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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Dec 05. 2023

공원에서 공원으로

하영올레 1코스, 서귀포 원도심

제주도는 가히 도보 여행의 일번지라 할 수 있다. 제주올레를 완주하고 한걸음 더 들어간다. 서귀포시의 하영올레는 원도심의 매력을 넉넉하게 느낄 수 있다. 하영은 '많이'를 뜻하는 제주어다. 서귀포 원도심의 자연과 인문 환경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는 길이다.

하영올레 시종점

총 3개의 코스 22.8km로 구성되어 있다. 3개 코스 모두 시청 1 청사에서 출발하여 시청 1 청사에서 마치는 원점회귀형으로 설계되어 있다. 시청사는 시종점으로 적당한 장소다. 구 터미널이 인근에 버스 이용이 편하다. 기점에 훤칠한 키의 구실잣밤나무가 서 있다. 안내데스크에서 지도와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홍보 팸플릿을 챙겨서 출발한다.


하영올레의 시종점, 서귀포 시청 1 청사


법장사골목길 ~ 걸매생태공원 ~ 천지연폭포 전망대 ~ 칠십리시공원 ~ 서귀포층 패류화석 산지 ~ 새연교 ~ 새섬 ~  기정길 ~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 아랑조을거리를 거치는 8.9km의 도심올레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담장이나 전봇대, 거리 바닥에 화살표와 리본, 간세로 길 안내를 한다.

길 안내 리본과 간세

1코스와 3코스는 청사 뒷길을 따라 함께 출발한다.

시청 주변의 번잡한 거리를 지나면, 오래되었지만 구획정리가 잘 된 주택가를 만난다. 얼마 가지 않아 서귀서초등학교를 만난다. 3코스와 헤어져서 우리는 좌회전한다.

서귀서초등학교

토박이가 아니고는 찾기 힘든 좁은 골목길이 이어진다. 안내 표지를 잘 따라가다가 제일슈퍼 지나서 바로 여기, 풍경이 있는 오솔길로 들어가는 검은 문이 있다. 옆으로 세워져 있어 앞만 보고 가면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만 주의하면 일사천리다.

풍경이 있는 오솔길


풍경이 있는 오솔길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마을. 시간이 머무는 마을에 꽃 향기가 흩날린다. 동화 같은 ‘풍경이 있는 오솔길’이다. 도심을 지나온 길은 연외천이 흐르는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다. 담장에 옛 서귀포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다. 벽화를 보느라 사진을 보느라 주변 풍경을 보느라 발걸음이 느려진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마을

단층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바둑판처럼 그어진 길이 아니라 오히려 정겨운 풍경이다.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튀어나올 듯한 골목길. 사진 속에서 따뜻했던 옛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새마을 부녀회에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유공간에 양삼(KENAF)을 식재하였다. 양삼은 이산화탄소 흡수율이 상수리나무의 10배 수준이라고 한다.

달빛 전망대에서 본 걸매공원

걸매생태공원과 서귀포 시내가 훤히 바라보이는 달빛 전망대에 올라선다. 울창한 숲 너머로  연외천이 흐른다. 걸매숲이 가까이 다가온다. 멀리 고근산과 삼매봉이 보인다. 도심지 한가운데 걸매생태공원과 칠십리시공원이 연달아 이웃해 붙어있다.


걸매생태공원 추억의 숲길


법장사 앞에서 제주올레 7-1코스(역방향)와 만나 계단 아래로 내려선다. 다리를 건너면 걸매생태공원이다. 리본이 많이 걸려 있다. 제주올레, 작가의 길, 천주교 순례길 등이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 연외천을 따라 올라가서 조류생태공원을 한 바퀴 돈다. 


서귀포 삼춘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찾아낸 추억의 숲길로 들어선다.

걸매생태공원

숲길은 점점 올라가고 연외천 계곡은 깊어진다. 졸졸 흐르던 물소리가 점차 세차게 들린다. 이 물길이 천지연폭포로 이어진다. 공원을 산책하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추억의 숲길은 아늑하게 느껴진다.


칠십리시공원


숲길은 짧게 끝난다. 서귀교로 우회한다. 이번에는 제주올레 7코스(순방향)와 함께 칠십리시공원 그라운드 골프장에 닿는다. 아름답게 잘 가꿔진 공원이다.

칠십리시공원

서귀포를 노래한 시비들이 산책로 곳곳에 세워져 있다.

친구여 / 우리 비록 / 등 돌려 산다 해도 / 서귀포 칠십리 / 바닷길은 함께 가자 / 가을날 귤처럼 타는 / 저 바다를 어쩌겠나 <오승철, ‘서귀포 바다’>

시와 숲이 있는 산책로

날씨가 쌀쌀하다. 

먼나무의 붉은 열매는 한층 더 빨갛게 물들어 꽃처럼 예쁘다.

여름철 뜨거운 햇빛을 가리며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던 녹나무는 이제 바람을 막아준다. 

아래 놓인 장의자에 앉아 오승철 시인의 ‘서귀포 바다’읽으며 쉬어간다.

꽃과 나무가 있는 쉼터

매화공원 언저리에 여러 가지 색의 꽃을 피우고 있는 란타나가 눈길을 끈다. 란타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꽃이 흰색, 분홍색, 오렌지색, 노란색, 붉은색 등으로 계속해서 변한다. 그래서 칠변화(七變花)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천연난대림 속에 숨은 천지연폭포

칠변화에 한눈팔다가 절경을 놓칠 뻔했다. 칠십리시공원이 품고 있는 숨은 비경, 천지연폭포다. 떨어지는 폭포와 주변 난대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명당자리다. 전망대 역시 소나무 숲에 싸여 있다. 공원의 구석진 곳이라 한산하다.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주상절리 위에서 폭포의 물줄기가 힘차게 쏟아져 내린다. 장엄한 폭포수 소리와 새소리가 음을 이루며 숲 속의 교향곡이 되어 울려 퍼진다.

파크골프장

제주올레 7코스와 헤어져서 파크골프장을 지나간다. 밀감 수확철인데 짬을 내어 파크볼을 친다. 지역 예선을 거쳐 전국대회도 나간다고 한다. 안덕면 어느 팀은 전국대회 나갔다가 키위 수확시기를 놓친 적도 있었단다. 숲과 폭포, 시와 조각품, 그리고 체육시설을 갖춘 쾌적한 공원이 부럽다. 여유로운 삶이 더 부럽다. 우리 동네 온천천과 비교되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

섶섬 전망대에서 본 서귀포항

잠시 숲 속을 오른다. 또 다른 포토존, 섶섬전망대다.

이번에는 섶섬, 새섬, 문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귀포항을 가운데 두고 왼쪽은 섶섬, 오른쪽은 새섬과 문섬이 겹쳐 보인다. 하늘에 뜬 구름도 그림을 완성하는데 중요한 몫을 한다.

칠십리 야외공연장으로 내려가는 길

공원을 나와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나무 계단을 내려선다. 널찍한 천지연 유원지 공영주차장이 나온다. 천지연폭포는 전망대에서 본 것으로 만족한다. 올레는 칠십리 야외공연장에서 곧장 새연교로 향한다. 서귀포항에 정박한 배들을 보면서 부두길을 따라간다.

서귀포항

서귀포층 패류화석 산지


새섬공원과 새연교는 이름난 관광지라 찾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새연교 입구의 서귀포층 패류화석 산지는 대부분 스쳐 지나간다. 서귀포층 패류화석층의 다양한 화석을 가까이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야외 박물관이다.

서귀포층 패류화석 산지

현무암질 화산재 지층과 바다 밑의 퇴적암 지층이 쌓이기를 반복하면서 100m 두께의 서귀포층이 생성되었다. 그 후에도 화산활동이 계속되면서 서귀포층은 지하에 묻힌다. 이 일대는 지하에 넓게 깔려 있던 서귀포층의 일부가 솟아오른 것이다.

서귀포층 패류화석과 암석

서귀포층이 깔려있어 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않고 천이 되어 흐른다. 서귀포에 물이 많은 이유이고, 서귀포층이 솟았기에 폭포가 많다.


서귀포층 패류화석층은 해안절벽을 따라 약 40m 두께로 나타난다. 

솟아오른 서귀포층

서귀포층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신생대 제4기 초의 퇴적층이다. 따뜻하고 얕은 바다에서 살던 조개류, 산호, 성게, 백상아리 이빨 등의 화석과 차가운 바다에 살던 생물의 화석이 함께 퇴적되어 있다. 동아시아 일대의 해수면 변동과 기후의 변화 등 고해양 환경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195호)


새섬 공원


입구를 제주어로 '목’이라 하고, 새섬 방파제와 새섬 사이를 '새섬목'이라 부른다.

새섬목은 서귀포항에서 범섬 쪽으로 작은 배들이 다니는 뱃길이자, 새섬으로 건너는 입구다. 물이 빠지면 이 목을 통해 새섬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새연교

우리는 새섬목 위에 건설된 사장교를 건넌다. 제주 전통 고기잡이 배, 테우를 형상화한 새연교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다리'라는 뜻의 새연교에는 해가 지면 화려한 조명이 들어온다. 밤 11시 30분까지 야경을 볼 수 있어 야간 산책로로 유명한 곳이다.

새섬

해발 17.7m의 나지막한 새섬(草島)은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한다.  작은 섬이 서귀포항을 천혜의 양항이자 미항으로 만들었다. 새(草, 띠)가 많았다 하여 새섬이다. 지금은 무인도이지만, 조선 중엽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

담머리코지

새연교를 건너면 '담머리코지'를 먼저 만난다. ‘새섬목’ 바로 서쪽으로 돌출한 바위이다. 암벽으로 형성된 곶(코지)으로 방파제 역할도 한다. 몰아치는 파도맞서면서 차고 오르는 물보라가 일품인 곳이다.


담머리코지는 범섬과 강정항을 가리킨다. 섬 모습이 마치 범과 같이 생겼다는 범섬은 흑비둘기(천연기념물 215호) 서식지다.

담머리코지에서 바라본 범섬

담머리코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선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갈림길에 순방향 표시가 있다.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섬을 한 바퀴 돈다. 난대 수목과 들풀, 물수리를 비롯한 물새 친구를 살피며 걸어도 20~30분 이면 넉넉하다.

문섬

남쪽 다 건너 지근거리에 문섬이 새끼섬을 데리고 떠 있다. 옛날부터 모기가 많았다. 모기 문(蚊) 자를 써서 문섬(蚊島)이라 부르다가 글월 문(文) 자 문섬(文)이 되었다고 한다. 암석이 물밑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고 이를 따라 산호류와 다양한 생물이 수중 생태계를 유지하여 물밑이 아름답다. 관광 잠수함을 타고 문섬의 수중 비경을 탐사할 수 있다.


배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던 뱃머리동산


다시 지연폭포 주차장으로 돌아나간다. 하영올레는 칠십리교를 건너서 뱃머리동산을 오른다. 들머리의 카페 담벼락에 세워진 커다란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공룡인지, 말인지 상상의 동물인지 분명치 않다. 등어리에 물새 두 마리가 앉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눈을 지그시 감고 긴 입에는 미소가 감돈다.

뱃머리동산 오르는 길

뱃머리동산으로 오르는 길의 높은 축대에 제주 내음이 물씬 나는 토속어를 전시하고 있다.


이 질로 구짝 갑써. (이 길로 곧장 가세요.)

빙삭이 웃으난 잘도 좋다.(빙그레 웃으니 정말 좋다.)

폭삭 속아수다. (무척 수고하셨습니다.)

뱃머리동산에서 내려다보는 서귀포항 서부두

서귀포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뱃머리동산.

어부의 아낙네가 남편의 배가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던 곳이다. 고기잡이 나간 남정네를 기다리는 제주 여인들이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제주어로 이웃과 수다 떠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샛기정 공원


하영올레는 샛기정 공원으로 연결된다. 연외천 절벽 위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공원의 시작점에서 '읍민관터'를 만난다. 서귀포 최초의 대중문화 시설이었던 읍민관. 영화도 상영했던 읍민관은 창고로 변했다가 지금은 그 터에 농구 코트가 자리 잡고 있다.

샛기정 공원

'기정'은 절벽을 나타내는 제주어다. 연외천을 향한 절벽 밑에 용천수 '생수개'가 있었다. 읍민관 남쪽 절벽이 '샛기정'이고, 서귀마을 여인들이 물허벅을 지고 물을 길어 나르던 샛길을 '샛기정길'이라 한다.


서귀포로 시집온 새댁은 이 길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생수개로 뚫려있는 샛길은 매우 험하다. 물을 지고 올라오다가 넘어져서 허벅을 깨뜨리는 새색시들이 많았다. 물허벅을 깨지 않고 샛기정을 올라오면 '이 사람은 천상 서귀포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알면 좋은 '아랑조을거리'


하영올레는 구시가지 쪽으로 이어진다. 서문로터리, 제주올레여행자센터를 지나 맛집들이 모여있는 아랑조을거리에서 저녁을 먹고 간다.

아랑조을거리

서귀포 먹거리 골목의 대명사로 통하는 천지동의 ‘아랑조을거리', 제주어로 ‘알면 좋은 거리’라고 한다. 한때 불황으로 몰락해 가던 이 거리를 천지동 주민들이 똘똘 뭉쳐 명품 먹거리 촌으로 살려냈다고 한다.

서귀포시청 1청사

중앙로터리를 지나 시청 앞에 선다. 띄엄띄엄 갔던 길을 공원이라는 키워드로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한 점에서 의미를 찾는다. 도심 속의 쾌적한 휴식공간은 외지인인 우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2023.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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