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골목투어 3 (대청동, 동광동, 중앙동)
용두산을 중심으로 2미터 높이의 돌담으로 둘러 쌓인 초량왜관의 북문은 대청사거리 근처에 있었다. 일본 사자(使者)가 국가의례를 위해 연향대청에 출입할 때 이용하던 연석문(宴席門)이다. 담장 주위에는 여섯 개의 복병소(伏兵所)가 설치되어 왜관 출입을 관리했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선정한 ‘100년 관측소’다. 전 세계 1만 3,000여 기상관측소 중에서 291곳 뿐이며, 우리나라는 부산과 서울 기상관측소 2곳이 ‘100년 관측소’에 포함됐다. 우리나라의 면적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 중에도 기상업무를 수행하며 꾸준히 기록을 남기고 지속적인 품질 관리에 애쓴 선조들의 노고에 따른 결과이다." _ 출처: 《국제신문》 2021. 08. 22. 자
초량왜관의 전체 모습을 옛 기록을 통해 살펴본다. 초량왜관은 가운데에 용두공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청로를 따라오던 담장은 옛 동광초등학교 터를 끼고돌아 남쪽으로 내려간다. 동향사와 왜관의 정문인 수문(守門)이 나온다. 담장은 계속 해안길을 따라 부산부청(지금의 롯데백화점 광복점)으로 동쪽 담장이 이어진다.
동향사는 왜관 안에 있던 절이다. 조일 외교문서의 수발을 담당한다. 대마도에서 파견된 동향사 주지는 조일 간에 오가는 외교 문서와 왜관 업무에 관한 서류를 기록하고 보관하였다.
수문 밖에는 왜관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상대로 새벽시장(朝市)이 섰다. 매일 아침 쌀, 야채, 생선 등의 생필품을 매매하였다. 상거래는 조선 군관들의 통제 아래 이루어졌다. 조시가 상설화된다. 시장이 열리는 시간도 새벽에서 오후 5~7시까지로 늘어났다.
개시대청은 조선과 일본의 사무역 거래소다. 개시무역은 한 달에 세 번 열리다가 1610년부터 한 달에 여섯 차례(3, 8, 13, 18, 23, 28일)로 늘어났다. 조선산 인삼과 일본산 금, 은, 구리 유황, 납 등의 광산물을 거래하는 직접교역, 중국산 생사·견직물과 동남아시아산 단목·흑각·후추 등을 거래하는 중개무역이 이루어졌다. 개시무역은 관청에서 발급한 행장(行狀)을 가진 특권상인만 참여할 수 있었다. 왜관에서 대일무역에 참가했던 상인을 동래상인이라 한다. 동래 출신 상인뿐만 아니라 서울상인과 개성상인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