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17길(하), 도두에서 제주 원도심까지
아침 열 시쯤 관덕정에서 덕구 외삼촌의 시신이 나무 십자가에 매달렸어. 윗옷 주머니에 숟가락이 꽂혀 있었지. (중략) 나와 친구는 종일 관덕정 주변을 왔다 갔다 했어. 장마철이라 아침부터 흐린 하늘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푹푹 쪘어. ㆍㆍㆍㆍㆍㆍㆍ그런데 한 사람도 분노하는 사람이 없었어. 저 빨갱이 잘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지. 모두가 침울한 표정으로 머리를 숙여서 예를 표하고 지나갔어.
김창생 장편소설 <바람 목소리> 184쪽 ~ 185쪽, 봄, 2022.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