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동 둘러보기 3
남편이 총살될 때는 대포리 상동 주민들이 회수리로 소개해 살던 때입니다. 남편이 중문리로 끌려가자 난 저녁밥을 준비해 찾아갔지요. 그런데 유치장에는 남편이 없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서성거리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습니다. 남편이 총살당하는 소리라는 걸 알고는 눈물이 쏟아져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습니다. 급히 현장에 가보니 쇠줄로 목이 묶인 채 총에 맞은 36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무고합니다. 남편은 당시 경찰이던 5촌 삼촌(송두석 경사, 당숙)의 권유로 경찰에 지원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또 다른 5촌 삼촌(당숙)이 입산한 것에 연루됐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 5촌 삼촌(당숙)은 진작부터 대정골에 양자 들어 남편과 얼굴도 잘 모르던 사이였습니다. 총살장에서의 상황은 그 자리에서 총 한 발 맞지 않고 구사일생한 이문기 씨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이문기 씨에 의하면 총살 직전에 일부는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쳤고, 일부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토벌대는 ‘이 놈은 대한민국 만세라고 했지만 제 친척에게서 물이 들지 않았을 리 없다’면서 남편을 쏘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난 ‘총살자 가족’이라 하여 갖은 수모를 겪었습니다. 한 번은 생손을 몹시 앓아 보초 시간에 5분 늦었는데 서북청년단 출신 응원경찰이 총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그때 허리를 다쳐 지금도 제대로 걷지 못합니다. 16살 동갑으로 결혼해 21살 때 남편을 잃었습니다만 그동안 어디에 하소연 한번 못 해봤습니다. 당시 3살이던 아들 하나 의지했는데 아들도 얼마 전에 병으로 죽었어요.
- 중문동 임춘득 씨의 증언 <출처: 제주 4.3 연구소, 『4.3 유적Ⅱ』>
ㆍㆍㆍㆍㆍㆍ중문면 출신 786위 영령들이시여! 저희들을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얼마나 가슴 아픈 눈물을 홀리셨습니까. 누가 저 어린것 보살펴 줄까 걱정이 되어 얼마나 힘들게 눈을 감으셨습니까. 한이 맺혀 얼마나 오래도록 구천을 헤매셨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 걱정일랑 다 내려놓으소서. 젖먹이였거나 10살 안팎의 어린이였던 저희들이 어느덧 자식은 물론 손자 손녀까지 거느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대를 잇는 후손들입니다. 저희들은 고난과 박해에 굴하지 않고 고사리 같은 여린 손으로 잿더미가 된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또한 분한 마음을 복수로 풀어내지 않았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아껴 주면서 아름다운 제주 공동체를 복원해 냈습니다.
4.3 영령들이시여! 억울하게 희생되신 당신을 위령하고자 이곳 천제연공원에 작은 빗돌 하나를 세웁니다. 단 한번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당신의 영혼을 이곳에서 뵈려고 합니다. 모든 국민들이 이 빗돌 앞에 머리 숙이며 평화와 통일과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길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4.3 영령들이시여! 이제 맺힌 한을 푸시고 저희 후손들을 굽어 살펴 주소서!(김종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