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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Sep 21. 2023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려나

중문동 둘러보기 2

초토화작전으로 토벌이 심해지자, 청년들 대부분은 입산했다가 희생된다. 도피자 가족들은 '신사터(현 중문성당)'에서 잇따라 총살된다. '신사터'는 일제강점기에 신사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 중문천주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중문천주교회(제주 4.3 기념성당)

소나무숲이 우거진 으슥한 신사 터는 4·3 당시 군경과 서청의 중문면 주민 학살 장소였다. 이곳에서 17회에 걸쳐 중문리 주민 34명 등 인근 마을 주민 총 71명이 희생되었다. 특히 12월 15일부터 18일까지 4일 동안에만 40명이 집단학살되었다. 12월 17일에는 중문리 주민 20여 명을 도피자 가족이란 이유로 80대 노인에서부터 2살 난 아기까지 집단총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현재 중문성당은 제주 4.3 기념성당이다. 당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성당 곳곳에 4·3 유적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고 기념관을 건립하는 중이다.


제주 4·3을 신앙 속에서 기억하고 평화의 초석으로 삼기 위해 성당 뜰에 세워진 십자가가 탐방객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한라산 아래 널브러진 수많은 시신 더미와 군경의 총탄에 맞아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는 주민의 모습이 새겨 있다.

4.3 기념 십자가

맞은편 길 건너 서북청년단(이하 서청) 사무실이 있었던 옛터에 ‘4.3 유적지’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은 ‘중문리에 서청이 집단적으로 머문 것은 4·3 발발 1년 전부터다. 서청은 1947년부터 10여 명 정도 중문의 원동산 민가에 기거하면서 주민들에게 태극기 등을 큰돈에 강매하는 등 횡포를 일삼았다. 면사무소에 찾아가 특별 배급을 5배가량 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이때 서청의 감정을 샀던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죽임을 당했다'적고 있다. 서청이 기거했던 사무실 터에는 현재 호텔이 들어섰다.

중문 서북청년회 사무실 옛터

무장대의 중문지서 습격 이후부터 청으로 구성된  특별중대가 중문초등학교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토벌대로 2연대, 경찰, 이 제각기 주둔하게 된 것이다. 이 중 핵심세력은 서청이었다. 서청이 토벌 전면에 등장했다. 이후 중문면 주민들에 대한 토벌대의 학살극이 가속화되었다. 주민들을 연행하고 취조하는 것은 경찰(서청)이, 학살은 군(서청으로 구성된 특별중대)이 담당했다고 한다.

지서피습 사건이 나자마자 마을에 있던 서청 중 일부는 경찰이 됐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지서 순경은 모두 제주 출신이었는데 상황이 바뀐 것이지요. 서청이 서귀포경찰서로 가서 순경 계급장을 달았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곧 중문지서에 나타났어요. 그들은 학력이 낮아 조서받을 능력도 없었지만 어디서 듣는지 '누가 산에서 내려와 숨어 있다더라'는 식의  정보수집은 잘했어요. 같은 경찰이라도 그들은 우리와 협의 없이 멋대로 했습니다. 또 서청과 육지출신 군인들로 구성된 특별중대 약 1개 소대병력이 지서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주둔했습니다. 소대장은 서봉호 소위로 기억합니다.

오두문(당시 경찰) 증언(제민일보, <4.3은 말한다>4, 1997, 255쪽)
사진 출처 : 제주4.3평화기념관

이 제주도에 들어온 시기는 1947년 3·1 사건 직후다. 시작은  제주도지사로 임명된 유해진이 경호원으로 데리고 들어오면서부터다. 4.3 발발 직전까지 제주도에 들어온 서청은 500~7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계급장도 없는 서청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이승만과 미군정이 배후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청은 북한에서 남하한 세력들이 1946년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청년단체다. 미군정은 서청의 극우적 성향을 이용해 미군정의 정책에 반대하는 지역에 이들을 투입하였다. ‘조국의 완전 자주독립 쟁취’ 등의 강령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극단적 반공주의자 이승만 정권 반대 세력 척결 조직이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비호를 받는 서청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눈에 거슬리면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고문하였다. 직책도, 계급도, 급여도 없이 경찰 보조기능을 하면서 갈취와 폭행을 일삼아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4.3의 진상조사가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대통령의 사과와 희생자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몇 년간 숨죽이고 있던 수구세력이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75주년을 맞은 올해 제주 4·3은 총성 없는 전쟁으로 돌아간 듯 어수선했다. 탈북자 출신 태영호 의원의 치고 빠지는 ‘4·3 색깔론’, 국힘당이 제주도 전역에 내건 수십 개의 자극적인 펼침막, 난데없이 자칭 ‘서북청년단’까지 나타났다.


급기야 중앙정치권에서 독립운동가 상을 철거하고 친일 군인의 상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꿈틀거린다. 한 발 더 나간다.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을 끌어내리고, 이승만의 동상을 세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야만의 시대가 오려는지 심히 우려된다. (2023.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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