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동 복지회관, 물골밭을 지나 예원 교차로를 건너면 상귀리로 들어간다. 소왕천이 시작되는 곳에 장수물이 있다. 삼별초 김통정(金通精) 장군이 성 위에서 뛰어내린 발자국이 파여서 샘이 솟는다고 알려진 '장수물'은 여기가 항파두리 들머리임을 알린다.
김통정 장군에 관한 전설이 얽힌 장수물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위치한 고려 시대 삼별초군의 항몽 유적지이다. 앞으로 보이는 애월의 쪽빛 바다와 하귀리 마을이 평온하게 보인다. 농경지와 구분되는 나무숲이 있는 언덕에 토성이 있다.
항파두리 토성 아래로 보이는 애월 바다와 하귀리 마을
토성으로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본다. 항파두리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덕과 계곡을 따라 타원형으로 쌓은 토성은 항파두리의 외성이다. 그 길이가 15리(6km)에 이르고 성안의 면적은 약 30만 평에 달한다. 토성의 잔디 사이로 냉이와 쑥이 올라온다.
항파두리 토성(외성)
삼별초. 최 씨 무신정권의 최우가 치안 유지를 위해 만든 야별초(좌별초, 우별초)와 몽골에 잡혀간 이들이 탈출하여 만든 신의군이 합해져 삼별초가 된다. 삼별초는 관군이 아닌 최 씨 정권의 이익을 위한 별동대였다. 몽골의 침입으로 무신정권이 강화도로 옮겨갈 때, 무신정권의 호위병으로 함께 이동한다.
고려 원종 11년(1270) 2월 고려 조정이 몽고군과 강화를 맺자 이에 반대하여 강화도에서 나오지 않고 반몽 항쟁을 계속한다.
토성의 잔디 사이로 냉이와 쑥이 올라온다.
원종이 삼별초의 해산을 명하자, 삼별초는 새로운 정부와 왕을 세운다. 그들은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고, 주변 섬들과 전라도와 경상도 등지까지 세력권을 넓혀 개성으로 올라가는 조운선을 공격한다. 삼별초는 고려 조정과 몽골에 큰 타격을 주는 가장 강력한 반몽 반조정 세력이 된다. 무신정권의 호위병이었던 삼별초의 항쟁은 점차 몽골의 고려 지배에 대항하는 자주정신의 상징으로 변해간다.
부담을 느낀 고려와 몽골의 여몽연합군은 1271년 삼별초의 근거지인 진도를 공격한다. 삼별초는 배중손 장군이 전사하고 크게 패하자, 뒤를 이은 김통정 장군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 항전한다.
명월포 전적지. 진도에서 대몽항쟁을 전개하던 삼별초 군대가 제주에 들어온 곳은 올레14코스를 걸으면서 지나온 옹포포구(옛 명월포)다. 명월포 전적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1270년(원종 11) 11월 이문경이 지휘하던 삼별초군이 명월포로 상륙하여 고려 관군을 무찌르고 제주도에 교두보를 확보한다.
옹포 포구에 세워져 있는 명월포 전적지 빗돌
다음 해 (원종 12) 5월 김통정은 남은 삼별초 군대를 거느리고 제주도로 들어와 이문경과 합세하여 제주도에서의 대몽항쟁을 위한 본격적인 방어 시설을 구축해 나간다.
항파두리에 내성과 외성의 이중으로 된 성을 쌓는다. 내성은 사각형의 석성이고, 외성은 언덕과 계곡을 따라 쌓은 타원형의 토성으로 4대 문을 설치하였다. 명월과 애월에 목성(木城)을, 포구에 군항 시설을, 해안 300리에 환해장성을 축조하는 등 치밀한 방어 체계를 구축하였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내성지
항파두리 내성 안에는 대궐, 관아, 병사, 군기고, 훈련장, 옥사 등을 시설하여 항쟁 지도부의 체계를 갖춘다. 생활에 필요한 우물과 저수지도 마련한다. 삼별초군이 우물로 이용한 ‘옹성물’, ‘구시물’ 등의 샘터도 남아 있다.
구시물은 토성 밖에 있다. 구시물 가는 길은 항파두리의 숨은 정원인 녹차밭을 거쳐 간다.
토성 바깥에 있는 항파두리의 숨은 정원, 녹차밭
구시물은 '구시(긴 나무나 돌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구유를 뜻하는 제주어)' 와 '물'의 합성어로, 샘의 모양이 여물통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물은 과거 호열자가 돌 때도 이 지역 사람 중에는 희생자가 없었을 만큼 수질이 좋고, 수량이 풍부해서 가뭄에도 샘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샘의 모양이 여물통처럼 생긴 구시물
삼별초 항쟁의 마지막
삼별초는 이 항파두리성을 거점으로 내륙 지방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여 몇 차례 승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1273년(원종 14년) 4월 여몽연합군에 의해 성이 함락된다. 마지막까지 항전하던 김통정 장군과 잔여군은 붉은오름으로 퇴각한 뒤 자결한다. 40여 년에 걸친 항몽 전쟁은 끝이 난다.
마지막까지 항전하던 김통정 장군과 잔여군은 붉은오름으로 퇴각한 뒤 자결한다.
제주도에서 최후까지 항쟁한 2년 6개월의 자취가 남아 있는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缸波頭里抗蒙遺蹟址)는1976년 9월 , 사적 제396호로 지정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삼별초의 중심 지휘부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다수 확인되었으며, 건물터에서는 청자, 기와, 청동 화살촉, 철창, 철제갑옷 등 다양한 유물이출토되었다. 확인된 건물터들의 축조 형태나 배치는 이전 항전 거점인 진도 용장성에서 조사된 건물터와 유사하다. / 현지 안내문 발췌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 내성지에 삼별초의 지휘부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다수 확인되었다.
1978년 유적지 정화사업을 벌여 내성이 있었던 9천여 평의 경내에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를 세우고 성역화하였다. 전시관, 휴게소 등을 설치하여 제주시가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관리하고 있다.
항몽순의비
몽골(원 제국) 지배시대인 1300년(충렬왕 26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정사지가 내성 인근에 있다. 초석, 기와, 청동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제주 최대의 비보사찰 수정사는 17세기 중엽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정사지
삼별초의 평가
고려를 강점한 몽골과 무려 4년간 독립전쟁을 치른 삼별초. 제국주의 몽골에 저항한 유일한 고려인의 군대로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은 삼별초. 훗날 민족정신, 자주정신의 표상으로 평가받은 삼별초. 그러나 삼별초의 태생이 무신정권의 호위병이었고 몽골에게 항쟁한 것 또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며 그 의미를 폄훼하는 평가도 있다.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 토성 앞에 작은 헛간 같은 가건물이 있다. 무언가 하고 들어가 보니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라는 글이 벽에 쓰여 있고, 수선화 그림과 함께 인쇄된 '삼별초'를 묘사한 글이 붙여져 있다.
세 단의 간결한 글로 삼별초의 역사적 의미를 명확히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무신정권의 버팀목이었고 역사의 승자에게는 반역의 무리였다.
그들은 새로운 고려를 꿈꾸기도 했고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용감한 군대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전란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쳐야 만 했던 고려의 백성이었다.
출처 : 미상
항상 '항파두리'의 어원이 궁금하였다.
항파두리(缸波頭里)란 지명의 어원은 여러가지설이 있다.
‘항바두리’라는 고성리 일대의 고유 지명으로 보는 설이 그 하나다. ‘항바두리’의 ‘바’는 제주어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바위, 바이’에서 온 것이고, ‘두리’는 ‘둘레’의 뜻을 지니고 있어 ‘항아리의 테두리’라는 것이다. 고성리 일대의 지형이 마치 항아리모양으로 생겨서 '항바두리', 곧 '항파두리'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슬픔을 간직한 놀라운 가설이다. 황파 두리(Fang Baatar)는 한자차용표기 홍발도(洪拔都)의 음이고, 바아투르는 영웅이다. 즉 홍영웅(洪英雄)이다. 삼별초를 섬멸한 원나라 앞잡이 홍복원의 아들 홍다구를 기념하기 위해 항파두리라고 붙였다는 설이다.
항몽 유적지 휴게소에서 도보 5분가량 떨어진 곳에서 항파두리로와 항몽로가 만난다. 이 삼거리 근처에 항파두리성 북문이 있고, 제주 올레는 북문을 조금 못 미쳐 항파두리 코스모스 정자에 중간 기착지 스탬프 찍는 곳을 마련해 놓았다. 이례적으로 종착지에서 가까운 곳이다. 코스모스는 보이지 않고 사진 찍는 곳이라는 안내판은 여러 개가 보인다.
올레16코스 중간 기착지인 항파두리 코스모스 정자
돌하르방이 서 있는 코스모스 정자를 지나 항몽로를 건너 다시 토성 옆으로 간다. 숲에 막혀 띄엄띄엄 보이던 성 앞이 확 트여 토성의 진가를 보여 준다.
비고 21m의 안오름 북사면에서 동남쪽으로 성이 이어진다. 성벽 밖의 고성 숲길을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보리밭 옆을 돌아나가면서 황금벌판을 넘어 초록의 성을 바라본다.
황금벌판을 넘어 초록의 성을 바라본다.
소나무 숲을 빠져나와 고성천을 따라가다가 내를 건너면 숭조당길이다. 길가에 비석이 많이 보인다. 멋있는 별장과 비닐하우스, 묘지가 혼재해 있다. 빌라와 펜션도 간간이 보인다. 고성8길이 끝나는 삼거리에서 예쁜 카페를 만난다.
'올레16 들꽃이야기 아트 공방 카페'라는 긴 이름을 가진 카페다. 쉬어가려고 들여다보니 문이 닫혔다. 공방을 같이 운영하는 곳이다. 옆의 작은 정원도 예쁘게 꾸며져 있다. 둥그스름한 돌에 그려진 하얀 해국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흰색 윗입술에 정열적인 빨간색 아랫입술이 어우러진 핫립세이지가 정원을 덮고 있다.
'올레16 들꽃이야기 아트 공방 카페'라는 긴 이름의 예쁜 카페
돌선밭, 청화마을 입구를 지나면 언덕 위에 자그마한 제주교회가 있다. 정겨운 돌담길이 향림사로 안내한다. 향림사 옆의 밭에 철을 잊은 코스모스가 피어 있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들어온다. 빨간색, 분홍색, 흰색의 코스모스는 스포트라이트 같은 몇 줄기 햇빛을 받아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향림사 코스모스 밭
골목길은 광령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이어지고 광성로를 만나 올레16코스 종점인 광령1리 사무소에 이른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의 일정을 마친다.
광령초등학교
다음에 올레17코스를 이어 가려면 (올레17코스를 따라) 평화로 무수천 버스 정류장까지 15분쯤 더 걷는 것이 버스 타기가 수월하다. (2022.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