 회천동 637번지를 훗날 다시 찾아갔다.

이덕구 가족 묘지

묘비 앞에 세워진 이승익 님의 비문 '그들의 외침 결코 헛되지 않으리'을 읽고 마음이 숙연해진다.

ㆍ ㆍㆍㆍㆍ누가 우리 부모 형제를 범하는가. 누가 우리 친구 이웃을 범하는가. 이건 아니야! 친구여 형제여 이웃이여. 당하고만 있을쏜가. 분연히 일어나 불쌍한 백성 함께하자. 59년 전 산에서 들에서 골짜기에서 제주 백성에게 외치던 그들의 함성 들림니다. 온몸을 불사른 신촌마을 네 분 선지자. 이호구 선생. 이좌구 선생. 이덕구 선생. 이순우 선생. 이제는 구천에서 고이 내려오소서. 맺힌 원혼을 푸소서! 살아있는 우리가 앞에 나서 저 산새들 울음을 멈추게 하리오. ㆍㆍㆍㆍㆍ < 비문 발췌 >


또 하나의 제주 관문, 조천포구


조천 역시 화북과 마찬가지로 제주신항이 생기기 전까지는 제주의 관문이었던 오래된 포구다.


조천포구(금당포). 기원전 3세기 진나라 진시황은 서복(서불) 선단에 불로장생을 위한 불로초를 구해 오라는 명령을 한다. 서복선단은 불로초를 찾아 제주도를 방문한다. 중국을 떠나 험난한 항해 끝에 맨 처음 도착한 곳이 이 금당포였다.

조천포구

다음 날 아침, 서복은 떠오르는 해를 보고 금당포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신 천신(天神)에 감사하는 제사를 드린 후, 바위에 '조천(朝天)'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고 서귀포로 갔다고 한다. 이 바위를 금당포 조천암이라 하였는데 고려시대 조천관 건립공사 때 매몰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금당포를 '조천포'라고 부르게 되었다.


연북정. 조천진 안의 옹성 부분에 세워진 연북정은 망루를 겸하고 있다. 쌍벽정으로 불리다가 1599년부터 연북정이라 하였다. 연북(戀北)은 궁궐의 임금을 사모한다는 의미다. 북쪽 궁궐을 향해 배례를 올리던 곳이다.


제주목사, 제주판관이나 현감들이 자주 찾아와 육지로 불려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북쪽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연북정을 오르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단다. 순환근무로 제주에 전근 와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공무원, 기업체 임직원, 방송사 임직원들일 것이다.

연⁠북정(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호)

조천연대. 조천리 바닷가를 걷던 올레는 조함 해안로 사거리에서 조천연대를 만난다. 하동 벌판의 전망이 좋은 비탈 위에서 북쪽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사다리꼴 모양의 매끈하게 생긴 연대는 비록 복원된 것이지만 높고 튼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조천연대는 동쪽으로 왜포연대, 서쪽으로 별도연대와 교신하였다.

조천연대(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5호)

조천 만세동산으로 향하는 올레길은 독립운동가 고재륜, 김시범, 김경희 생가터를 거쳐 나오는 조천북4길과 제주올레19코스 공식 안내소에서 만난다. 여기서 오늘의 일정을 정리한다. (2022. 5. 12)


운동 시간 5시간 40분(총 시간 7시간 27분)

걸은 거리 22.6km (공식 거리 : 19.8km)

걸음 수 37,394보

소모 열량 2,250kcal

평균 속도 3.9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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