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 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를 마지막으로 김녕리에서 월정리로 건너간다. 월정 투명카약 타는 곳을 먼저 만난다. 해상풍력발전소의 풍차와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투명카약. 환상적인 조합이다. 바람이 센데 노젓기가 어떨지. 애월 해변보다 타는 사람이 적다.
제주밭담 테마공원
밭담이 이어진다. 마늘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돌담에는 담쟁이가 타고 오른다.
마늘밭의 밭담에 담쟁이가 타고 오른다.
당처물 동굴 뒷길을 지나간다.
당처물 동굴은 올레20길이 지나는 곳에서 도보로 10여 분 안으로 들어간 곳에 있다. 동굴 생성물의 보호를 위해 현재 공개 제한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 출입할 수 있다
당처물동굴(천연기념물 제384호,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출처 : 한국학 중앙연구원
당처물 동굴은 32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용암동굴이다. 땅 위를 덮고 있는 조개 모래의 탄산염 성분이 빗물과 함께 스며들어 석회동굴을 방불케 한다. 종유석과 석순, 석주 등 동굴 생성물의 화려함이 환상적이다.
동굴은 입구가 없어 노출되지 않아 동굴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995년 고 김종식, 김옥희 부부가 돌더미로 된 밭을 개간하다가 발견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동굴 이름을 '김종식 김옥희 동굴'로 붙였으면 의미가 있었을 것을 '지역 주민에 의해 발견되었다'고만 안내하고 있다.
월정리 해수욕장
물빛이 아름답다. 수심이 고른 편이어서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월정리 해수욕장
월정포구의 옛 이름은 무주포다. 월정이란 지명은 1907년부터 불렀다고 한다. 달 밝은 밤에 테우를 타고 바다에 나갔던 장봉수란 한학자가 밤바다에서 바라보는 마을 풍경이 반달 모양 같다 하여 월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멸치잡이로 유명하였던 월정 해변은 옛 이름이 한모살이었다. '크고 넓은 모래밭'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모살 해안 주변으로 관광객이 모여들면서 민박집, 펜션, 카페 등이 줄이어 들어서더니 지금은 카페거리가 되었다. 상가의 대형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모처럼 카메라에 담는다.
한모살 해변 카페거리
광해 임금의 유배, 첫 기착지.
월정리 카페촌은 행원포구로 이어진다. 행원포구(어등포)는 올레20코스 중간 기착지 스탬프 찍는 곳이 있다. 간세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그 옆의 '광해 임금의 유배, 첫 기착지'를 알리는 표지석을 발견한다.
광해 임금 유배길의 첫 기착지, 해원포구
광해군은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된다. 태안을 거쳐,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637년(인조 15) 제주로 보내진다. 당시 인조는 광해군에게 유배 지역을 알리지 못하게 한다. 바다를 건널 때도 밖을 보지 못하도록 배의 사방을 모두 가린다. 광해군은 1637년 6월 6일 행원포구(어등포)에 입항한 후에야 제주도로 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다.
다음날 제주 관아 망경루 남쪽(지금의 제주 구시가지 중앙로 제민신협 본점 터)에 위리안치까지 된다. 위리안치(圍籬安置)란 죄인이 귀양살이하는 곳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만든 울타리 안에 가두는 또 하나의 형벌이다.
제주 유배 4년 4개월 만인 1641년(인조 19)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제주에 유배되어온 이 가운데 가장 신분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업적을 남긴 개혁 군주로 정쟁에 휘말려 화를 입은 광해군. 위리안치되어 생활하던 곳도 남아 있지 않고, '광해군 적소터'라는 표지석 하나만 달랑 남아 있다.
걷는 독서
올레19길에 이어 20길에도 박노해의 시어가 전시되어 있다. 제주올레는 박노해의 저서 <걷는 독서>의 책 표지와 같은 파란색의 게시판에 시인의 간결한 글을 전시해 올레꾼에게 울림을 준다.
<걷는 독서>는 박노해가 젊은 날 무기수의 몸으로 한 평 감옥에 갇혀서도 계속했던 ‘걷는 독서’ 중 떠오른 짧은 생각들을 모은 책이다. 말이 길 필요가 없다. 소통하는 데는 단 한 줄로도 충분하다. 시어 한 줄이 한 권의 책을 응축된 듯하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좋은 동행자와 함께 하면 그 어떤 길도 멀지 않은 법이다."
"자주, 그리고 환히 웃어요. 가끔, 그리고 깊이 울어요."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내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박노해, '걷는 독서'에서
좌가연대
동쪽으로 입두연대, 서쪽으로 무주 연대와 정보를 주고받았던 옛 군사시설이다. 역할은 봉수대와 별다름이 없다. 산 정상에는 봉수대를 설치하고, 구릉지대에는 연대를 세워 주변을 살펴 교신하였다.
좌가연대(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15호)
이들은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서로 연락한다. 기상이 여의치 않으면 파발을 띄우기도 했다.
밭담은 계속 이어진다. 수확을 하고 새로운 작물이 심어지지 않은 밭에 유채와 잡풀이 자라고 있고 돌담에는 선인장이 언덕을 이루고 있다.
벵듸길. 평대마을은 '벵듸' 또는 '벵디'라고 불렸다. 돌과 잡풀이 우거진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다. 마을의 유래를 짐작하게 하는 잡풀이 우거진 벵듸길은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하며 넓은 들판으로 이어진다.
세화오일장은 제주 동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일장이다. 매 5일, 10일에 장이 선다. 오후 4시면 파장이다. 일제강점기 해녀항쟁의 주 무대였던 세화장의 풍경을 보고 싶어 늦지 않게 서두른다.
세화포구에 인접해 있어 해산물이 특히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물전, 젓갈전, 채소전에 사람들이 붐빈다. 옷가게는 한쪽으로 밀려나 한산하다. 한칸에서는 둘러서서 어묵을 먹고 있다. 꽃가게의 활짝 핀 꽃들이 장날 풍경을 화사하게 밝힌다.
세화장은 매 5일, 10일에 열리고 오후 4시면 파장이다.
비록 지붕이 새로 올려지고 마당과 돌담에 시멘트를 발랐지만, 나무 창살이 아름다운 깔끔한 옛날집이 탐이 나는 모양이다. 아내는 남의 집 앞에서 사진을 찍겠단다. 春芽遇雨玉花發(춘아우우옥화발)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가가 올려진 카페 '달치즈' 담벼락에 줄자로 재었다며 해발 3.3m라는 알쏭달쏭 한 간판이 있다. 카페라서 막걸리는 안 판단다. 맥주는 팔면서.
해녀박물관에서 오늘 일정을 마친다. 해녀박물관 근처에 카페와 음식점, 게스트 하우스가 많다. 제법 큰 규모의 제주올레21코스 공식 안내소도 있다. (2022.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