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좌'가 왜 '구좌'인지 궁금했다. 조선시대에는 섬 동쪽은 좌면, 서쪽은 우면이라 했는데, 1895년 좌면이 신좌면과 구좌면으로 나뉘면서 '구좌'라는 지명이 생긴다. 구좌면은 후에 구좌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른다.
구좌읍 김녕 서포구에서 시작하여 김녕, 월정, 세화 해수욕장의 쪽빛 바다 물결과 모래언덕, 지오 트레일, 풍력발전기가 그려내는 그림 같은 풍경의 해변을 감상하며 걷는 바당올레다.
오늘도 승용차를 이용한다. 올레20길 종점인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공원에 주차하고, 남흘동 버스정류장까지 201번 버스로 20여 분 이동한다. 여기서 올레20코스 출발점인 김녕서포구로 향해 걷는다. 올레19길을 걸으면서 남겨두었던 길이다.
김녕마을에 들어서니 금속공예벽화가 먼저 눈에 들어 온다. 섬마을 아이는 물질나가는 엄마를 따라 나선다. 우는 아이의 손을 억지로 떼어 놓고 나가는 제주해녀의 애달픈 삶을 존경스러운 삶으로 승화시킨 벽화가 울림을 준다.
<섬집 아이> 작가 추하늘, '제주해녀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등재 기원작'이다.
김녕리.궤내기굴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발굴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약 2천 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마을이다. 김녕리가 일제 강점기 동김녕리, 서김녕리로 나누어졌다가 주민 투표를 통해 2000년부터 '김녕리'로 통합했다.
여러 장의 주황색 꽃잎 가운데에 진한 색의 선 무늬가 뻗어 나와 태양을 연상시키는 태양국(가자니아)이 돌담 밑에 피어 있다. 꽃말처럼 올레꾼에게 '미소로 대답한다.' 꿀풀과의 아주가도 푸른 보라색 꽃을 촘촘히 달고 '강한 결속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숨비소리 들리는 김녕 조간대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다는 해녀들의 물질 모습을 본다. 함께 숨비소리를 듣는다. 해녀들은 '호잇 호이' 숨비소리를 하고 다시 물속으로 사라진다. 김녕의 해변은 제주 해녀 문화가 스며 있는 바당길이다.
궁금증이 많은 아내는 '물질할 때 춥지 않은지, 뭘 잡았는지' 해녀들에게 물어본다. 오뉴월에는 주로 성게를 딴단다. 미역국이나 비빔밥에 넣어 먹기도 하는 성게알은 톡톡 터지는 식감이 일품이다.
조간대 깊숙히 들어가서 해녀들의 물질 모습을 본다
청굴동. 용암대지의 하부에는 점토층이 분포하고 있어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다.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 빗물은 해안선 부근에서 솟아난다. 이를 용천수라 한다. 김녕 해안에 여러 곳의 용천수가 있지만 그중 청수동의 청굴물이 가장 차다. 여름철에 많은 사람들이 이 물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청수동의 옛 지명은 청굴동이다.
조간대. 밀물일 때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일 때에는 드러내는 해안선 사이의 지역을 말한다. 이 일대는 해수면이 낮았던 시기에 용암이 흘러내려 평탄한 용암대지를 만들었다.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조간대가 발달된 것이다. 김녕 일대의 조간대에는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이 빠져 조간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다. 아이들이 톳을 뜯고 보말을 주워 담는다.
김녕 일대의 조간대에는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녕 해안사구
도대불. 바다로 나간 배들의 밤길을 밝혀주는 제주도의 민간등대다. 김녕 도대불의 등불은 해 질 무렵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이 켜고 아침에 들어오는 어부들이 껐다고 한다. 등불은 생선 기름이나 송진을 사용하다가 석유로 대체된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도대불은 유물로 남게 되었다.
도대불 옆에 정자가 세워져 있고 근처 언덕에는 괭이밥, 개민들레, 토끼풀, 갯무꽃이 야생화 꽃밭을 만든다.
도대불과 꽃밭
세기알 해변. 빨간 등대와 풍력발전기, 파란 바다, 톤이 다른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그림엽서와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멀리 물러나면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다.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하여 아이들이 놀기에 알맞은 곳이다.
방파제 옆의 작은 포구를 '세기알'이라 했던 연유로 포구 기능을 거의 상실한 지금도 세기알 해변이라 한다.
세기알 해변
성세기 해변. 해변에 돌담을 쌓아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여 고기잡이하는 원담, 거대한 용암대지 위에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성세기 해변, 모래가 쌓여 만든 해안사구는 김녕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해안사구에는 흰물떼새가 3~6월경 알을 낳는다. (사)제주올레는 올레꾼들에게 주의를 부탁한다.
성세기 해변
김녕해수욕장. 성세기 해변은 희고 고운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김녕해수욕장이란 이름이 더욱 알려져 있다. '성세기'란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작은 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녕은 바람이 좋은 곳이라 카이트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모여든다. 모래 위의 넓은 풀밭을 이용한 야영장이 잘 갖춰져 있다.
김녕해수욕장 야영장
성세기 태역길이 해변을 따라간다. '태역'은 제주어로 잔디를 말한다. 잔디가 많은 길이라 제주올레가 붙인 이름이다. 꼬불꼬불 바닷가 풀밭 사이로 난 성세기 태역길은 김녕 환해 장성까지 이어진다.
성세기 태역길
해안사구. 김녕 해안은 검은 용암대지 위에 하얀 모래가 싸여 언덕을 이루고 있다, 바람이 모래를 실어 날라 쌓인 모래언덕. 즉 사구다. 대륙붕에서 해류를 타고 해변으로 밀려온 모래가 겨울바람에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언덕을 만든 것이다. 1872년 제작된 고지도에도 표기되어 있을 만큼 오래되고 그 범위도 넓다.
검은 용암대지 위에 싸인 하얀 모래언덕
내륙 쪽 모래언덕에는 등심붓꽃, 금계국, 토끼풀이 무리 지어 꽃을 피우고 있다. 풀밭에 꽃이 하루 만에 시드는 1일화로 알려진 등심붓꽃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등심붓꽃(위), 금계국과 토끼풀(아래)
파호이호이 용암대지
파호이호이 용암대지
거북등 절리. 용암은 점성에 따라서 굳어있는 모양이 다르다. 점성이 낮은 용암은 빠르고 매끄럽게 흘러 부드럽게 굳는다. 김녕 해안의 현무암질 용암은 얇은 두께로 넓게 퍼져 용암대지를 만든다. 용암 표면이 육각형으로 갈라진 거북등 절리가 발달하였다.
거북등 절리
튜물러스. 어떤 것은 아주 빠르게 흐르기도 한다. 용암이 흐르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흐름을 멈춘다. 표면은 먼저 식고 내부는 뜨거운 용암이 흐르면서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처럼 솟아있는 지형을 튜물러스라고 한다. 또 흐르던 용암이 장애물을 만나 밀려나면서 표면이 새끼줄 모양으로 굳어진 모습도 발견된다.
튜물러스
검은 용암대지 위에 갯까치수염, 갯메꽃, 암대극이 꽃을 피우고 있다. 마치 석부작을 보는듯하다.
갯까치수염. 흰색 꽃이 줄기 끝에 여러 송이가 뭉쳐서 달려 있다. 줄기는 곧게 서고 밑에서 가지를 친다. 잎은 어긋나기 하며, 광택이 많이 나고 두터운 육질로 되어 있다. 잎은 주걱을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가늘고 길며 끝이 뾰족하고 중간쯤부터 아래쪽이 약간 볼록하다.
갯까치수염. 갯좁쌀풀, 해변진주채라고도 불리는 다육성 두해살이풀이다. 꽃말은 '그리워함, 매력' 등이다.
갯메꽃. 바닷가의 원담에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며, 현무암 돌 틈에 깔때기 모양의 분홍색 갯메꽃이 작은 가지에 한 개씩 피어있다. 꽃잎 안쪽으로 5갈래의 흰색 줄이 선명하게 있다. 1마디에 1장씩 잎이 붙은 줄기는 바위 위를 기면서 강한 생명력을 과시한다.
원담의 돌틈 사이에 갯메꽃이 피어 있다. 꽃말은 '수줍음'이다.
김녕 환해장성과 암대극. 제주올레는 걷기 편한 태역길을 두고 최근 복원된 김녕환해장성(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9호) 옆의 돌길로 이어진다. 걸음걸이가 비틀거린다. 환해장성 밑으로 암대극이 노란빛 도는 녹색 꽃을 피우고 있다.
암대극. 꽃말은 '붙잡고 싶은 사랑'이다.
김녕 풍력발전시스템 인증단지. 올레19길 마지막부터 보이기 시작한 풍력발전기는 김녕에 들어서면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더니 풍력발전시스템 인증단지와 한국 에너지 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가 나온다. 이곳은 연평균 풍속이 7.2m/sec로 대형 풍력발전기 국제인증을 받은 국내 최초의 인증단지라고 한다.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굉음을 내며 돌아간다. 회전하면서 나는 소음이 생각보다 크다. 주변을 나는 물새떼의 울음소리가 풍차 소리에 묻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