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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Nov 13. 2023

눈 비비고 일어난 용눈이오름

제주를 찾는 이들은 여행 일정에서 오름 한두 개는  포함한다. 짧은 시간에 오르고 높은 산을 오른 듯이 즐길 수 있는 점이 오름을 찾는 재미다. 그래서 전망이 확 트인 오름이 인기가 있다. 가을 제주 여행의 백미는 단연 억새풀이 바람에 흩날리는 오름이다. 제주 동부에서 그 조건을 갖춘 오름으로 용눈이오름을 들 수 있다.

주차장에서 본 용눈이오름

도로 옆에 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오름 자락의 방목장이 바로 펼쳐진다. 또 오름 정상의 굼부리까지 오르는 길이 완만하다. 산행시간도 1시간 안팎이면 충분하다. 쉽게 올라 뛰어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사진작가 김영갑이 카메라를 고 바람을 찍던 곳이라 더욱 유명세를 탄다.

동쪽 기슭에는 바람을 맞으며 억새 평원을 달리는 레일바이크 코스가 있다.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에 용눈이오름이 소개되어 오름이라기보다 관광지로 큰 사랑을 받았던 곳이다. 하지만 탐방객이 몰리면서 생태계의 훼손이 심각해진다. 당국은 용눈이오름의 식생복원을 위해 자연휴식년제를 결정한다.

지그재그로 오르는 탐방로

2년 4개월간의 휴식년을 거치고 올여름(7월) 다시 개방되었다. 오늘도 그 이름값을 하느라 관광버스가 단체 관광객을 풀어놓는다. 4,5세의 어린이부터 7,80대의 노인까지, 오름을 오르는 사람의 연령층도 다양하다.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 지미봉(왼쪽부터)

인체의 곡선처럼 부드러운 능선. 능선을 감아 오르는 굽어진 억새길. 오름 중턱의 정방형 산담의 직선. 선이 아름다운 오름이다. 인근 다랑쉬오름과 지미봉의 능선도 용눈이오름의 풍광과 한데 어우러진다.

능선과 능선 사이의 안부는 흰구름과 맞닿아 있다.

바람에 휘어지는 억새풀

부드러운 능선과 움푹 파인 굼부리, 바람에 휘어지는 억새를 담기 위해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용눈이오름. 억새풀이 하늘거리는 가을에는 웨딩 사진을 찍는 예비 신랑 신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굼부리

용눈이오름이란 이름의 어원이 항상 궁금했다.

한가운데가 움푹 파인 용눈이오름의 형세가 용이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하여 용와악(龍臥岳)이라 한 것에서 보통 그 유래를 찾는다. 용이 놀았던 자리라는 뜻을 담은 용유악(龍遊岳)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네개로 나누어진 굼부리

또 하나는 '탐라지도'에 용유악(龍遊岳)으로 표기하고 있어 원래는 용논이오름으로 불리던 것이 용눈이오름으로 소리가 바뀌면서 한자 표기도 용안악(龍眼岳)으로 적었다는 설이다. 실제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굼부리의 모습이 어쩌면 용의 눈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러 개의 굼부리를 부드러운 굴곡의 언덕이 영역을 구분하고 있으나 사진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정상부에서 본 북쪽 전망

잘 조성된 탐방로는 용눈이오름 북사면의 등고선을 따라 뱀처럼 휘어지면서 천천히 고도를 높여간다. 다랑쉬오름과 납작 엎드린 아끈다랑쉬오름 너머로 제주 북쪽 바다가 보인다. 그 앞으로 잃어버린 다랑쉬 마을과 다랑쉬 굴이 있는 들판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보인다.

용눈이오름 정상

구좌읍에 위치한 용눈이오름은 해발 247.8m, 비고 88m, 둘레 2,685m 정도소형 단성화산이지만 화산체의 형태가 매우 복잡한 복합형 화산체이다. 나무가 거의 없다. 나무로만 보면 민둥산이다. 봄, 여름에는 잔디가 덮은 초지다. 겨울에는 억새로 옷을 갈아입는다. 따라서 탐방 포인트는 억새와 조망이다.

굼부리 너머로 보이는 남쪽 전망

정상에 올라 움푹 파인 굼부리를 가운데 놓고 한 바퀴 돌던 둘레길은 막혔다. 북쪽 반만 개방했다. 남쪽 봉우리로 이어지는 굼부리 능선은 갈 수 없지만, 제주 동부지역의 오름 군락과 고즈넉한 제주 중산간 풍경을 감상할 있다.

정상에서 본 동쪽 전망

동쪽으로는 지미봉, 은다리오름과 두산봉이 겹쳐 보이는 뒤로 긴 꼬리를 드리운 우도가 헤엄쳐 간다. 더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식산봉과 성산일출봉, 대왕산과 소왕산, 섭지코지와 대수산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벽녘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기도 한다.

정상에서 돌아 내려가며 본 서쪽 전망

정상은 북동쪽에 있다. 남서쪽 봉우리, 서쪽의 알오름 봉우리와 함께 굼부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 안에 완만하게 파인 네 개의 굼부리가 동서로 길쭉하게 들어앉았다. 

서사면의 알오름

하산하면서 서사면에 봉긋 솟은 알오름을 오른다. 2년 4개월의 휴식년을 거친 산기슭은 내한성이 강한 수크령이 질긴 뿌리줄기를 사방으로 뻗친다. 원기둥 모양의 검은 자주색 꽃이삭이 바소꼴 모양을 하고 가을의 향연을 펼친다. 억새풀과 영역 다툼을 하고 있다.

산담

꼭대기에 무덤 1기가 있다. 제주 산담의 정수를 본다. 방형 겹담이다. 정수리를 살짝 누른 듯한 다랑쉬오름을 바로 보고 있다. 권세가 있거나 돈이 있는 사람의 무덤인가 보다. 이 높은 곳까지 돌을 나르려면 힘들었을 텐데.

손자봉

서쪽으로 손자봉이 가까이 다가온다. 좌우로 아부오름과 당오름을 거느리고. 손자봉 오르는 길이 확연하게 보인다. 억새가 좋은 인근 오름으로 소개한 글을 읽고 다랑쉬오름 가는 길에 들렀다가 혼이 났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희미하다. 들머리부터 잡초를 헤치며 간다. 억새 사이에 가시덤불도 엉켜있다. 진드기도 겁이 난다. 평소에 잘 안 하는 결정을 한다. 정상 오르기를 포기했다.

손자봉 후박나무 군락

손자봉 들머리의 후박나무 군락이 인상적이라 그 흔적을 사진으로 남겨둔다. 글 솜씨 있는 여행작가의 탐방기에 현혹되면 낭패를 당한다. 손자봉 탐방은 권하고 싶지 않다. (202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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