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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Oct 17. 2023

용암을 품었던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길

[불의 숨길 1구간] 시원(始原)의 길, 거문오름

불의 숨길, 만년의 시간을 걷는다. 2023 세계자연유산 워킹투어는 1구간 시원의 길에서 시작하여 2구간 용암의 길, 3구간 동굴의 길, 4구간 새 생명의 길로 이어진다. 특별탐험대(벵뒤굴, 만장굴과 김녕굴) 일정과 겹쳐 1구간 시원의 길은 신청하지 않아 지난 6월 탐방 자료를 정리하였다.

첫 번째 길인 시원의 길은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어머니'인 제주 선흘리 거문오름에서 시작한다.


거문오름은 제주도에서 분포하는 368개의 단성화산체(오름) 중의 하나이다. 제주도 동북쪽 해발 400m에 위치한 이 오름은 깊게 패인 굼부리(분화구) 안에 솟은 작은 봉우리가 있다. 굼부리북동쪽 화구벽이 열린 말굽형 굼부리이다. 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의 모습이 태극 문양으로 출렁인다. 그래서 태극길이라도 한다. 겉모습만으로도 왕성했던 화산활동을 미루어 추측할 수 있다.

백록담보다 훨씬 큰 굼부리에 가득 담고 있던 용암류는 북동쪽 낮은 화구벽을 허문다. 용암류는 월정리 해안까지 14km를 흘러가며 수많은 동굴과 용암대지를 만든다. 이를 거문오름용암동굴계라 한다. 벵뒤굴과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의 모체인 거문오름은 용암협곡, 수직동굴, 화산탄과 다양한 식생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인 곶자왈을 품고 있어 주목을 받는다.

탐방은 삼나무 조림지를 따라 굼부리 능선으로 오른다. 삼나무 숲 아래 산수국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헛꽃으로 한껏 치장하고 곤충을 유혹한다. 푸른빛을 띤 남색 꽃송이가 화려하지 않으면서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화전을 일구고 숯을 구워서 고단한 삶을 살던 옛 산사람들로 인해 황폐화되었던 만년 숲은 인공조림으로 다시 울창한 삼나무 숲을 이루었다. 요즘은 오히려 삼나무 인공 조림지를 자연림으로 유도하기 위해 (식생변화 모니터링 연구 지역으로 지정하여) 삼나무를 간벌하고 있다.

정상에 올라도 백록담보다 넓은 굼부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는 쉽지 않다. 숲이 우거져 굼부리의 형태는 눈으로 가늠할 수 없다.


"거문오름 주변에는 많은 오름들이 있습니다. 가까이 부소오름, 부대오름, 웃밤오름, 거친오름, 멀리는 한라산도 보입니다. 한라산이 폭발하여 하나씩 떨어진 기생화산이 아닙니다. 제각기 분출한 화산체입니다."

사방을 둘러본다. 물장오리, 민오름, 지그리오름, 거친오름, 바농오름, 명도암오름, 갯거리오름, 백약이오름, 칡오름, 민오름, 비치미오름, 개오름, 영주산, 성불오름, 따라비오름, 대록산 등 크고 작은 오름이 계속 이어진다.

"오름은 분화구를 갖고 있고, 화산쇄설물로 이루어져야 오름입니다. 제주에는 이름을 갖고 있는 368개의 오름이 있습니다. 이름이 없는 것도 있습니다. 바다 밑에 있는 화산체들입니다. 수월봉 앞, 바다 밑에도 분화구가 있습니다. 비양도, 범섬, 우도 등도 각기 독립화산체입니다. 이들과 성산일출봉, 송악산 등은 물을 만나서 폭발한 수성화산체입니다. 거문오름은 중간산에서 폭발한 것으로 분석구라고 합니다."

굼부리 안으로 내려선다. 알오름 주위로 굼부리 안을 한 바퀴 돈다. 곶자왈의 신비를 모두 보여준다. 용암협곡, 용암함몰구, 화산탄 등의 경이로운 화산지형은 어두컴컴할 정도로 울창한 난대 상록수림에 가려 신비로운 풍광을 사진 영으로는 묘사하기가 어렵다.

풍혈로 인해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숲이 우거져 화산 쇄설물과 함께 유난히 검게 보여 음산한 기운마저 풍긴다. 그래서 '검은오름'이라 부르던 것이 거문오름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거문오름에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의 흔적인 일제 갱도 진지, 병참도로 등 일본군의 태평양전쟁 때의 군사시설이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있다. 4.3 당시의 피난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제주 현대사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한라산, 성산일출봉과 함께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의 화산지형과 자연생태계의 보존을 위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해야 탐방이 가능하고 자연유산 해설사의 동행 없이는 탐방할 수 없다. 매주 화요일오름 보호를 위해 쉬는 날이다. 물을 제외한 음식물은 반입을 금지한다.  등산 스틱, 칼 등 소지할 수 없는 품목도 많으니 탐방 전에 확인이 필요하다.

용암함몰구, 수직동굴을 지나 용암길로 들어선다. 거문오름에서 태어난 용암은 월정리 앞바다를 향한 14km의 먼 여정을 시작한다. (202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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