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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Mar 28. 2022

남몰래 숨겨 놓은 신부 같은 꽃, 수선화

공곶이를 다녀왔습니다.


거제도 공곶이를 다녀왔습니다. 매번 길을 놓치는 장소에서 또 길을 헤맵니다. 매해 이맘때면 가곤 하는 길인데. 거제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누우래재 교차로가 애매합니다. 좌회전 길이 두 갈래 나타납니다. 항상 먼저 나오는 서이말길로 들어섭니다. U2석유 비축기지 초입부의 초소에서 군인인지 민간 경비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나와 차를 막습니다. 돌아가랍니다.

돌아 나와 바로 다음 와현 고개 버스정류장 앞에서 와현로로 진입합니다. 길 양옆으로 펜션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도로가에 핀 수선화가 탐방객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화현 모래숲 해수욕장을 지나 구조라항을 조망하며 예구마을로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물량장 끝까지 들어가서 주차합니다. 공곶이 펜션 앞에 좌판을 펼쳐놓은 노점상들이 손님을 부릅니다. 오른쪽 나폴리 펜션 옆의 국립공원 입구로 발을 옮깁니다.

남파랑길 들머리에 백목련이 활짝 핀 집을 지나가면서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집 뒤로 대나무밭이 있고 빨간 우편함을 단 슬레이트집이 눈에 띄어 이리저리 두량을 합니다. 울타리는 어떻게 하고, 나지막한 출입문은 어디로 내고, 마을마다 흔히 보이는 감나무나 대추나무도 한두 그루 심고. 아마 관리가 안 되는 빈집이라서 한 생각이지만 주제넘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동백나무 군락지를 통과하여 몽돌해변으로 갑니다. 바다 건너 내도에는 동네 전체의 집들이 지붕 도색을 새로 했습니다. 모두가 진한 노란색으로. 왜 그렇게 눈에 튀는 색을 선택했는지 촌스럽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처음 보는 순간에는.


그러나 그 깊은 뜻을 알아채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공곶이의 수선화와 함께 들어가도록 앵글을 잡으면 환상적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생각은 했는데 몸은 안 움직이는. 카메라를 그곳으로 돌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지만 포인트를 지난 후였네요.

동백꽃은 거의 다 졌습니다. 동백이 지고 수선화가 공곶이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작년보다 개화가 늦어 나들이가 이른 감이 있습니다

외떡잎 속씨식물로 아스파라거스목의 수선화과에 속하는 수선화는 북아프리카, 포르투갈,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귀화식물입니다


여러해살이풀인 수선화는 습지에서 잘 자라며 추위엔 강하지만 음지나 여름철의 더위에는 약하답니다. 줄기는 약 20cm ~ 40cm의 크기로 자라며, 잎은 난초 잎같이 선형으로 자랍니다.

꽃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공곶이에서는 3월 중순부터 4월 사이에 핍니다. 꽃 모양은 마치 은 접시에 금잔이 놓여있는 듯한데요, 청초한 모습에 은근히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냅니다. 향기도 강한 편이고요.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지에서 수선화를 보고 '매화보다 한 수 위'라고 말했을 정도니 그 매력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나르키수스(Narcissus)라는 속명은 그리스어의 옛 말인 'narkau'(최면성)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는 설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합니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가 연못에 비친 제 모습에 반하여 물에 뛰어들어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꽃말인 신비, 자존심, 고결에 어울리는 류시화 님의 시 한 수를 옮기고 글을 마칩니다. (2022. 3. 21)


여기 수선화가 있다, 남몰래
숨겨 놓은 신부가

나는 제주 바닷가에 핀
흰 수선화 곁을 지나간다

오래전에 누군가 숨겨 놓고는 잊어버린
신부 곁을

<수선화> 류시화
공곶이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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