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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오름과 호반이 있는 물메 밭담길

올레16길(중), 구엄포구에서 예원까지

by 정순동


애월해안로를 따라 걷던 올레16코스는 구엄 어촌체험마을에서 직각으로 꺾어져 중산간 마을로 들어간다.


물메오름


구엄마을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일주서로 앞에서 물메오름(121.5m)을 만난다. 지금은 작은 물웅덩이의 흔적만 남았지만 옛날에는 정상 근처에 마르지 않는 못이 있었던 곳이라 '물메'라고 하였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던 물메오름은 한자를 차용하여 '수산봉(水山峰)'이라 하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수산'이 공식 명칭이 되었다. 수산리 중심에 있는 초등학교는 '물메'라는 예쁜 이름을 지니고 있다.

물메오름 정상부에는 곰솔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정상부에는 통신설비로 보이는 국가시설물이 있다. 정상 주변은 키가 큰 곰솔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전망을 가린다. 굼부리에는 체육시설이 있고 정자도 보인다. 소나무 그늘 밑의 벤치에서 땀을 식힌다.


시비가 보인다. 정상부의 몇 곳으로 끝날 줄 생각했는데 수산리 밭담길을 걷는 내내 만난다.

최문자 님의 '닿고 싶은 곳'의 시구를 띄엄띄엄 가려서 읽어 본다.

'나무는 죽고 싶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새들도 마지막엔 땅으로 내려온다.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 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


남쪽으로 내려오는 하산길은 고도가 낮아질수록 앞이 트인다. 제주도에서 보기 드문 저수지가 (키 큰 소나무에 앞이 가린) 그동안의 갑갑함을 보상한다.


수산저수지와 곰솔


수산저수지는 1960년 말에 수산천을 막아 만든 저수지다. 이 물은 구엄리와 하귀리의 농업용수로 사용되었다. 물메오름과 어우러진 호반의 자연경관이 멋있어, 제주에선 수산유원지라 부르며 자주 찾던 곳이다.

소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는 모습이 어색하다.

소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는 아내의 연출된 모습이 어색하다. 등을 보이며 저수지 앞의 마을과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老松守湖 散遊至樂
노송이 호반을 지키며, 풍유 멋을 더해준다.

물메호반 8경 중 5경, 金粲洽 撰, 姜德秀 解
곰솔.

물메오름 동쪽, 수산저수지 가장자리에 커다란 곰솔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의 높이는 11.5m, 지상에서 1.2m 높이의 나무 둘레가 4.7m, 나무 가지와 잎이 있는 가장 넓은 지점의 폭이 26m인 거목이다.


지상에서 2.5m 높이에서 원줄기가 잘리고 4개의 큰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나와 자라고 있다. 저수지 쪽으로 뻗은 가지는 밑동보다 2m 정도 낮게 물가로 드리워져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곰솔(천연기념물 제441호)

이 나무는 400여 년 전 수산리 마을이 생기면서 어느 집 뜰 안에 심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하동 마을이 저수지로 변한 지금은 인가의 흔적은 없고 소나무만 물가에 서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고목이 마을을 지키는 나무로 믿고 보호해 왔다. 이 나무에 눈이 덮이면 흡사 흰곰이 물을 마시려고 웅크린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곰솔(熊松)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관이 넓게 퍼지고, 물가로 쳐진 독특한 모습이 아름다워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5월 14일 천연기념물 제441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물메오름의 곰솔 군락


물메 당동 팽나무


수산리는 애월읍의 중앙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 상동, 당동, 예원동, 하동 등 네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수몰의 아픈 역사를 가진 사라진 마을 하동과 물메오름을 뒤로하고 당동마을로 들어간다.

당동마을 팽나무

당동 버스정류장 앞에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 3그루가 푸른 잎의 그늘을 만들고 있다.


堂洞亭子 綠陰民會
녹음 쉼터 당동 정자, 민초 민의 키워준다.

물메호반 8경 중 7경, 金粲洽 撰, 姜德秀 解


고목 팽나무의 짙은 녹음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물메 당동 한복판의 쉼터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앉아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논의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감의 장소이다



학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소나무가 수운교 교당의 운치를 더한다.


수운교는 1923년 이상용에 의해 서울에서 개교한 동학계 신종교로 수운 최제우를 천사(天師)로 유·불·선의 종지를 모두 합한 천도라고 본다. 천도를 깨달았을 때 성인이 된다.


교당은 사람이 곧 하늘이니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기고,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잘 실천하도록 안내하는 안식처를 제공한다.

수운교 교당
水雲敎堂 傳來民風
민족정기 수운교, 민풍 민속 이어간다.

물메호반 8경 중 6경, 金粲洽 撰, 姜德秀 解


교당은 분위기가 차분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위압적이지 않다.

정문 앞에 6 경이라 쓰인 안내판이 서 있다. 5경(저수지)과 7경(팽나무)도 지나왔지만, 안내 주체가 어딘지, 무슨 6경인지, 몇 경까지 있는지, 의문을 풀 길이 없다. 안내가 좀 더 친절했으면 좋았을 것을. 뒤에 후기를 작성하면서 '물메 호반 팔경'이란 것을 알게 된다.


시가 있는 물메 밭담길


올레길은 수산 1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수산천을 끼고 이어지면서 큰섬지 물통을 만난다. 큰섬지(大泉)는 수질이 좋고 수량이 풍부한 샘이라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곳이다. 가뭄이 심하여도 샘이 마르지 않기로 유명한 큰 물통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매립되어 일부만 남았고, 음용수로 이용하지도 못한다.

큰섬지 물통

물메 밭담길을 걷는다.

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밭담'을 활용하여 농촌의 문화, 환경을 체험하도록 조성한 물메 밭담길이다. 밭의 경계를 표시하는 돌담은 바람과 토양유실, 말과 소 등의 침입을 막아준다.


옥수수밭 돌담 옆에 주황색 큰금계국이 밭담의 풍경을 완성한다. 돌담 옆의 나한송은 더 단단한 울타리를 만든다. 옥수수밭에는 예쁜 꽃이 송이송이 달려있는 핫립세이지가 밭담의 역할을 대신한다.

큰금계국(상), 나한송(중), 핫립세이지(하)

농가의 돌담 밑에 자란이 자라고 있다. 긴 꽃대에 꽃자루가 있는 대여섯 개의 홍자색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피어 있다.

농가의 돌담 밑에 핀 자란

물메 밭담길을 걷다 보면 수산리 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이 시와 함께 나타난다. 제주도에서 시비가 가장 많이 세워진 마을이다. 100인의 시비가 마을 곳곳에 세워져 있다.

100인의 시비가 마을 곳곳에 세워져 있다.

걸으면서 시 읽는 재미가 솔솔한 길이다.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 밖에는 ㆍㆍㆍㆍㆍㆍㆍ' 허영자 님의 시어를 외우며 중산간으로 들어간다.


올레16길(하)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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