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담길, 바당길, 솔숲길, 곶자왈, 오름이 번갈아 나타나는 제주의 진면목이 모두 담긴 길이다. 제주 항일운동의 시발점인 조천 만세동산, 서우봉 일제 동굴진지와 4.3 당시 큰 피해를 입은 북촌리, 동복리, 함덕리, 너븐숭이 4.3 기념관에서 아픈 제주 근현대사를 눈으로 확인하는 길이다.
제주지역 항일운동의 모태가 된 미밋동산 3.1 만세운동
만세동산에 들어서니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커다란 구실잣밤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토끼풀이 잠식해 가는 너른 잔디밭 한가운데 3.1 만세운동 기념탑이 보인다.
만세동산의 3.1운동 기념탑
오늘은 승용차를 이용한다. 만세동산에 주차하고 올레19코스 공식 안내소로 간다.
둘이 다니느라 같이 사진 찍을 기회가 없었다. 공식 안내소 앞에서 사진 찍는다고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리는데 직원이 나와서 사진을 찍어준다. 덧붙여 이 마을 일대에 독립운동가 생가터가 많다고 알려준다.
애국선열 추모탑. 제주의 고유한 정주문(정낭)을 형상화한 추모탑이다.(우)
미밋동산은 인근에 조천항이 있고 옛 면사무소, 지서 등이 모여 있어 예나 지금이나 조천읍의 중심지다. 이곳에서 조천지역의 항일 만세시위가 일어난다. 휘문고보를 다니던 이 동네 출신 김장환이 독립선언문을 가져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김형배, 김시범, 백응선이 태극기를 준비한다.
김시범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김장환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일가친척, 이웃 사람들이 참가한 만세운동이었다. 그래서 조천에는 한집 건너 독립운동가 생가가 있다.
독립유공자비. 일제강점기에 순국한 애국선열을 기리는 비로 주재소에 유치되거나 매몰되었던 것을 제주항일기념관 앞에 세웠다.
조천 장터에서 항일 만세운동을 이어가며 제주지역 항일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미밋동산에 3.1 운동 기념탑, 애국선열 추모탑, 제주 항일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제주항일기념관 현관에 설치된 상징 조형물, '오인의 군상'
해 질 녘의 노을이 아름다운 관곶
제주항일기념관 뒤를 돌아 나와 밭담길을 걷는다. 마늘밭과 청보리밭이 이어진다. 돌담 너머 청보리가 바닷바람에 흔들린다. 밭담 곁에 노란 큰금계국과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고, 포도송이같이 검게 익어가는 송악이 돌담을 덮고 있다.
난대성 덩굴식물로 담장나무라고도 하는 송악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부부애' 등이다.
올레는 밭담길을 뒤로하고 조천 해안도로로 이어진다. 자전거가 자주 옆을 지나간다. 단조로운 아스팔트 길은 보도가 좁아 신경이 쓰이지만, 길가에 무리 지어 핀 큰금계국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길이다.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난 조천해안도로
제주 지역에서 해남 땅끝과 가장 가까운 곳(83km)이다. 그래서 조천포구가 제주의 대표적 관문이었다. 조천관 시대에 '조천포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곶'이라는 뜻으로 관곶이라 불린다. 이곳은 지나가는 배가 뒤집어질 정도로 파도가 거세어 '제주 울돌목'이라고도 한다.
'제주 울돌목'이라고도 불리는 관곶
사진의 오른쪽 건물은 문어 라면으로 알려진 '문개항아리'라는 식당이다. '문어에 미치다'라는 재미있는 간판이 눈길을 끈다.
관곶 안내판에 조천읍 지도가 그려져 있다. 한라산 자락에서부터 이어지는 조천읍은 장화 모양을 하고 있다. 장화의 위쪽 무릎이 닿는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 관곶이다.
관곶은 해 질 녘의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관곶은 해 질 녘의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일몰 명소는 대체로 서쪽 바닷가인 경우가 많다. 제주 동쪽 바다인 이곳이 저녁노을이 아름답다는 것은 곶이란 지형 때문이리라. 현무암과 하얀 등대 앞의 바다에 붉은 노을이 이글거리는 광경을 상상해 보며 바당올레를 지나간다.
현무암 해변에는 거센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부서진다. 제주에서는 흔치 않은 황톳길이 이어진다. 산괴불주머니가 돌담 사이로 노란 꽃을 달고 있고, 한쪽으로는 갯무가 연분홍 꽃을 피우고 있다.
얕은 돌담의 황톳길에 갯무와 산괴불주머니가 꽃을 피우고 있다.
신흥리 환해장성을 지나간다. 멀리 언덕 위에 왜포연대가 보인다. 돌로 만들어진 밭담 너머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 뒤에 방풍림처럼 서 있는 야자수, 환해장성, 연대 등의 풍경이 해변과 잘 어우러져 제주 섬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흥리 환해장성과 왜포연대(위), 보리밭과 야자수(아래)
신흥해수욕장과 볼레낭 할망당
해변은 하얀 모래와 짙푸른 바다가 돋보이는 신흥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도릿개와 관곶 사이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은 신흥리 마을에 오목하게 들어앉았다. 밀물 때는 맑고 투명하게 찰랑이는 물빛이 신비롭다. 만조가 되면 어른 키 보다 높게 물이 들어온다. 썰물 때는 물이 모두 빠진 백사장이 장관이다.
넓은 백사장에 두기의 방사탑이 세워져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보아 마을의 허한 곳이나 액을 비롯한 궂은 것이 들어올만한 곳에 세운 탑을 방사탑이라 한다. 이 탑을 세움으로써 마을의 인명(人命)·가축·재산 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신흥해수욕장과 두 기의 방사탑
해안도로변, 신흥리 포구 서쪽 당알에 볼레낭 할망당이 있다. 원래는 마을 안쪽이었으나 조함 해안로가 생기면서 밖으로 드러났다.
볼레낭은 보리장나무를 말한다. 할망은 여신을 뜻한다. 보리장나무 앞에 돌로 만든 제단을 놓고, 여신당을 모실 수 있게 돌담으로 둘러싸고 있다.
볼레낭 할망당(좌), 신흥물(우)
이팝나무 군락으로 들어선다. 치성을 드리는 신목으로 받들어지기도 하는 이팝나무 군락이 할망당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나무의 꽃 피는 모습으로 그 해 벼농사의 풍흉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팝나무 군락 끝자락에 신흥물이 있다. 지하수가 자연 상태에서 지층의 틈 사이로 솟아나는 물, 용천수는 주민의 삶과 맞물려 있다. 용천수의 역사는 마을의 역사다. 용천수가 많은 마을은 오래된 마을이다. 조천읍은 용천수가 풍부한 편으로 신흥리에는 큰물, 쇠물깍 등 5개의 용천수가 있다.
이팝나무 군락
신흥리 사무소를 못 미쳐서 폐교된 신흥초등학교가 있다. 지금은 제주국제교육원 제주다문화교육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입구에 옛 배움터를 기리는 빗돌이 서있다.
1965년 신흥국민학교로 개교한 뒤 학생 수 감소 등으로 1983년 분교가 되었다가 2010년 3월 폐교되었던 신흥초등학교는 최근 신흥분교장을 되살리려는 마을 차원의 움직임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옛 신흥초등학교
함덕해수욕장과 서우봉
올레는 함덕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제주공항에서 불과 19km 떨어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자리한 해수욕장이다. 들머리의 키 큰 야자수, 하얀 모래, 쪽빛 바다, 넓은 잔디밭과 잘 정비된 산책로는 남태평양의 어느 해변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다.
함덕해수욕장
파도가 거세지 않고 수온차가 적다. 맑은 물에 수심도 얕아서 가족 피서지로 적당한 곳이다. 바로 옆에 솟아 있는 서우봉은 봄에는 노란 유채꽃, 여름에는 초록빛 숲이 보는 이의 눈을 시원하게 한다. 또 정상부에서 나는 패러글라이더도 볼거리로 한몫한다. 사철 해변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함덕해수욕장이다.
함덕해수욕장은 서우봉 산책로 들머리에 넓은 야영장를 갖추고 있다.
백사장의 동쪽 끝, 서우봉 산책로 들머리에 넓은 야영장도 갖추고 있다. 아이와 함께 하기 좋은 해수욕장으로 꼽아 두고 서우봉을 오른다.
해발 111.3 m의 서우봉은 살찐 물소가 뭍으로 기어올라오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예로부터 덕산으로 여겨지던 산이다. 함덕해수욕장을 조망하며 오르는 산책로는 2003년부터 함덕리 이장이 앞장서고 동네 청년들이 힘을 모아 2년여 기간 동안 낫과 호미로 개척한 길이다.
활엽수가 우거진 산책로에 후추등이 지피를 덮고 있다.
활엽수가 우거진 사이로 난 나무 계단길은 경사가 급한 편이나 길지는 않다.
바다 바람에는 강하고 음지에서도 광합성을 잘하여 나무 그늘 밑에서도 잘 자라는 후추등이 지피를 덮고 있다. 늦가을부터 겨울철에도 붉은 열매가 달려 아름답다. 관상용으로 이용되며, 후추 대용으로 식용하기도 한다. 덩굴줄기를 해풍등이라 하며 약재로도 쓰이다. '애교'가 꽃말이다.
육각 지붕을 한 정자에서 보는 함덕 바다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쪽빛 바다 너머로 한라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고려 때 삼별초와 관군의 치열한 전투로 이 아름다운 함덕 앞바다가 피로 물들었던 아픔이 있는 곳이다.
서우봉 육각 정자에서 보는 함덕해수욕장
서우봉은 또 하나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서우봉 정상에서 바닷가로 향한 해안절벽을 몬주기알(북촌리2683번지)이라 한다. 절벽 아래에는 입구는 작지만 내부는 비교적 넓은 천연동굴이 있다. 4.3 당시 북촌 주민들과 함덕 주민들이 숨었던 장소다. 썰물일 때 해안가로 접근이 가능하다. 토벌대의 작전이 최고조로 달했던 1948.12. 26경 4~5명의 여성들이 절벽 위에서 총살당하는 등 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곳이다. / 제주 4.3 평화재단
정자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안부에 닿는다. 우리는 망오름과 서우봉 사이로 난 평탄한 길을 선택한다. 까마귀쪽나무, 줄사철나무, 굴거리나무, 털머위, 관중, 도깨비쇠고비, 제주조릿대 등으로 컴컴한 나무 터널을 형성하고 있다. 좁은 길과 풀밭이 번갈아 나타난다. 빨갛게 핀 개양귀비가 4.3 때 희생된 주민들이 흘린 붉은 피를 연상케 한다.
까마귀쪽나무(좌), 개양귀비(우)
서우봉은 4.3의 아픈 역사와 북촌리, 함덕리의 희로애락을 함께 보듬어 안고 쪽빛 바다와 유채꽃이 어우러진 다려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서산 봉수대 쪽에서는 너븐숭이의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패러글라이더가 나르고 있다.
서우봉에서 내려다보는 다려도
통신 기지국 중계탑이 보인다. 찔레꽃이 하얗게 핀 내리막이 꼬불꼬불 이어진다.
통신 기지국 중계탑이 보이는 내리막에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시멘트 포장길로 이어진다. 일제 동굴진지 안내판이 서 있다. 일제는 패전 위기에 몰리자, 제주도민을 동원하여 서우봉 해안 절벽에 동굴진지 18곳, 벙커 2곳을 구축하였다. 이 동굴진지는 연합군 함대를 직접 공격하는 자살공격용 무기를 배치하였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