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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가 예쁜 섬

올레18-2길(상), 신양항에서 추자항으로

by 정순동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시작하여 상추자도항에서 끝나는 총길이 10.2㎞의 올레18-2 코스가 새로 조성되었다.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석두청산 정자, 졸복산, 대왕산 황금길 등이 포함되어 난이도가 높아졌다. 이로써 제주올레는 2022. 6. 4 부로 27개 코스, 437㎞로 늘어났다.

하추자도 신양항

하추자도 신양항에서 올레18-2길이 시작된다. 부두 길을 벗어나 추자로와 만나는 지점에 신양상회라는 구멍가게가 있다. 현재까지 4대째 운영하고 있고 개업한 지 100년 넘는다. 신양항 인근에는 식당이 마땅치 않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는 올레꾼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추자도 명소로 다음백과에도 올라있다.


내에 하나밖에 없는 추자중학교 가는 길을 알리는 파란 화살표가 올레꾼을 혼동하게 만든다.

석두리맑은바당

몽돌 구르는 소리가 아름답다는 장작평사는 신양항 방파제 공사 이후 자갈 구르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몽돌해변도 줄어들고 방조제에 가려 존재감이 예만 못하다. 오히려 바다와 연결하여 조성한 친수공간 석두리맑은바당이 눈길을 빼앗는다.


왼쪽으로 장작평사를 바라보며 풀잎의 초록 바탕에 하얀 꽃 사상자와 연분홍 꽃 갯무가 그려놓은 수채화 사이로 들어간다. 덕인산 오르는 들머리다.

덕인산 들머리

계단길이 시작된다. 송악, 청미래덩굴이 바닥을 기다가 소나무와 사방오리에 의지하여 햇빛을 찾아간다. 산길 가장자리에 산국이 모여 자라며 꽃 피울 날을 기다린다.


백량금의 빨간 열매가 송이송이 열려 있다. 작년 가을에 달린 이 열매는 초여름이 지나면 떨어진다. 자금우와 사촌으로 '내일의 행복, 덕이 있는 사람, 부자'등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부자와 덕과 행복이 연관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씁쓸하다.

덕인산 오르는 계단, 백량금(오른쪽)

고갯마루에 오르니 수덕도와 청도가 가까이 보인다.


석두청산(石頭靑山). 아무도 살지 않는 집 한 채만 외롭게 남은 청도의 산꼭대기에는 사람의 머리를 닮은 바위가 있다. 그 바위가 푸른빛을 반사한다고 하여 '석두청산(石頭靑山)'이라 한다.

수덕도(왼쪽)와 청도.

수덕낙안(水德落雁). 사자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을 닮아 '사자섬'이라 불리는 수덕도가 하추자 앞바다를 지키고 있다. 무인도이면서 유일하게 신양2리 새마을회가 소유하고 있는 사유지다.


기러기가 수덕도 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먹이를 발견하고 바다를 향해 몸을 쏜살같이 내리꽂는 광경이 절경이라 ‘수덕낙안’으로 부른다.

졸복산을 오르내리는 해안절벽의 탐방로

졸복산 해안절벽

졸복산을 오르내리며 이어지던 해안 절벽에는 갯똥나무, 섬엄나무, 해동이라고도 불리는 돈나무의 흰 꽃이 점차 누른색으로 바뀌어 간다. 꽃향기는 거센 바닷바람을 타고 '꿈속의 사랑'처럼 아득하게 퍼진다.

절벽에 매달려 자라는 돈나무가 꽂을 피우고 있다.

소나무 사이로 섬생이섬과 멀리 영흥리의 추자도등대도 보인다. 주변의 크고 작은 섬들과 조화를 이룬 바다 풍경이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섬생이섬 뒤로 추자도등대도 보인다.

꽃과 바다 풍경에 정신없이 걷는데 까마득한 대왕산이 앞에 턱 버티고 선다. 꼬불꼬불 타고 오르는 계단이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소나무와 돈나무, 사방오리로 울창하던 숲은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예덕나무로 식생이 바뀐다.

까마득한 대왕산,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대왕산

신양2리 서쪽 해안에 우뚝 솟은 대왕산(해발 124.9m), 마을 사람들은 보통 '크낭산'이라 한다. '크낭산'을 '큰왕산', 다시 '대왕산(大王山)'으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한다. 아무튼 이 산을 오를 것이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예덕나무로 식생이 바뀐다.

깎아지른 계단을 오를 땐 위를 쳐다보지 않는다.

아래만 보고 계단수를 헤아리며 오른다. 그러면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높은 계단길을 오르는 나만의 노하우다. 좁은 계단 134개를 지나면 야자매트로, 다시 넓은 계단 65개를 오르면 또 야자매트로 이어진다. 쉬지 않고 한방에 오른다.

추자면 위생처리장

뒤를 돌아본다. 졸복산의 거친 산세도 지나고 보니 유려하다. 안부에 알록달록한 건물이 보인다. 추자면 위생처리장이다. 졸복산 너머로 수덕도와 청도가 계속 따라온다.

능선의 오른쪽은 신양항이다.

대왕산 정상은 어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등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안개가 끼면 대왕산 정상에 올라 징과 북을 두드린다. 절명여 근처 바다에서 조업을 하던 마을 어선은 소리를 듣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해안 절벽의 용둠벙과 동굴은 용이 승천한 곳이라는 전설을 품고 있다.

용둠벙의 전설

능선의 왼쪽 절벽 아래에 직경 5m, 깊이 1m 정도의 용둠벙(용이 살던 연못)과 작은 동굴이 있다. 이 굴과 연못은 용이 살다가 승천한 곳이라는 전설을 품고 있다. 상추자에도 용둠벙이 있다.


바다에 고기잡이배가 한 척 떠 있고, 낭떠러지 아래에는 거북 형상을 한 바위가 보인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실제로 1960년대 초에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고 한다. 신양2리 주민들이 거북이에게 막걸리를 먹여 돌려보냈는데, 그 이후로 신양2리 마을에 행운이 깃들고 있다고 전해진다.

거북바위

대왕산 황금길

시 가파른 계단을 타고 용둠범정으로 내려간다. 섬생이와 상추자도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감상하는 여유가 생긴다. 이 길이 행정안전부 도서개발지원사업으로 조성한 대왕산 황금길이다. 신양2리에서는 이 길을 '마음 다스리며 걷는 길'이라 소개한다.

용둠범정

대왕산 황금길 들머리에 용둠벙(용이 살던 연못)의 전설을 형상화한 벽화가 새겨져 있고, 산책로 양쪽으로 추자도에서는 보기 드문 현무암 돌담이 조성되어 있다.

들머리 용이 새겨진 벽화와 추자도에서는 보기 드문 현무암 돌담길

대왕산 줄기에 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이 있다. 오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던 샘으로 소망을 기원하는 정안수로 쓰였다고 한다.

정안수로 사용하던 우물

대왕산 산책로를 새로 단장하면서 올레18-2코스 중간 기착지 가는 구간에 동백나무를 식재해 동백길을 조성해 놓았다. 아직은 키가 작지만 동백꽃길이 기존의 찔레꽃과 함께 간다.

올레18-2길 중간기착지의 전망대와 정자

정자가 곳곳에 있다. 올레 중간 기착지에도 전망대와 정자가 마련되어 있다. 오토바이 여행하는 누군가가 야영을 한 모양인데 주위에 널린 쓰레기가 눈에 그슬린다.

주위에 널린 쓰레기가 눈에 그슬린다.

신양리 마을로 내려선다. 숲이 끝나는 지점의 구릉에 제주도엔 철 지난 유채꽃이 피어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향해 추자로를 건넌다.

신양2리

'인심 좋고 살기 좋은 신양2리' 현판이 걸린 홍살문을 통해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회관이 기와를 올린 한옥이다. 붉은 단청을 칠한 홍살문과 주변 건물이 매우 이색적이다. 중국의 소수민족 마을을 들어서는 느낌이다.

붉은 단청을 칠한 홍살문과 주변 건물이 매우 이색적인 신양2리 마을

앞산. 이내 분위기는 달라지고 숲 속으로 들어선다. 까마귀쪽나무, 후박나무가 하늘 높이 올라간다. 조금 낮게는 찔레가 울타리를 치고 있고, 바닥에는 청미래덩굴, 멍석딸기가 기고 있다.


후박나무. 잎의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회녹색인데, 새순은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 아름답다. 일 년생 가지는 녹색인데 오래된 몸통은 약간 붉은빛이 돈다. 꽃말을 누가 지었는지 '모정'의 '고결'한 '위엄'을 풍기고 있다.

까마귀쪽나무(왼쪽), 후박나무(오른쪽)

까마귀쪽나무. 구럼비라고도 불리는 녹나무과의 상록 활엽 교목인 까마귀쪽나무가 추자도에 유달리 많다. 꽃말은 '온화'다. 암수딴그루로 9~10월에 노란빛이 도는 흰색의 꽃이 핀다.


섬생이. 앞산의 숲을 빠져나오면, 두꺼비 모양의 섬생이(섬도)가 바다에 엎드려 멱을 감고 있다. 대부분 수직절리가 발달한 바위섬이다. 인근의 수영여와의 사이로 지는 해가 아름다운 곳, 또 낚시 포인트로 사랑을 받는 곳이다. 행정구역은 신양리지만 묵리에 더 가까이 있다. 이 일대의 해녀작업은 추자면 묵리에서 담당하고 있다.

섬생이(섬도)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묵리마을

남북으로 앞산과 뒷산, 동북쪽으로 도대산에 둘러싸여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마을', 묵리로 내려간다. 건물 꼭대기에 온천 표시가 보인다. 공중목욕탕이 있는가. 가까이 가보니 민박집이다. 올레꾼들에게 많이 알려진 묵리슈퍼가 옆에 있고.

묵리마을

뒷산 금파골

묵리포구와 당목재의 처녀당(해신당)을 내려다보며 뒷산으로 오른다. 옛날 금을 캐었다던 금파골이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숲 사이의 고즈넉한 산길은 담수장 울타리를 만난다.

개여뀌(왼쪽), 맥문동(오른쪽)

개여뀌가 붉은 자줏빛 꽃을 가지 끝에서 모아 달고, 나를 '생각해 주렴'하듯이 고개를 내민다.


폭이 좁고 긴 잎의 맥문동이 줄기를 곧게 세우고 곳곳에서 올라와, 꽃 필 날을 기다린다. 알뿌리를 흉년에 곡식 대신 먹기도 했던 구황식물로 '겸손과 인내'가 꽃말이다.

추자교. 추자등대가 보인다.

다시 추자교. 묵리 고갯마루를 넘어 어느덧 추자교를 건넌다. 추자도어민대일항쟁기념비를 지나서 충혼 묘역 동쪽 해안이 ‘꿀여캐’이다. 굴이 많은 여라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추자도어민대일항쟁기념비(위), 충혼 2묘역 동쪽의 ‘꿀녀캐’(아래)

탱지밭산. 영흥쉼터에서 통신탑을 바라보며 탱자나무가 많아 탱지밭산이라 부르는 언덕을 오른다. 지금은 탱자나무보다는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추자등대 주차장이 있는 고개를 넘으면, 영흥리 마을 전경이 추자항과 함께 나타난다.

탱지밭산을 넘어서 영흥포구에 닿는다.

항일어민운동의 발상지, 영흥리

추자항과 마주 보는 영흥포구에 닿는다. '영원히 흥하라'라는 뜻의 영흥리는 추자면사무소가 있었던 곳으로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대서리와 함께 추자도의 중심지다.

영흥포구. 건너편이 추자항이다.

영흥리는 1932년 5월에 일어난 추자도 어민 생존권 쟁취를 위한 항일어민운동의 발상지다. 옛 면사무소(현 추자도 해상관광협동조합 인근)가 있던 곳에 표석이 세워져 있다.

대서리

신양항에서 시작하여 졸복산과 대왕산을 오르내리며 걷던 길, 산봉우리에서 바라본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던 길, 앞산과 뒷산의 울창한 숲의 향내를 맡던 길은 이제 추자도 중심지 대서리에 닿는다.

추자도여행자센터

올레18-1길의 시작점이자 18-2길의 종점인 추자도여행자센터로 다시 돌아온다. 안내사에게 자랑하려는데 점심시간이라 문이 닫혔다. 올레18-2길의 공식 일정은 여기서 마친다. 이로써 제주올레 27개 코스를 모두 걸었다. 21코스에 '마지막 여정'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실제 마무리는 추자도에서 한다. 개인적인 견해로 27개 코스 중 가장 힘든 코스이기도 하고, 일기(日氣)에 마음을 졸였던 일정이기도 하여 그 감흥은 더욱 벅차다.


점심 식사 후, 번외 '나바론 하늘길'을 이어간다. (2023. 5. 12)




운동 시간 2시간 55분(총 시간 3시간 47분)

걸은 거리 10.04km (공식 거리 : 9.7km)

걸음 수 18,384보

소모 열량 1,166kcal

평균 속도 3.4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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