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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Dec 10. 2023

정방폭포의 비극을 예술로 승화하는 길

하영올레 2코스, 정방폭포와 이중섭거리

서귀포 시청 1청사 올레 출발점

하영올레 2코스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사람을 발견하는 원도심올레다.


시청 1 청사 앞에서 중앙로를 건너며 시작한다. 중앙로터리에서 일주동로를 건넌다. 대부분 도심 올레가 그렇듯이 시작은 대로를 따라가는 단조로운 길이다.

서귀중앙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그 단조로움을 상쇄하려는 듯 주택 담장을 벽화로 단장했다.


물가에 앉아 참견하는 이와 그물 안을 살피는 천렵하는 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보리, 쌀, 옥수수 등의 곡식을 틀에 넣어 밀폐하고 불에 단 뻥튀기 기계를 돌린다. 아이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혹시 튀겨져 나와 흩어지는 뻥튀기의 이삭 줍기를 기대하며 귀를 막고 서 있다. 뻥 하는 소리를 감수하며. 옆에 굴렁쇠 굴리며 들판을 뛰어다니는 해맑은 아이들도 보인다.


정방폭포 가는 길


아시아 CGI 애니메이션 센터. 제주 영상문화산업 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아시아 CGI . 글로벌 애니메이션의 발굴 제작, 유통을 지원한다. 한국과 중국의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과 유통을 위한 동북아 허브 역할을 기대하고 설립되었다.

아시아CGI애니메이션센터

6살 된 손녀 아인이가 자신의 꿈이 유튜버란다.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다. 제주 영상문화산업 진흥원은 간단한 영상을 제작하는 일반인 기초 영상 교육도 한다.


태평근린공원. 올레는 동흥로를 건너 서귀포시 자기주도학습지원센터로 들어간다. 태평공원이다. 근린공원 안에 자리 잡은 자기주도학습지원센터의 입지가 돋보인다. 단풍 든 나무 사이로 낙엽을 밟으며 공원을 나선다. 중간기착지 스탬프가 마련되어 있다

태평근린공원 안에 자리잡은 자기주도학습지원센터

정모시 쉼터. 태평로를 건너 제주 불교성지순례길, '선정의 길'과 같이 간다. 동홍천을 사이에 두고 두 절이 있다. 무량정사 대웅보전 앞에 서 있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닮은 석탑이 이채롭다. 올레는 경내를 지나 동홍천을 건넌다.

무량정사(왼쪽)와 정방사

건너편의 정방사. 순천 대흥사와 쌍계암에서 봉안하던 석조 여래 좌상(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23호)을 소장하고 있다. 석조 여래 좌상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개가 사납게 짖는다. 개에 대한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송아지만 한 놈 두 마리다. 목 줄에 묶여 있지만. 절 마당도 못 들어가고 돌아 나온다.

정모시 쉼터

동홍천은 정방폭포로 흘러간다. 정방폭포의 상류인 이곳을 정모시 쉼터라 한다. 아는 사람들만 찾는 물놀이 명소다. 정모시는 정방폭포의 못을 이르는 말이다. 사철 내내 용천수가 흐른다. 수심이 얕아 아이들이 놀기에 알맞은 곳이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작은 쉼터가 나온다. 나무 데크 산책길과 정자, 벤치가 있다.


천혜의 절경, 정방폭포


서복불로초공원. 정모시에서 모인 동홍천 물길은 정방교 밑을 지나 우렁찬 소리를 내며 바다로 쏟아진다. 그 언저리에 작은 정자와 연못이 있는 중국풍 공원이 있다. 맥문동과 삼백초, 사철쑥, 섬오가피 등 약용 식물이 심겨진 서복불로초공원이다.

서복불로초공원

정방 4·3 위령 공간. 서복과 진시황, 불로초를 관광상품화한 곳에 뜻밖의 공간이 있다. 정방 4·3 위령 공간이다. 2023년 4·3 학살 75주년을 맞아 김용길 님이 지어 올린 추모시를 새겨 놓았다.

정방 4·3 위령 공간
ㆍㆍㆍㆍㆍㆍ굽이치는 파돗길 따라 / 여기 소낭그늘 덮인 해안마루 / 수중절벽 병풍처럼 둘러치고 / 천둥소리 물벼락 치는 곳 / 통한의 세월 가슴에 묻은 채 / 살아온 날들 / 칭원함이야 어찌 다 풀 수 있으리오 / 매정하고 서러워라 / 잊지 못하는 그 이름 / 부르고 부른 들 대답 없는 메아리 / 허공에 날리고 / 저 하늘이여 아는가 ㆍㆍㆍㆍㆍㆍㆍ

올레는 작은 다리를 건너 서복전시관으로 향한다. 우리는 잠시 올레 동선을 벗어나 시원한 물줄기를 보고 간다.

정방폭포

정방폭포.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방 유일의 폭포다. 주상절리가 발달한 수직절벽 위에 소나무 숲이 분재분에 올려진 듯하다. 절벽에 매달린 수목 사이로 쏟아지는 하얀 물보라에 무지개가 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서복기념관에 소장된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정방폭포(출처 : 서복전시관)

서복전시관. 진시황의 사자 서불이 한라산의 불로장생초를 구한 후, 정방폭포의 절경에 감탄하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 : 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글자를 새겨 놓고 갔다고 한다.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도 '서복이 서쪽(중국)으로 돌아간 포구'라고 불려지게 된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정방폭포보다 구경꾼이었던 서복을 더 내세운다. 커다란 출입문의 현판도 서복공이다. 전시관에는 서복 을 비롯해 진시황릉의 청동마차, 병마용갱의 실물 복제품과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 뿐 특별한 내용이 다.


서복공원에 하영올레 중간기착지 스탬프를 찍는 곳이 있다. 스탬프를 보관한 간세는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출입문 기둥에 붙여 세워져 있다. 하영올레는 '소남머리'로 간다.


소남머리의 비경에 깃든 아픈 역사


4·3 민간인 학살 터. 정방폭포 상단과 이어지는 '소남머리' 사이에 천길 낭떠러지의 해안절벽이 있는 곳. 앞바다에 섶섬과 범섬, 새섬이 떠 있고 소나무를 머리에 인 주상절리, 오목하게 드나드는 해안선, 시원하게 떨어지는 정방폭포가 아우러진다.  아름다운 풍경 이면에 제주도에 깊은 상처를 남긴 4·3의 아픔이 서려 있다.

소남머리에서 본 섶섬

4·3 당시 서귀리는 남제주군청, 서귀포경찰서가 있었던 산남지방의 중심지였다. 4·3 이 일어나자 토벌대는 서귀면사무소에 대대본부를 설치하고, 서귀면과 중문, 대정, 남원, 안덕, 표선면 주민들을 끌고 와 토벌대상으로 삼았다.


정방폭포의 세찬 물소리에 원혼의 통곡소리가 묻힌 소남머리에 연신 파도가 밀려와 바위 절벽에 배인 광란의 역사를 씻어낸다. 그러나 섶섬이 보고 있고, 정방폭포가 기억하고 있다. 정방폭포 일대(무즉시)에서 학살 4·3 희생자 대부분은 이곳에서 총살되었다.

소남머리 학살 터

4·3 당시 정방폭포 일대에서 235명(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단 확인)이 희생되었다. 1948년 11월부터 시작된 수차례 총살극 중, 대표적인 사건이 1949년 1월 22일 정방폭포소에서 벌어진 대규모 집단학살이다. 우선 희생규모가 80여 명이 넘는. 여자와 아이들, 노인들이 이었던 점, 공개 총살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토벌대는 총살한 시신을 낭떠러지로 떨어뜨려 푸른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토벌대는 학살 직후 시신 수습조차 허락하지 않는 만행을 저지른다. 토벌대의 눈을 피해 가족들의 시신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한참을 지난 후에야 찾아간 총살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시신은 이미 썩어 구별할 수 없었다. 엄청나게 쌓여 있는 시체더미 속에서 자기 가족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정방폭포 희생자 상당수의 시신이 수습되지 못하고 행방불명된 이유다. 결국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들은 비석만 세우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 유족은 헛묘를 만들기도 했다. <제주 4·3 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 (I) 218, 219쪽>
소남머리에서 본 정방폭포 앞바다

소남머리. 지형이 소머리처럼 소나무가 많은 조그만 동산으로 소공원이 꾸며져 있다. 얼마 전 소남머리 소공원을 정비하면서 4·3 위령비 설치로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 ○○주민자치회와 마을주민회는 소남머리 입구에 ‘4․3 위령비 설치 결사반대’라는 펼침막을 내걸었다고 한다. 정방 4·3 위령 공간이 서복불로초공원에 세워져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4·3 희생자와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대놓고 저지르는 천박한 경제논리에 할 말을 잃는다.


문화와 예술의 거리, 서귀동


소남머리에 서예가 소암 현중화 의 글씨 ‘和風晴天(화풍청천)’과 소암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소암은 예술적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적고 있다.

소암을 소개하는 안내판

소암 기념관. 걸어서 5, 6분 거리에 있다. 바람, 달, 구름, 물, 대나무 등의 자연을 주제로 한 소암 선생의 서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淸風拂白月(청풍불백월)

맑은 바람이 하얀 달을 씻네

인근에 4·3 당시 토벌대 2 연대 1대대본부가 있었던 옛 서귀면사무소(현 서귀포자치경찰대) 터도 둘러보자. 그 자리에 토벌을 기념하여 심었던 먼나무가 서 있다. 피의 역사를 말해주는 먼나무의 붉은 열매가 4·3의 잔인성을 상기시킨다.

소남머리물

소남머리 들머리에서 가파른 솔숲을 따라 해안 절벽으로 내려가면 에 소남머리물이 있다. 절벽 밑 암반 틈에서 용천수가 연중 솟아난다. 예전에는 식수로 사용하기도 했고, 일제 때는 일본인 냉동업자가 이 물을 사용하기 위해 정지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담수욕장으로 활용된다. 남탕과 여탕, 남녀 구분 없이 노천욕을 즐길 수 있는 노천탕도 만들어져 있다. 잠시 발을 담그고 피로를 풀고 가자.

섶섬이 보이는 자구리해안

자구리 해안. 불우했던 천재화가 이중섭. 피난시절 서귀포에 잠시 머물면서 자구리 해안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섶섬이 보이는 자구리해안에서 부인과 아들은 저녁 찬거리로 게를 잡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중섭은 이 모습을 작품 속에 남긴다.

'게와 아이들-그리다'

게를 반찬으로 삼은 게 미안했던지 유독 ‘게 그림’을 많이 그렸던 이중섭. 그의 대표작 <게와 아이들>그리는 모습은 후세 다른 작가의 작품 소재가 된다. 정미진 작가는 브론즈 조형물 '게와 아이들-그리다'를 발표한다.

문화 예술이 하나되는 자구리

이 작품이 설치된 장소는 자구리해안의 명소가 된다. '문화 예술로 하나 되는 자구리'로 불리며 다양한 예술 작품과 조각들이 공원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종종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소남머리의 비극을 생각하며 무거워졌던 마음을 달래고 간다.

서귀포항

서귀포항. 원래는 어항으로 제주 남부 연근해로 출어하는 어선들의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제주도 남부의 중앙에 위치한 섬 내 제2의 항구로 서귀포 지역의 화물수송 거점항이다. 주로 제주 삼다수, 서귀포 밀감을 육지로 수송한다. 또한 관광항의 역할도 한다. 유람선 부두에서는 유람선과 관광 잠수함이 출발한다.

부두길의 야자수와 병솔나무

부두길에는 쭉쭉 뻗은 야자수가 최남단 항구임을 알린다. 서귀포 수협 앞의 병솔나무가 눈에 띈다. 병을 닦는 솔(brush)같이 밀생 한 붉은색의 꽃이 인상적이다.


이중섭거리. 하영올레는 연외천 하구로 들어온 서귀동 어촌계 복지회관에서 솔동산로로 올라선다. 건물들이 밀집한 도심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서귀진지에서 제주올레 6코스를 만나 함께 이중섭거리로 접어든다.

이중섭이 기거한 방과 이중섭미술관

한국전쟁 통에  원산을 떠나 힘겨운 삶을 살던 이중섭 가족은 부산에 잠시 머문 뒤 서귀포로 흘러든다. 1년여 머문 서귀포는 이중섭의 작품세계에 대단히 중요한 공간이 된다. 이중섭은 암울한 시절, 이곳 서귀포에서 예술혼을 불사른다. 서귀포시는 천재 화가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1996. 3월 이중섭기념관을 개관한다. 그리고 이 거리를 '이중섭거리'로 지정하였다.

이중섭거리

이중섭거리는 예술의 거리다. 작고 아담한 카페들과 소품가게들이 거리의 분위기를 바꾼다. 담벼락에 초등학생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60년 분위기가 나는 극장이 있다. 다음프로, 오늘프로 선전 내판도 있고. 알쏭달쏭하다. 영화를 하는가 기웃거리니 관계자가 들어와 구경하란다. 내부로 들어서니 전시 공간이다.

서귀포극장

서귀포 관광극장. 1963년 영화전용관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폭넓은 장르의 공연예술을 하는 예술전용 공연장으로 변신하였다. 매주 주말 공연을 하는데, 모든 공연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단다.

극잠 무대

극장 안으로 들어가 본다. 무대 앞과 좌우 내벽에 담쟁이덩굴이 예쁜 단풍으로 불붙었다. 벽면 자체가 거대한 캔버스다. 그 위에 감아 오르는 당쟁이는 정교하게 그린 그림과 같다. 무대에 올라 기념촬영을 한다. 마치 공연하는 배우와 같다. 대기하는 사람은 관객처럼 보인다. 지붕이 태풍에 날아가 하늘이 보인다. 이 모두가 훌륭한 연극의 한 장면이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을 통과한다. 시장은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다. 견물생심이라고 시장에 가면 뭐든 사게 된다. 일정도 막바지에 다다랐고 메고 가는 것도 큰 부담이 없다. 아내는 짐꾼을 부리려니 안줏거리도 신경을 쓴다.

주요 경유지를 살펴본다.
서귀포시청 제1청사 ~ 아시아 CGI 애니메이션 센터 ~ 태평근린공원 ~ 무량정사 ~ 정모사 쉼터 ~ 서복불로초공원 ~ 서복전시관 ~ 소남머리 4·3 유적지 ~ 자구리해안 ~ 서귀포항 ~ 서귀진성 ~ 이중섭거리 ~ 매일올레시장을 거쳐 ~서귀포시청 제1청사로 이어지는 6.4km의 코스다.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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