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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Dec 20. 2023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홍로마을

하영올레 3코스, 서홍동에서 동홍동으로

서홍동과 동홍동은 한라산 백록담을 정점으로 경계가 나누어진다.  남쪽은 천지동, 동쪽은 토평동, 서쪽은 호근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영올레 3코스는 연외천을 따라 서홍동으로 올라가서 동홍천을 따라 동홍동으로 내려오는 길, 7.5km이다. 시청 1 청사에서 1코스와 함께 출발하여 서귀서초등학교에서 헤어진다.

서귀서초등학교 길

주택가 담장에 그려진 벽화이면도로의 단조로움을 상쇄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너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너의 진정한 친구야


생태자원이 풍부한 솜반내


올레길은 솜반천 산책길로 내려선다. 호근천과 연외천이 만나는 마을 카페 '솜반내풍경'에서 연외천을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서홍동 북쪽 한라산 기슭에서 발원한 연외천은 서귀포시의 중심 하천이다. 도심 속을 흘러 천지연폭포에서 웅장하게 떨어진다. 주민들은 ‘솟밧내(천)’ 또는 ‘솜반내(천)’라 부른다. “소(沼, 천지연)의 바깥에 있는 내”라는 의미다. 홍로촌을 거치기 때문에 ‘홍로천(洪爐川)’이라도 다.

솜반내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른다. 바위 틈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가 상쾌하다. 늘푸른 나무 숲이 하늘을 가린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물가에 앉아 명상하기에 어울리는 벤치가 군데군데 놓여 다. 도심 속의 생태하천길이다.


흙담솔. 서홍동은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지형이 화로(爐)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홍로(烘爐)라 했다. 옛 사람들은 지형 때문에 화재가 잦다고 여겼다. '불은 물로 재운다'는 풍수설에 따라 흙담을 쌓고 물이 고이도록 주변에 크게 자라는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흙담솔

화기를 잠재운다고 심은 소나무는 군락을 이루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홍로의 역사가 숨 쉬는 흙담솔은 서귀북초등학교의 울타리 역할을 하며 아름다운 마을숲(우수상, 2002년)으로 선정되었다. 흙담솔로 입구에서 서흥 3교를 건너 상록수와 낙엽송, 소나무, 대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선다. 다시 천변 산책길을 이어간다.

천변 산책길

아이뜨락. 아파트 단지를 지나 중산간동로를 건넌다. 연외천의 물길이 생수천과 합류하는 곳에 서홍 어린이 소공원이 있다. 흙과 나무 등 자연재료를 이용한 생태체험 학습장이자 놀이터다. 흔히 보는 놀이 기구뿐만 아니라 출렁다리, 통나무, 네트, 로프 등 유격 훈련장 같은 다양한 놀이 기구와 어른들도 이용할 있는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아이뜨락 놀이공원

변시지 그림정원. 아이뜨락 생태놀이터 내에 서홍동 출신인 변시지 화백의 추모공간이 있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그림을 그리는 변시지 화백 전신상과 까마귀 상이 설치되어 있다. 옥외 LED스크린에서 변 화백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은 '문턱 없는 작은 갤러리'라 부른다.

변시지 그림정원

변시지는 '폭풍의 화가’라 불린다. 절대 고독과 맹렬함으로 가득한 작품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예술성을 지켜 내었다. 흙과 바람, 바다와 하늘, 까마귀와 조랑말 그리고 사람을 황톳빛과 먹선으로 표현한다. 역동적인 붓질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그린다.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정립한 제주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삼매봉 기당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기품 있는 노거수, 정감 있는 올레

 

아이뜨락 돌담 너머로 이색적인 노거수가 보인다. 연청로 한복판에 빨간 열매들을 매달고 있는 먼나무가 마을을 지킨다.

앞내 먼나무 노거수

앞내 먼나무. 이백 년이 넘는 세월을 마을사람들과 동거동락했던 먼나무 노거수. 삼백 년이 훌쩍 넘었다는 기록도 있다. 마을의 신목처럼 여겨지는 나무이다. 마을 사람들은 무언가 정성을 들여 할 때나 마음이 답답할 때면 무를 찾아 의지해 왔다고 한다.

문단과 하귤

문단. 올레 입구의 정감 있는 돌담 너머로 문단과 하귤이 노랗게 익어간다. 오른쪽 나무는 주먹만한 열매가 달린 하귤이고, 왼쪽 나무는 문단이다. 보통 붕깡이라 부르는 아기 머리만한 크기의 열매가 열렸다. 크기가 사진으로 표현이 안 돼서 안경을 씌운다.

은행나무와 하귤

정원수로도 가로수로도 하귤이 많다. 벽화가 담장 위로 올라온 하귤의 몸체를 완성한다. 오래된 마을은 나무에서 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지나온 흙담솔의 소나무, 앞내 먼나무, 이곳의 은행나무와 하귤나무에서 옛 홍로현청이 있던 중심 고을의 기품을 느낀다.


역사와 전통이 숨 쉬는 홍로마을


홍로현청 터 가는 길. 홍로마을은 700년쯤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청 터의 흔적으로 미루어볼 때 예래마을과 함께 서귀포시 안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짐작된다. 길가의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가 홍로마을의 역사와 명승지를 소개한다. 서홍 8경을 자랑한다. 지장샘과 호종단에 얽힌 전래 설화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홍로현청 터 가는 길

마을이 깊고 넓다. 도로와 집 사이, 집과 집 사이를 잇는 고즈넉한 올레가 돋보인다. 농가의 마당에 수확을 앞둔 밀감나무가 가득하다. 집터와 밀감밭의 구분이 없다. 주렁주렁 달린 황금빛 밀감으로 가을의 풍성함이 넘친다. 서홍동이 온주밀감의 시배지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제주의 마을은 대부분 용천수가 나오는 해안가에 형성되었다. 홍로현청이 중산간에 위치하였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홍로마을의 중요한 식수원인 사철 끊임없이 흐르는 지장샘이 있기 때문이다. 지장샘 가는 길은 7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시간 여행길이다. 고불고불 홍로현청 터로 가던 올레는 보덕사 포교당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고 또 왼쪽으로 도는 좁은 골목이 이어진다.

지장샘. 홍로마을의 거주지는 지장샘을 끼고 오밀조밀 모여 있다. '지혜롭게 감추었다'는 뜻을 갖고 있는 지장샘에 얽힌 옛이야기가 있다.

지장샘
옛날 중국 송나라 왕은 제주가 천하를 호령할 왕이 날 지세라는 풍문을 듣고 호종단을 보내 제주 땅의 지맥을 끊어 그 기운을 없애려고 한다. 호종단은 제주 땅에 들어와 모든 지맥과 수맥을 끊기 시작한다. 호종단이 홍로마을까지 찾아왔지만 한 농부의 기지로 샘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 후 샘물이 끊이지 않고 솟아났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장샘만큼만 하라’는 말이 대대손손 전해진다고 한다.


온주밀감 시배지, 면형의집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는 일'을 가톨릭에서는 피정(避靜)이라 한다. 명상과 성찰을 통한 수련의 의미를 담고 있다. 면형의 집’은 한국순교복자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피정센터다. 산사의 템플스테이와 함께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관심이 쏠린다.


'피정, 면형'이란 말도 생소하고, 복자회관, 김기량 펠릭스베드로 수도원 등으로 불리던 면형의 집이 일반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녹나무와 밀감나무 때문이다.

녹나무

성당 녹나무. 면형의 집을 들어서면 수형이 걸출하고 우람한 녹나무가 눈에 띈다. 갓을 쓴 김대건 신부 상이 바라보고 있는 이 녹나무는 높이 16.5m, 둘레 3.9m, 수령 250년의 녹나무. 1910년대 프랑스 출신 에밀 다케(Emile Joseph Taquet, 한국명 嚴宅基) 신부가 한라산 산록에 자생하던 것을 옮겨 심은 것이라 한다. 제주도 상징목이 동백나무인 것으로 아는 이가 많다. 녹나무는 척박한 땅이나 바위틈에서도 잘 자라는 녹나무, 제주인의 기질을 상징하는 나무다.


 에밀 타케 신부. 1898년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조선에 파견되어 24살 때부터 55년간 선교 활동을 하며 간단치 않은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그는 경상남도 부산, 진주, 마산을  제주의 홍로성당과 하논성당에서 13년간 머문다. 1901년 신축민란(이재수의 난)으로 교세가 위축되고 선교 여건이 열악했던 때였다. 식물채집하여 표본을 보내면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재정 지원을 해줬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선교하려 온 그는 제주의 식물 채집에 혼신을 다한다.


타케 신부가 채취하여 유럽과 미국, 일본으로 보낸 제주 식물표본이 1만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1907년 한라산의 구상나무 표본을 미국 하버드대의 아널드식물원 표본관에 보내는 등, 세계 여러 식물원에 그가 채집한 수많은 종류의 식물표본들이 기록과 함께 남아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식물분류학의 기초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식물채집에 몰두한 것은 일본에서 활동 중이던 동료이자, 은사인 식물학자 위르뱅 포리 신부의 영향을 받았다. 타케 신부는 1911년 포리 신부에게 제주 왕벚나무를 선물로 보낸다. 그 답례로 온주밀감 나무 14그루를 받았다. 이것이 제주 온주밀감의 시초다.

제주 온주밀감 시배지에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온주밀감. 감귤의 재배 역사는 명확하지 않다. 고사기(古事記)라는 일본 역사책에 “서기 60년경 다지마 모리란 이가 제주의 감귤을 가지고 왔다”라고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에 “백제 문무왕 때인 476년 탐라에서 지역 특산물로 헌상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제주도에서 감귤을 재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제주 특산품인 온주밀감은 중국 원저우(온주)가 원산지다. 일본인들이 제주도에서 가져간 감귤을 개량하여 다시 들여온 온주밀감이다.

'홍로의 맥'으로 새로 태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온주밀감 나무, 병솔나무(왼쪽부터)

홍로의 맥. 당시 들여온 14그루의 나무 중 한 그루가 108년의 동안 면형의 집 앞마당에 살아오다가 2019년 4월 생명을 다했다. 고사목은 ‘홍로의 맥’이란 이름으로 성당 현관에 보존되어 있다. 온주 밀감 시원지 기념비 옆에 고사목과 60년을 함께 지낸 후계목이 자리를 지킨다.


서홍동은 유서 깊은 마을답게 아름드리 노거수가 많다. 하늘높이 치솟은 병솔나무가 노거수의 대를 이을 요량으로 연륜을 쌓아가고 있다.

산지물

동홍천 이음길. 면형의집을 나와 동홍동으로 넘어간다. 주공 아파트 뒤를 돌아 중간산동로를 거너 동홍교 밑의 동홍천 이음길로 들어선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이색구간이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짙은 상록수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가 작은 폭포를 이룬다. 찰랑대는 옥색빛 산지물은 천연 풀장이다.


서홍동에 연외천이 있다면 동홍동은 동홍천이 있다. 동홍천은 한라산 백록샘과 방애오름샘에서 물을 모와 웅장한 규모의 서산벌른내와 산벌른내를 거친다. 솔오름을 끼고 서귀포시 도심으로 가로질러 정방폭포에서 바다로 떨어진다.

서귀포학생문화원

동홍천변을 따라 동홍천 힐링길을 걷는다. 도심 아파트 지역, 서귀포학생문화원, 서귀포고등학교, 서귀포여자중학교가 밀집한 도심지를 지나 출발지인 서귀포시청 제1청사에 도착한다.(2023.12. 28)

하영올레 3코스

[하영올레 3코스] 7.5km / 약 3시간

코스 서귀포시청 제1청사 - 솜반천 탐방로 - 흙담 소나무길 - 변시지 그림정원 - 지장샘 - 면형의집 - 동홍천 이음길 - 산지물 물놀이장 - 동홍천 힐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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