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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Oct 21. 2023

용암이 개척하고 숲의 정령들이 완성한 길

[불의 숨길 2구간] 용암의 길


거문오름용암동굴계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생성과정을 따라 만 년의 시간을 걷는다. 거문오름 분화구 안을 도는 1구간(5.5km) 사전 예약을 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상시 개방구역이다. 불의 숨길 2~4구간은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미개방 구역이다. 1년에 한 번 세계유산축전 기간에 며칠만 한시적으로 길이 열린다. 우리는 평소에는 가지 못하는 2~ 4구간을 걸을 계획이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으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분출된 많은 양의  현무암질 용암류가 지표를 따라 해안까지 흘러가면서 만들어낸 용암동굴 무리를 말한다.


"거문오름은 팔천년 전에 형성되었어요. 만들어진 초기에 용암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와 높이 456m의 화산체를 만들었는데 거문오름이지요. 그 후 거문오름이 품고 있던 많은 양의 용암은 화산폭발의 힘이 줄어들면서 화구벽을 넘쳐나옵니."

불의 숨길 안내판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용암동굴계 형성시기에 대해 20~30만 년 전, 또는 8000년 전 등을 놓고 많은 논란을 벌여왔다. 최근 제3의 연대측정법[(U-Th)/Heㆍ우라늄-토륨-헬륨 연대측정법]을 사용해 측정한 결과 8000년 전에 형성됐음을 확인하였다.


"거문오름에서 태어난 용암은 해발 350m 정도 되는 중산간 지역에서 기세 좋게 출발하여 거의 일직선으로 흘러내립니다. 벵뒤,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을 차례로 만들어내며 14km를 내달아 월성리 바닷가에 닿아 생을 마감합니다."

"이번 축전에서 공개하는 불의 숨길은 용암이 흘러간 길을 따라갑니다. 용암동굴 위로 걸을 거예요. 길이는 총 20여 km 정도 되고요. 직선거리와는 차이가 있지요. 오늘 우리가 걸을 2구간 용암길웃산전굴까지 인데, 4.8km입니다. 울퉁불퉁한 돌길로 난이도가 높은 구간이라 3시간에서 3시간 반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요. 자 출발합시다."

동굴 탐방을 따로 했던 강 선생과 합류했다. 함께 걸을 탐방객 6명은 인솔자인 자연유산 해설사를 따라나선다.

불의 숨길


용암이 길을 내고


거문오름에 가득 찼던 용암이 화구벽을 뚫고 무너뜨리면서 빠른 속도로 펼쳐졌다. 용암류의 흐르는 중심부는 재빠르게 흐르고,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주변부는 더 느리고 점성이 높아 얇게 굳어져 바스러졌다.

용암협곡

"또 용암량도 일정치 않아 거문오름에서 약 2km까지는 동굴을 만들지 못하고 용암이 흐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용암동굴이 무너지면서 생긴 붕괴 도랑이 곳곳에 있습니다. 용암협곡이지요. 용암이 부서져 날카롭게 된 아아용암(aa lava)이 사방을 덮고 있습니다. 조심해서 걸어야 합니다."


꾸지뽕. 개활지 억새밭을 지나 본격적으로 난대림이 우거진 숲 속으로 들어간다. 새소리가 들린다. '용암이 개척하고 숲의 정령들이 완성한 길'이란 말이 실감 난다. 돌 많고 메마른 땅에서 무리 지어 자라는 꾸지뽕나무를 만난다.

꾸지뽕나무와 꾸지뽕나무 열매

"꾸지뽕나무네요. 이게 열매고요. 가지에 가시가 있습니다. 뽕나무를 닮았지만 뽕나무가 아닌데도 '굳이 뽕나무'를 하겠다고 우겨서 '꾸지뽕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아용암길

돌무더기가 널려있어 걷기가 불편하다. 해설자가 주는 꾸지뽕 열매를 받다가 그만 발을 접질린다. 발을 움직여 본다. 많이 다친 것은 같지는 않다. 소염진통제 스프레이를 뿌리고 다시 걷는다.

산박하

산박하가 곧게 선 줄기 위에 파란빛을 띤 자줏빛 꽃을  달고 있다. 잎이 깻잎처럼 생겼다. 노랑나비가 날아와 꿀을 빨고 있다.


주변에 상수리나무, 가시나무 등 참나무류가 많다. 서어나무, 때죽나무도 무리 지어 있다. 맹아림이 이어진다.

참나무과 교목

숫가마터를 만난다.

제주 곶자왈을 걷다 보면 숯가마터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대부분 숯가마들은 허물어져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덩이처럼 보여 무심코 지나친다.

숯가마터

여기는 보존 상태가 좋다.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내벽은 돌담으로 둘러쌓고, 외벽은 주위의 언덕을 이용하여 반은 땅에 묻혔고 반은 돌담으로 쌓아 올렸다. 위에는 흙을 덮어 돔형 지붕을 만들었는데 풀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 앞에 불문이 있고, 뒤의 굴뚝 사이로 나무가 우거진 하늘이 보인다.

숯가마 불문(왼쪽), 굴뚝(오른쪽)

숯은 참숯을 으뜸으로 친다. 숯가마 터가 있다는 것은 주변에 참나무류가 많기 때문이다.

일회용 숯가마터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주도 오름 곳곳에 숯을 굽는 사람들이 있었다. 화석연료가 숯을 대신하고 박정희 군사정권 삼림녹화사업으로 숯가마에 불길이 꺼졌다. 해설사는 남아있는 숯가마터 흔적에서 사라져 가는 당시 민초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되살려한다. 


"연탄아궁이가 먼저일까요, 석유곤로가 먼저일까요?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아실 테지만"


해설사의 눈길이 강 선생에게 멈추자, 강 선생은 얼른 응수한다. "음 음. 나는 몰라요. 알면 내가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이 되는데."


정령들이 꾸며 놓은 꿈의 정원


"잎이 2∼3개(이)고, 주름이 있지요. 새우란입니다. 봄에 흰색, 연한 자주색 또는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의 꽃이 핍니다. 제주도 곶자왈에서 자생지하여러해살이풀입니다." 

새우난초

말로만 듣던 희귀종 야생 새우란이 눈앞에 있다. "아, 이게 새우란인가."

 해설사는 "제주도 곶자왈이나 숲 속 음지의 비옥한 곳에 많이 있는데." 하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정확히는 새우난초(이)랍니다. 뿌리줄기의 모양이 새우와 비슷하여 새우난초라 합니다."

달팽이(왼쪽), 달걀버섯(오른쪽)

나무 둥치에 달팽이가 붙어 있다. 달팽이는 나뭇잎의 조류, 곰팡이, 세균 등을 먹고 산다. 달팽이 역시 숲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식물의 분해를 돕거나 나뭇잎의 곰팡이 등을 먹어 나무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한다.


화려한 붉은색 버섯이 고개를 내민다.

"이거 무슨 버섯이게요?",

"독버섯?"

"보통 색깔이 예쁜 버섯은 독버섯인데 식용버섯이예요. 고대 로마시대 네로황제에게 버섯을 진상하면 무게를 달아 같은 양의 황금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맛이 좋은 달걀버섯이랍니다."

누리장나무

"이거 냄새 한번 맡아보세요."

강한 냄새가 난다. 냄새가 고약하여 개똥나무, 구릿대나무라고도 부르는 누리장나무다. 그런데 꽃말이 '깨끗한 사랑'이라니.

양하

초가집 처마 밑에 심어 빗물이 떨어져 땅이 패이는 것을 방지하고, 특유의 향으로 뱀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는 양하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앞에 본 새우란과 구분이 안돼서 자세히 살펴본다.

초피나무

추어탕집에서 향신료를 놓고 '산초가루'냐 '제피가루'냐 자주 논쟁을 하는 주인공, 초피나무. 한쪽은 산초가 표준말이고 제피는 사투리라고 주장한다. 또 한쪽은 제피와 산초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가시를 살펴보면 싶게 구분할 수 있다. 남부지방에서 제피라고 부르는 초피는 가시가 '마주나기'하고, 산초는 '어긋나기'한다. 아마 일본에서 제피를 '山椒(산초, サンショウ)'라 하고, 우리말의 산초를 '椒(청초,イヌザンショウ)'라고 하는데서 생긴 오해일 것이다.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끝내 '전라도', '토착왜구'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막장 싸움판이 된다.

청미래덩굴

넓은 타원형이며 두껍고 윤기가 나는 잎으로 망개떡 싸개를 하는 청미래덩굴. 열매가 노란색을 거쳐 붉게 익어간다.


물을 담은 용암대지


용암이 개척한 현무암 돌더미와 덩굴식물, 가시덤불이 뒤엉킨 곶자왈 숲의 정령들이 완성한 활엽수림을 빠져나오니 파호이호이 용암대지가 기다린다.


"용암대지 위에 지의류가 생겨 바위를 부스러트려 토양을 만들고 풀씨가 날아와 초지가 됩니다. 또 단단한 암반 바닥 때문에 물이 땅 밑으로 빠질 수 없다.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나게 되지요. 소나 말을 방목하던 곳입니다."

용암대지

용암협곡이 이어지던 곳에 동굴 입구가 보인다. 웃산전굴 1 입구(이)다. 웃산전굴은 대형동굴인데,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형성된 2개의 입구가 있다. 내려가는 계단이 있지만 일정에 쫓긴 나머지 2입구로 바로 간다.

웃산전굴 1입구

용암대지 위의 벵뒤(돌과 풀이 우거진 넓은 들판) 길이 북오름을 향해 꼬불꼬불 이어진다. 땅 아래는 웃산전굴이 이어지고. 길에는 잔디가, 길섶에는 억새와 양치식물, 들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벵뒤길

닭의장풀. 잎겨드랑이로부터 자라난 짤막한 꽃대 끝에 노란 수술을 담은 한 송이의 파란색 꽃이 피어 있다. 달개비, 닭의밑씻개라는 특이한 별명을 가진 한해살이풀. 굵은 마디마다 잎의 생김새는 대나무와 흡사하다.

닭의장풀

용암 위에 생긴 물 웅덩이. 웃산전못이 대표적이다. 물달개비, 어리연, 순채 등 야생 동식물들의 서식처(이).  하지만 옛날에는 중산간 마을 주민의 식수와 생활용수로, 방목하던 소와 말의 음용수로 사용되던 소중한 수자원이었다. 

웃산전못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된 한 녹색의 순채 잎이 잔잔한 수면 위에  '얌전'히 떠 있다.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광택이 난다.

순채

동쪽에 못이 하나 더 있다. 수생 식물들이 점점 못 가운데로 밀고 들어온다.

웃산전못

웃산전굴


웃산전못을 돌아서니 용암대지가 둘러 꺼져 드러난 동굴이 나타난다. 웃산전굴 2 입구다. 땅바닥이 빙 둘러서 내려앉아 있다. 한참을 내려간다. 비공개 대형동굴이다.

웃산전굴 2입구

"웃산전굴은 거문오름에서부터 흐른 용암에 의해 만들어진 뱅뒤굴, 북오름굴 사이에서 발견됩니다. 북오름굴, 대림동굴과 함께 구좌읍 덕천리 일대에 발달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상류동굴군'에 해당합니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연장선상의 해발고도 265m 지점에 위치하고 길이는 약 2.4km가량 됩니다."

웃산전굴 2입구

"동굴내부는 다층 구조, 용암교, 용암종유, 용암유선, 용암 선반, 용암산호 등의 다양한 용암동굴 생성물이 발달하였습니다. 이차 동굴생성물로는 동굴산호, 방해석과 단백석 등으로 이루어진 분말가루 등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천장이나 벽면에서 떨어진 낙반이 전구간에 걸쳐 쌓여 진입과 이동이 어렵습니다."

웃산전굴 2입구

웃산전굴은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매우 높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상류동굴군(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굴)에 포함되어 2017. 1. 4.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듬해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되었다.

불의 숨길, 만년의 시간 중 청소년기를 지나왔다. 오는 길에 서쪽으로 살짝 방향을 비켜선 벵뒤굴은 남겨두고, 거대한 용암 협곡을 걸었다.

용암이 점점 굳어지며 동굴을 만들어내는 '동굴의 길'초입에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상류동굴군의 첫 번째 웃산전굴을 만났다. 여기서 용암길은 끝난다. 2구간의 출구이자 3구간 접수처가 설치된 덕천리 부스에 도착한다. 힘든 돌길이었다.

가을이 깊어간다. 억새풀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억새풀을 한참 들여다본다.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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