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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Jul 31. 2023

화해와 상생의 기운을 모아 지핀 불꽃으로

제주4.3평화공원

김 선생, 미국 남부 지방은 풍광이 어떻습니까? 미 동북부와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댈러스로 돌아가는 길에 보내 주신 카톡 잘 읽었습니다. 여행하면서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새삼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제주의 자연을 이해하려면 곶자왈이 중요하듯이, 제주의 역사와 민중의 삶을 이해하려면 4.3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올레를 걸으면서 제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4.3 유적지를 둘러보았지만 당시의 참상이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작년 초겨울 4.3 평화기념관을 방문하여 전시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봄 4.3 추념식을 다녀왔습니다. 4.3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짓누르지만 그 역사적 무게감이 부담스러워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자료를 챙깁니다.




제주 4.3 평화공원은 4.3 때 일어난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당시 제주도민의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조성한 평화ㆍ인권 공원입니다.

제주 4.3 평화공원
제주 4.3 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ㆍ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 4.3 사건진상보고서>


평화공원 중앙의 위령탑을 먼저 찾아갑니다. 위령탑은 탑이 가운데 서 있고, 그 주위로 연못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제주도 각 마을의 정화수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제주도의 오름과 분화구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하나의 위령탑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분화된 대립을 극복하고, 암울했던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하기 위한 살아남은 사람들의 어울림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위령탑

위령탑 뒤편 계단을 오르면 위령광장을 만납니다. 해마다 매년 4월 3일이면 넓은 잔디 광장에서 추념식이 봉행됩니다. 광장 앞쪽에 마련된 위령제단에서 고개를 숙여 묵념합니다. '꺼지지 않는 불'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위령광장

한라산 거친오름 기슭에 자리 잡은 위령광장 뒤편은 4.3 희생자의 억울한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공식 인정된 14,401위의) 희생자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위패봉안실입니다. 위패봉안실을 들어서면 희생자 영위비가 세워져 있고, '평화와 상생의 기운을 모아 지핀 불꽃으로 언 가슴을 녹이고 닫힌 마음을 열기를 기원'하는 발원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4.3 희생자 영위비

일반 참배객은 여기서 분향합니다. 희생자 가족들은 각자의 위패를 찾아가 국화, 제주, 과일, 음료수와 사연을 적은 편지를 놓고 참배합니다.

위패봉안실

위패봉안실 오른쪽에 4. 3 당시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한국전쟁 발발직후 행방불명되어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행방불명인 표석' 3천9백여 기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망일을 모르고 시신도 안치하지 못한 유족들은 매년 4월 3일 이곳을 찾아 참배하고 있습니다.

행방불명자 표석과 위령단

제주 4.3 평화재단은 행방불명 희생자 개인별 표석을 설치하고 위령단을 마련하였습니다. 둥글게 누워 있는 비석에 형무소에서 보내온 편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ㆍㆍㆍ매형에게 부탁하였으니 소와 말을 잘 관리하여 주기를 부탁합니다ㆍㆍㆍ'


'ㆍㆍㆍ몸과 기력에 영양 있는 약, 비타민을 한 병만 사서 부쳐주길ㆍㆍㆍ'


'ㆍㆍㆍ늙으신 어머님 처자식의 소식을 듣고 싶사오니 속히 답장하여 주십시오.'


형무소에서 보내 온 편지, <제주4.3평화기념관 제공>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태연하게 집안 걱정을 하는 편지글이 목을 메이게 합니다.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화북 등 제주도내 8개 지역에서 발굴된 4.3 희생자 유해 400 여구가 안치된 봉안관이 있습니다. 봉안관에는 2009년 확인된 제주국제공항 4.3 희생자 학살암매장 구덩이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봉안당

다시 위령광장 중앙으로 나와 위령탑 뒤쪽에서 제주바다를 바라보며, 아직까지 이름도 제대로 정명하지 못한 4.3의 아픔을 되새깁니다.


굼부리 모양을 한 위령탑 주위를 빙 둘러 4.3 희생자의 각명비가 세워져 있다. 희생자의 이름, 성별, 당시 나이, 사망 일시와 장소가 새겨진 각명비입니다.

각명비

1살, 3살, 4살, 6살, 8살의 어린이도 보입니다. 인두겁을 쓰고 어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 선생, 4.3 평화기념관으로 들어가 봅시다. (2023.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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