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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Oct 27. 2023

벌레의 생존 전략

[불의 숨길 3구간] 동굴의 길(2), 대림굴과 만장굴 3입구


대림굴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상류동굴군'의 마지막 동굴, 대림굴을 만난다. 큐레이터가 인솔하면서 해설하는 다른 구간과 달리, 3구간은 거점해설구간이다. 또 다른 분이 기다리고 있다.

대림굴

"여기는 대림굴인데요. 행사 기간에 벵뒤굴, 만장굴 1구간, 김녕굴, 이 3곳은 동굴내부를 볼 수 있고, 여기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외부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대림굴 천장창

"굴이었는데 용암류가 함몰되면서 커다란 천정창이 생겼습니다. 동굴 내부에는 용암종유, 용암유석, 용암유선, 용암폭포 등의 다양한 용암 생성물과 미지형(微地形, 아주 작은 기복이 있는 지형)발달해 있습니다. 작년에는 축전 기간에 탐사를 허용했었는데 올해는 비공개로 전환했고요."

빛이 들어오는 수직입구 주변부에는 거미류와 곤충류 등의 동굴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해설사는 대림굴이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형성과 발달과정을 알려주는 동굴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자랑한다.


북오름굴과 만장굴 사이에 있는 약 200m 길이의 대림굴은 짧지만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연장성을 보여주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내부에 다양한 동굴 생성물들이 발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 우리가 다리 위에 서 있습니다. 이번 행사에 걷는 불의 길은 이런 위를 걷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걷다 보면 땅 밑이 쿵쿵거려요. 동굴 위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뒤를 돌아보세요. 또 다른 천장창이 있지요. 앞쪽과 뒤쪽이 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용암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너질 염려는 없는가요?"

"세월이 지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죠."

잣성

"돌담이 있죠? 처음에는 우마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바람으로부터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쌓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 세종 때 국영 목장을 만들어 우마를 키웠는데. 말들이 민가 쪽으로 못 도록 막기 위해 쌓았습니다. 잣성입니다. 상 중 하 잣성이 있습니다. 중산간 해발 150m에서 250m 되는 곳에 쌓은 것은 하잣성입니다. 600m 이상 올라가면 또 소말이 얼어 죽어요. 올라가지 라고 상잣성을 쌓았어요. 중간에 있는 게 중잣성. 제주에는 돌이 많아 돌을 이용한 담이 많습니다."

"바람이 올라오지요. 숨골인데요. 숲의 온도를 연중 일정하게 유지시켜 줍니다."


초지와 곶자왈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난다.

하얀 메밀꽃이 핀 경작지를 지나간다. 자잘한 화산쇄설물이 깔린 탐방로는 걷기가 훨씬 좋아졌다.


만장굴 3 입구


드디어 잘 알려진 만장굴 3 입구를 지나간다. 용암의 흐름으로 본다면 먼저 만나는 입구지만 김녕리 마을에 가까운 곳부터 거문오름 쪽으로 올라가면서 1, 2, 3 입구가 차례로 나타난다. 3 입구는 철책이 서 있어 못 들어가고 그냥 스쳐 지나간다.

만장굴 3입구

어제 만났던 해설사를 다시 만났다. 아는 사람이라고 반가워한다. "발목 괜찮아요." 어제 접질렸던 발목을 걱정해 준다.


높이가 20m 정도 된다는 3 입구를 내려다보니 가물가물 하다. 사진으로는 그 깊이가 잘 표현되지 않는다.

난쟁이거멀이라 부르던 만장굴 3 입구

"옛날부터 난쟁이거멀이라 부르던 만장굴 3 입구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귀신 나온다고 가기를 꺼려하던 곳이었지요.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라는 안내판을 보셨지요. 1946년 김녕초등학교 부종휴 선생이 꼬마 탐험대를 이끌고 동굴을 탐사하여 만장굴 1, 2, 3구간이 연결된 것을 확인합니다. 만장굴이라는 이름까지 지었어요."


깜깜한 동굴을 횃불만 들고 탐사한 꼬마 탐험대 이야기는 꼭지를 따로 마련하여 그때 그 아이들의 심정을 상상해 볼까 한다.


숯가마 터


곶자왈에 숯가마터가 있다. 마을에서 15km 정도 올라온 곳이니 꽤 먼 거리다. 나무를 잘라 짊어지고 내려가기가 힘드니 현지에서 숯을 는다.


"여기는 마을에서 만든 공용 숯가마입니다. 숯가마는 대부분 일회용 숯가마인데 여긴 고정용 숯가마지요."

숯가마 터

"화전민들의 세금은 보통 두 가지를 기준으로 매겼답니다."


약초, 숯을 진상품으로 냈다. 궁궐에는 장작으로 불을 때는 것이 아니고 숯을 사용했다. 마을 청년들이 일주일간 먹을 양식을 짊어지고 올라와 숯을 는다. 첫째 날은 가마를 손 보고, 둘째 날 나무를 자른다. 참나무류가 양질의 숯을 만든다. 한 3일간 불을 땐다.


"숲에 원 줄기는 없고 옆으로 뻗어 나간 나무가 많지요. 맹아라 합니다. 종가시나무, 개가시나무, 붉가시나무, 서어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이 맹아가 많지요. 잘라서 숯을 구운 흔적이지요. 나무 질이 좋아야 숯이 잘 굽힙니다."

"숯은 백탄과 흑탄이 있습니다. 백탄은 나무를 짊어지고 내려가,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만듭니다. 숯을 가마에서 꺼내어 식기 전에 모래 속에 집어넣으면 백탄이 됩니다. 흑탄보다 백탄이 화력이 세고 오래 가지요. 백탄이 노력이 많이 들겠지요. 궁중에서 사용하는 숯은 당연히 백탄이었습니다."


마을 공동으로 구운 숯을 진상품으로 올리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숯이 서울에 도착해야 세금을 낸 것이 된다. 이 제도 때문에 백성들은 고통을 받는다. 뱃길에 사고라도 나면 다시 보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내다 팔 숯이 없다. 참다못한 민초들이 가혹한 세금제도에 불만을 품고 종종 민란을 일으킨다. 크고 작은 민란이 일어났는데 대표적인 신축민중항쟁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생존의 전략


길이 점점 좋아진다. 낙엽을 밟고 지나가는 발걸음이 상쾌하다. 임도 밑으로 만장굴이 지나간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변에 고사리가 많아지고, 덩굴식물과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가 눈길을 끈다. 구실잣밤나무 숲에서 식물 전공 해설사를 만난다.

구실잣나무 군락

"맹아가 많지요. 나무로 숯만 만들었겠습니까. 구실잣밤나무로 마루도 짜고, 가구도 만들었습니다. 밤 맛이 나는 도토리가 열립니다. 고사리도 많지요. 저기 저기. 제주에서 자라는 고사리는 230종이나 됩니다. 고사리 잎은 양의 이빨처럼 생겨서 양치식물입니다. 하지만 콩짜개덩굴이나 제주고사리삼 처럼 모양이 다른 것도 있습니다. 세 개의 잎이 다섯 개로 보이는 고사리삼은 동백동산에 볼 수 있고요. 포자번식합니다."

양치식물(콩짜개덩굴과 가는쇠고사리)

"곶자왈의 식물들은 자기 자리에서 의연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숲이 우리 인생하고 많이 닮았지요. 거기에 울림이 있습니다."


"이거 보십시오. 도토리 열매에 구멍이 뚫려 있죠. 알을 낳은 거예요. 도토리거위벌레가 칼로 자르듯이 잎과 함께 가지를 끊어서 떨어뜨린 겁니다. 이 알이 손상되지 않도록 잎까지 함께 천천히 떨어지라고. 도토리 거위벌레 입이 날카로워요."

도토리거위벌레가 짜른 상수리나무 가지

대단한 놈들이다. 하찮은 벌레도 자신만의 생존전략이 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가막살나무가 붉은색의 열매를 소복이 달고 있다. 음지에서도 광합성을 잘한다. 내공해성 나무이기도 하다. 회록색 털이 있는 열매 같은 것은 벌레혹(충영)이다. 벌레혹은 식물체에 곤충이 알을 낳거나 기생하여 이상 발육한 부분이다. 세포 내에 많은 핵이나 거대한 핵이 들어 있어 부풀어 오른 듯하다.

가막살나무

또 다른 전략. 댕댕이덩굴이 빛을 쫓아 키가 큰 옆의 나무를 타고 오른다. 포도송이 같은 열매를 달고 있다. 댕댕이덩굴의 줄기는 탄력성이 좋아 바구니 등의 세공용으로 사용한다.

댕댕이덩굴

"선생님들 동굴 위를 걸어오시면서 어떤 생각으로 걸어오셨어요. '참 좋다. 행복하다. 힘들다.' 여러 생각을 하셨겠지요. 오전에는 92세 되신 분을 만났어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게 행복이잖아요. 그냥 '팔천 년 전에 용암이 흘러간 길이구나. 이 길을 내가 걷네'하고 걸어보세요. 온갖 상념은 다 지워버리고. 이제 3구간 종점이 거의 다 왔습니다. 조심해 가십시오."

만장굴 2 입구

(202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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