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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Nov 09. 2023

벵뒤굴 특별탐험대

만년의 비밀 속으로 1


화산섬, 제주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등재지역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응회구,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이다.


10월 3일부터 6일간 거문오름 일대에서 '2023 세계유산축전'이 열렸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일부 미공개 동굴을 탐험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가 주어졌다. 세계자연유산 특별탐험대에 가하여 만 년의 비밀 속으로 들어간다.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류가 만들어낸 동굴들은 뛰어난 자연경관과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보호되고 있다. 탐험 절차도 까다롭다.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신청을 받아 소수 인원만 탐사를 허락한다. 벵뒤굴 탐방은 사전에 방문자 인적 사항을 문화재청에 보고해야만 입장이 가능할 만큼,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한다. 본인 확인을 위한 절차를 거치고 주의사항을 듣는다. 등산스틱, 셀카봉, 화기류,  칼 종류는 모두 사용금지다. 물 이외는 음식물 섭취도 금지한다. 무릎, 팔, 손가락 보호대를 착용하고, 탐험복으로 갈아입는다. 안전모, 장갑, 랜턴도 챙긴다.

벵뒤굴 1 출입문

벵뒤굴 1 출입문 앞에 선다.

지난 6월 용암길을 걸을 때, 철문에 막혀 아쉬워했던 벵뒤굴. 탐험대 4명에 해설사 1명과 안전요원 1명이 인솔할 만큼 어렵고 힘든 길이다. 미지의 동굴이라 설렘도 있지만, 난코스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해설사는 벵뒤굴 탄생 과정을 설명한다.

"폭발적인 용암분출로 높이 456m의 거문오름이 형성되었지요. 거문오름의 넓은 분화구는 많은 양의 용암을 더 이상 품고 있지 못하고, 용암은 마침내 화구벽을 넘어 대지 위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질풍노도의 소년기 용암이 만든 첫 번째 동굴이 벵뒤굴입니다."

벵뒤굴 개념도

미로형 동굴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류의 일부가 웃바매기오름 일대에서 어떤 이유인지 흐르지 못하고 막힌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합쳐지며 소용돌이치듯 돌아 복잡한 미로형 동굴이 만들어졌다.


"벵뒤굴(천연기념물 제490호)은 다층구조가 발달된 약 4.5km의 복잡한 미로형 동굴입니다. 작은 동굴들이 거미줄처럼 여러 갈래로 엃혀 있지요. 파란 라인이 동굴 속 길입니다. 우리는 2 입구에서 들어가서 3 입구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서 1 입구로 나옵니다. 서서 걸을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벵뒤굴 위의 삼나무 숲길

2 입구로 이동한다. 동굴 위의 삼나무 조림지를 걷는다. 삼나무 숲 사이에 가스버너까지 피워놓고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미안합니다. 식사하시는데. 여기는 세계문화유산보호구역입니다. 음식물 반입금지구역이고요. 얼른 챙겨서 나가주세요."

"보호구역 아닌 곳은 어딘가요."

"이 일대는 모두 보호구역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행사 중이기도 하고요. 다음 팀이 바로 따라올 겁니다. " 

"보호구역 안내판이 없던데."


해설사의 요구에 여자는 주섬주섬 챙기고, 남자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중간에 서비스 굴이 하나 있다.

마치 다리를 놓은 것처럼 가운데만 동굴 공간이 남아 있다.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 용암교다.

용암교

"이 모습을 보니 무엇이 연상됩니까. 살짝 앉아서 보세요. 반대쪽이 틔여 있어요. 다리처럼 보이지요. 용암교라 고 합니다. 동굴이었다가 무너진 것입니다."


거문오름에서 약 2km까지는 용암이 흐른 흔적만 있다. 이전에는 용암량이 일정치 못 해서 동굴을 만들지 못해다. 2.5km를 지나면서부터 흐르는 용암의 양이 일정해지면서 동굴이 만들어졌다.

용암교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지요."


하지만 거문오름에 가득 찼던 용암이 바로 펼쳐졌기에 지하를 많이 만들지 못한다. 만들어진 동굴도 천장의 두께가 얇다. 자연히 함몰된 공간이 많아 용암교로 남아 있기도 하고, 그 위를 다시 용암이 덮어 용암대지가 펼쳐지기도 한다.  


용암대지와 습지

숲을 빠져나와 습지를 만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붕어, 잉어들이 서식하던 넓은 습지였습니다. 방목하는 말, 소에게 물 먹이던 급수터였지요. 물이 맑고 양도 많았는데 활용을 안 하니 뻘이 쌓여 습지 식물이 가득합니다. 반대편으로 돌아가봅시다. 분위기가 다릅니다."

습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무엇일까. 용암대지이다. 파호이호이용암이라 한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서 그 면적을 가름할 수 없지만, 여기는 넓은 용담대지 위의 들판이었다. 벵뒤(벵듸)라 했다. 벵뒤는 넓고 평평한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이다. 벵뒤 아래는 여지없이 굴이 있다. 벵뒤굴은 넓은 빌레 아래 굴이라 벵뒤굴이다. 벵뒤 위에는 습지가 있다. 아아용암은 물을 담지 못하여 곶자왈을 만들고, 파호이호이용암은 물을 담아 못을 만든다.

용암대지

"어릴 때 고사리 따려 다니던 곳이에요. 이곳에 누워도 보고 앉아도 보고 친구들하고 놀던 곳입니다. 하늘에 뭉게뭉게 떠있는 구름을 보고 '저 구름은 내 야. 저 구름 타고 서울 갈 거야. 너는 부산으로 가. 이건 내 거야. 욕심내지 마.'하고 장난하던 곳입니다."


벵뒤굴(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490호)

벵뒤굴은 지표 가까이 분포하고 있다. 동굴 천장이 얇아 곳곳이 무너졌다. 하늘이 보이는 천장창이 모두 23개나 된다. 그중 18개는 사람이 출입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오늘 우리는 거미줄처럼 얽힌 미로 형태의 동굴 4.5km 중에서 출입할 수 있는 1, 2, 3 구간만 탐방한다.


"조금은 아쉬운 면이 있지만, 걸어보시면 왜 이 구간만 공개하는지 금세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벵뒤굴 2입구

"이제 굴 안으로 들어갑니다. 랜턴 불 켜세요. 장갑도 끼세요. 바닥을 잘 보시고요. 머리 조심하세요. 용암 다칩니다. 하하. 천천히 들어오세요."


좁은 공간을 기어서 통과한다. 한 사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다. 허리를 굽혀야 되는 공간과 무릎으로 기어야 되는 공간이 이어진다. 무릎, 팔목, 손가락 보호대와 헬멧, 장갑을 착용한 이유를 알겠다.

비좁은 벵뒤굴

"어둡고 밀폐된 공간이라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공포증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요. 불편한 증세가 있으시면 바로 말씀해 주셔요. 안전요원이 도와줍니다."


오전에 탐사한 조에서 폐소공포증을 호소하여 3 입구에서 안전요원의 도움을 받고 바깥으로 나간 분이 있다고 한다. 폐소공포증. 공간이 좁을수록 심한 공포를 느낀다. 좁은 공간에서의 답답함이 공포감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탐험대 4명에 인솔자를 두 명이나 배치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풀린다.

만년의 연륜이 쌓인 벵뒤굴

1만 년 동안 간직해 온 신비한 동굴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연의 위용과 경이로움에 연방 탄성을 내뱉는다. 만년의 연륜을 글과 사진으로 묘사하기는 역부족이다.


천장의 종유석에 달린 물방울이 영롱하다. 종유석은 랜턴 불빛에 형용하기 어려운 광채를 띠고 있다. 종유석 끝에 맺힌 맑은 물방울이 핼맷에 똑똑 떨어진다.

종유석

종유석. 통로가 좁아지는 구역의 천장에서 주로 발견된다. 동굴 내부로 흐르는 용암의 열 때문에 천장의 표면이 부분적으로 녹아내려 생긴 동굴생성물이다. 탐사대가 동굴 벽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이동하지만 자꾸 머리로 천장을 건드린다.

종유석

"천장에 종유석이 있습니다. 훼손되면 복원이 어렵습니다. 사실은 출입하는 자체도 훼손입니다. 탐사인원을 제한하여 일부에게만 공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툭 치면 내 머리도 다치지만 동굴이 다칩니다. 동굴을 지키면서 출입해야겠지요."


용암석순과 용암석주. 아내린 용암이 바닥으로 떨어져 촛불의 촛농처럼 바닥에 쌓인 것을 용암석순이라 한다. 언젠가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면 돌기둥이 된다. 이처럼 용암이 떨어지면서 만든 기둥을 용암석주라고 한다.

용암석주

용암주석. 용암이 흘러가면서 만든 기둥도 있다. 이는 주석이다. 이 굴 안에 70여가 있다. 이러한 용암기둥이 미로를 만든다.


"어느 길이 우리가 들어왔던 길인지 전문가도 길을 잃습니다. 표시를 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온 길을 못 찾습니다. 여러분은 세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미로형 용암 동굴 안에 오셨습니다."

용암주석

벵뒤굴 안에는 용암주석, 석주, 동굴산호, 종유석, 제방구조, 용암수로, 낙반 등과 같은 동굴지형이 잘 나타나 있다.


콧구멍 동굴. 용암이 흘러가면서 남긴 용암주석이 콧구멍 모습을 하고 있다. 벵뒤굴의 포토존이다. 안전요원이 사진을 찍어준다.

코구멍 동굴

용암수로. 1만 년 전 용암이 흐르면서 생겨난 흔적인 고스란히 남아있다.


"용암이 어떻게 흘렀을까요. 기둥을 남기고 용암이 흘러간 수로를 남겨 놓았지요."

용암수로

비가 내리다가 그쳤다 한다. 벵뒤굴 안에도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폭포 구조도 발견할 수 있다. 현무암 사이를 타고 내려온 빗물이 동굴 바닥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빛이 보인다.

3 입구

"3 입구입니다. 비가 많이 오면 흙이 흘러들어옵니다. 3, 4일 전에는 비가 많이 와서 장화를 신고 다닐 정도였니다. 박쥐들이 서식하기 좋은 공간이지요."


작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도 생물이 살아간다. 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동굴산호와 박쥐. 세대교체아주 짧은 박테리아가 계속 분열하고 증식하면서 1만 년 동안 켜켜이 쌓여온 놀라운 박테리아층 벵뒤굴 속에서 만난다. 또 제주도에만 서식하는 곤봉털띠 노래기, 성굴동거미, 제주동굴거미를 비롯하여 37종의 생물이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

박테리아

박테리아. 벵뒤굴 천장과 벽면에 오랜 세월을 지나며 형성된 박테리아층이 분포되어 있다. 살짝 접촉해도 훼손될 수 있다.


"손으로 문지르면 몇 만년동안 세월 속에 생성된 박테리아가 훼손됩니다. 한번 훼손되면 복원되기까지 또다시 수만 년의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

동굴산호

동굴 안은 습하다. 습도가 80% 이상이다. 15°C의 일정 온도를 유지한다. 천장이 뚫린 곳에서는 백연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세계유산본부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 동굴 환경상태를 점검한다.

환경 모니터링 시스템

1입구로 나온다.

1 입구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힘드셨지요. 오늘 탐사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왜 미공개를 하는지 알겠습니다."


"오기 전에 개척이 안된 굴인데 어떨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와보니까 신비스럽고,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고비고비 험난한 곳을 뚫고 나가는 인생역정을 느끼게 했습니다."


"힘든 길을 잘 참고 함께 걸어서 고맙습니다.  


"미공개 구간을 개방하므로 크고 작은 훼손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계유산축전 기간에 제한적 인원이나마 출입을 허가한 이유는 세계자연유산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어려운 경쟁을 뚫고 참가한 여러분들이 자연유산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웃바매기오름 입구에 셔틀버스가 기다린다. 물봉선, 쑥부쟁이가 벵뒤굴 특별탐험대의 무사귀환을 환영한다. 알밤오름이 뒤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세계자연유산 마을보존회에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서 위대한 자연의 숨결을 함께하며 그 소중한 가치를 느끼고 향유하기 위해 세계자연유산 특별탐험대의 대원으로 활동하였음"을 인증하는 증서를 받는다. (202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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