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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Sep 25. 2023

선녀가 놀던 천제연의 두 얼굴

중문동 둘러보기 3

한라산의 남서쪽 녹하지악 인근에서 발원하여 중문동을 관통해 흐르는 중문천. 돌오름 인근에서 발원한 또 하나의 하천, 색달천. 두 하천은 따로따로 흐르다가 중문2교 못 미쳐서 합류하여 천제연폭포에서 3단으로 떨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탐라지』, 『영주산대총도』의 기록으로 보아 ‘색달천(塞達川)’이라 불렀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의 지도는 중문천으로 기재하고 있다.


연 난대림 속의 3단 폭포


중문성당을 둘러보고 천제연폭포로 간다. 신혼여행 때 들르고 40여 년만에 처음이다. 계곡을 따라 동쪽과 서쪽으로 형성된 기암절벽은 난대림이 우거져 경관이 수려하다.

제1폭포와 주상절리

천제연폭포는 3단의 폭포로 나뉘어져 있다. 폭포 아래 생긴 못(소)는 위치에 따라 웃소, 알소, 가래소라 했다.


제1폭포는 천제교 아래, 주상절리 절벽에서 웃소로 떨어진다. 중문천은 건천이다.  비가 와서 중문천에 물이 차야 22m 높이의 폭포수가 떨어지장관을 볼 수 있.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에메랄드 빛, 웃소는 폭포수가 떨어지지 않아도 수심 21m를 유지할 정도로 소가 깊다. 이유가 뭘까?

바위틈에서 쏟아지는 용천수

제1폭포는 주상 절리가 발달한 곳이다. 선녀의 주름치마처럼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주상절리가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다.  바위틈에서 이가 덜덜 떨리도록 차가운 물이 쏟아진다. 백중, 처서에 이 물을 맞으면 모든 병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지금은 목욕은 물론 출입도 금지되어 있다. 물 좋고 경치가 좋으니 선녀들이 내려와서 목욕하였다는 전설은 양념처럼 따라온다.

제2폭포

성천봉 바위틈 곳곳에서 솟아 나오는 용천수는 양이 많아 웃소를 채우고, 알소, 가래소로 넘쳐흐른다. 천제연의 물이 더 아래로 흐르면서 형성된 제2, 3폭포는 제1폭포와 달리 항상 폭포수가 떨어진다.


제2폭포는 폭포수의 폭도 넓고, 상록 난대림 사이로 수묵화를 그리듯 떨어진다. 실제로 천제연의 풍광을 그린 수묵화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전망대에 세워져 있다.

형상 제주목사가 천제연폭포에서 활 쏘는 모습을 그린 그림, 현폭사후다. 천제연폭포를 상폭(위쪽 폭포)과 하폭(아래쪽 폭포)으로 구분해 그려놓았다. 활쏘기는 제2폭포에서 실시하였다. 천제연폭포 변의 나무들을 울창하게 그려 난대림이 우거진 연경관도 잘 묘사한 그림이다.

제3폭포

물을 이용한 채구석의 실용 정신


제3폭포는 최하단이라 가장 많은 양의 폭포수가 절벽에서 시원하게 쏟아진다. 3단으로 떨어진 폭포수는 '별이 내리는 내', ‘베릿내(성천, 星川)’를 거쳐 바다로 흘러든다.


제주에는 물이 귀하다. 그 귀한 물이 바다로 흘러가버리는 것을 아깝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개항기 제주판관, 대정군수를 지낸 채구석은 이 물을 이용하여 논농사를 지을 생각을 한다. 3년 여 노력 끝에 관개수로를 만들었다. 성천수로다. 열을 이용하여 암반을 깨고, 1906년 ~1908년, 1917년~1923년 2차에 걸쳐 관개수로와 5만 여 평의 논을 개간하였다. 1970년대 중문관광단지 개발지구에 편입되기 전에는 중문관광단지에서 컨벤션센터까지 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베릿내계곡 물로 60년간 논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관개수로와 유적비

많은 사람들이 천제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때, 채구석은 물을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사용할 생각을 했다. 만인이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슬기로운 지혜로 자연을 이용한 채구석의 실용정신을 관개수로에서 배운다. 이를 기리기 위해 제3폭포 가는 계단 옆에 '성천답 관개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베릿내의 슬픔


제2폭포와 제3 폭포 사이에 아치형의 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선임교다. 옥황상제를 모시던 칠선녀가 옥피리를 불며 내려와 노닐다 올라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칠선녀다리로도 불린다. 천제연(天帝淵)이라는 이름도 칠선녀가 모시던 '하느님(天帝)'에서 유래됐는 설이 있다.

선임교

칠선녀다리에 올라서니 한라산, 천제연 난대림지대 사이로 살짝 모습을 보이는 별이 내리는 내, 하구의 성천포구가 보인다. 베릿내계곡을 덮은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378호)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솔잎란, 담팔수(지방기념물 제14호)가 자생하고 있다. 자금우, 돈나무, 백량금 등의 상록 관목과 후추등, 마삭줄, 남오미자 등의 덩굴식물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콩짜개덩굴, 도깨비쇠고비, 더부살이고사리 등의 양치식물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베릿내 계곡(오른쪽), 담팔수(오른쪽)

상록 난대림이 우거진 숲 속에 3단의 폭포와 선녀가 목욕하던 소가 있는, 이름도 아름다운 베릿내 계곡은 50여 년 동안 통한의 슬픔을 숨기고 있었다.


선임교 동쪽의 캠프장은 일제 때 도살장이 있던 곳이다. 4.3 당시는 소나무가 우거졌던 곳인데, 1948년 12월 2일 토벌대는 이 도살장 터에서 월평동, 회수동, 예래동 주민 수십 명을 학살했다. 같은 달 6일에도 회수동, 대포동, 예래동, 월평동 주민 36명을 학살했다.

천제연공원 캠프장(4.3 당시 주민 학살터)

당시 남편(대포리 송성옥)이 토벌대에 희생된 임춘득 씨는 그날의 참상을 이렇게 증언한다.

남편이 총살될 때는 대포리 상동 주민들이 회수리로 소개해 살던 때입니다. 남편이 중문리로 끌려가자 난 저녁밥을 준비해 찾아갔지요. 그런데 유치장에는 남편이 없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서성거리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습니다. 남편이 총살당하는 소리라는 걸 알고는 눈물이 쏟아져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습니다. 급히 현장에 가보니 쇠줄로 목이 묶인 채 총에 맞은 36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무고합니다. 남편은 당시 경찰이던 5촌 삼촌(송두석 경사, 당숙)의 권유로 경찰에 지원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또 다른 5촌 삼촌(당숙)이 입산한 것에 연루됐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 5촌 삼촌(당숙)은 진작부터 대정골에 양자 들어 남편과 얼굴도 잘 모르던 사이였습니다. 총살장에서의 상황은 그 자리에서 총 한 발 맞지 않고 구사일생한 이문기 씨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이문기 씨에 의하면 총살 직전에 일부는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쳤고, 일부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토벌대는 ‘이 놈은 대한민국 만세라고 했지만 제 친척에게서 물이 들지 않았을 리 없다’면서 남편을 쏘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난 ‘총살자 가족’이라 하여 갖은 수모를 겪었습니다. 한 번은 생손을 몹시 앓아 보초 시간에 5분 늦었는데 서북청년단 출신 응원경찰이 총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그때 허리를 다쳐 지금도 제대로 걷지 못합니다. 16살 동갑으로 결혼해 21살 때 남편을 잃었습니다만 그동안 어디에 하소연 한번 못 해봤습니다. 당시 3살이던 아들 하나 의지했는데 아들도 얼마 전에 병으로 죽었어요.

- 중문동 임춘득 씨의 증언 <출처: 제주 4.3 연구소, 『4.3 유적Ⅱ』>


2008년 봄, 4.3 희생자 중문유족회는 캠프장 앞 소나무 밭에 제주 4.3 중문면 희생자 위령비를 세웠다.

제주4.3 중문면 희생자 위령비
ㆍㆍㆍㆍㆍㆍ중문면 출신 786위 영령들이시여! 저희들을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얼마나 가슴 아픈 눈물을 홀리셨습니까. 누가 저 어린것 보살펴 줄까 걱정이 되어 얼마나 힘들게 눈을 감으셨습니까. 한이 맺혀 얼마나 오래도록 구천을 헤매셨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 걱정일랑 다 내려놓으소서. 젖먹이였거나 10살 안팎의 어린이였던 저희들이 어느덧 자식은 물론 손자 손녀까지 거느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대를 잇는 후손들입니다. 저희들은 고난과 박해에 굴하지 않고 고사리 같은 여린 손으로 잿더미가 된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또한 분한 마음을 복수로 풀어내지 않았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아껴 주면서 아름다운 제주 공동체를 복원해 냈습니다.

4.3 영령들이시여! 억울하게 희생되신 당신을 위령하고자 이곳 천제연공원에 작은 빗돌 하나를 세웁니다. 단 한번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당신의 영혼을 이곳에서 뵈려고 합니다. 모든 국민들이 이 빗돌 앞에 머리 숙이며 평화와 통일과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길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4.3 영령들이시여! 이제 맺힌 한을 푸시고 저희 후손들을 굽어 살펴 주소서!(김종민 쓰다)
중문면 희생자 786위 영령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4.3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중문면 영남리, 용흥리, 강정리, 도순리, 월평리, 하원리, 대포리, 회수리, 중문리, 색달리, 상예리, 하예리의 희생자 786위 영령들의 이름을 60년 만에 빗돌에 새겨 영령을 위로하고 후세에 그날의 참상을 알린다. 그러면서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복수로 풀지 않고 화해와 상생으로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였음을 영령께 보고 드린다.


천제연 학살터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관광 안내소에서 도움을 받는다. 안내사는 여러 곳에 전화하여 장소를 알려 주었다. 안내사의 친절함에 감사드린다.


천제연폭포는 하루에 수십대의 관광버스가 다녀가는 전통적인 관광지다. 캠프장에 학살터의 흔적을 남기기 어려움이 있다면, 위령비 옆에라도 안내판을 세웠으면 한다. 중문 성당과 서청 사무실터에만 안내판이 있다. 평화와 상생을 기원하는 역사교육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2023.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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