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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순동 Mar 29. 2022

다시 찾고 싶은 용두산


부산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을 꼽으라면 몇 손가락 안에 들 용두산공원을 다녀왔다. 너무 잘 알려져서 왠지 촌스러워 보이고, 너무 도심에 가까이 있어 새롭게 느껴지지 않고, 구한말 일본인 전관 거류지의 중심이라 거부 반응이 생기고, 예전에 우남 공원이었던 이름이 싫어서, 경사진 진입로가 귀찮아서. 이유도 많다.


하지만 입구부터 생각과 다르다.

용두산을 오르는 입구가 산뜻하다. 에스컬레이터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땀께나 흘리던 옛날과는 다르다.

조명도 화사하다. 칙칙하던 분위기가 밝고 생기가 넘치게 바뀌었다.


부산타워, 팔각정, 공원 표지석, 이순신 장군 동상은 그대로지만 깨끗하게 정비된 모습이 깔끔한 느낌이다. 오래된 초등학교 운동장에 어김없이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일본을 바라보는 부산항 앞의 용두산이라면 세울 만도 하지 않은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조선 출병 기지인 일본의 가라쓰항 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득한 바다를 노려보다’란 글이 새겨진 비석이 서 있는 것을 생각하면.

꽃시계가 1시 35분을 가리키고 있다. 꽃시계 앞에서 사진 찍는 젊은이들은 즐거운 표정이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신사가 있던 곳에 해방이 되자 이승만 동상이 선다. 공원 이름도 자신의 호를 따서 우남 공원으로 부른다. 자신의 항일 이미지 제고를 위하여, 초량왜관이 있었고 일본인 전관 거주지의 중심이었던 이곳을 택했는지 그 정치적 의도는 모를 일이다. 하나 일제강점기 그의 행적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적절치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것도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운 것은.


4.19 혁명 때 동상은 끌어내려지고, 공원 이름도 용두산공원으로 바뀐다.


그 공원에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의 자그마한 흉상이 세워져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노인들만 찾는 공원이라는 말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공원 한쪽의 벤치에 앉아 장기 두는 노인들이 몇몇 보이지만 탑골공원만큼은 아니다.


영화체험박물관으로 통한다. 영화 관련 전시물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이다. 영화체험박물관 앞에 백산기념관과 한성 1918 부산생활문화센터도 연계하여 가 볼 만한 곳이다. 북쪽으로 나가면 근현대 역사관이 곧 새로운 모습으로 선 보일 것이다.


용두산공원이 전체적으로 많이 정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차장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그간 젊은이에게 외면받던 용두산 공원이 심기일전한 모습으로 젊은 층의 시선을 끈다. 공원의 신선한 변화가 조용한 울림을 준다.


다음에 손녀를 데리고 오자. 씽씽카도 가지고. 나는 이제 용두산공원을 다시 찾고 싶은 몇 손가락 안의 공원으로 기억하련다. (2022. 3. 26)




이를 데리고 다시 찾는다. 북쪽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교좌 중앙성당 앞에서 둘레길을 돌아 올라간다. 많이 컸다. 완만한 오르막인데 아인이는 씽씽카를 타고 달린다. 데리고 다니기가 훨씬 편해졌다. 계속 재잘거린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한다. 제법 대화 상대가 되어 심심치 않다.


입구 에스컬레이터도 타보고, 꽃시계 앞에서 사진도 찍고 그네 의자에도 앉아 보지만 아인이는 벌써 흥미를 잃었다. 오르막을 걷고 씽씽카를 타서 피곤한가 보다.


부산타워로 올라간다.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인이의 분위기는 금세 바뀐다. 주변의 화려한 조명과 볼거리는 이의 관심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부산항을 내려다본다.

부산타워의 하이라이트는 ‘아찔 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5층 전망대다. 부산 북항과 남항이 한눈에 보인다. 원도심뿐만 아니라 멀리 동구, 서구, 남구와 해운대까지도 볼 수 있다.


조심성 많은 아인이는 살살 기어 올라 조금씩 창가로 다가간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해하면서 의외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할머니, 제주도 가는 비행기 탄 거 같아요.


전망대 바로 아래층에 ‘하늘을 나는 잠수함’을 콘셉트로 한 체험시설이 있다. 아인이는 얼굴을 가져다 댄다. 마치 바다 밑 잠수함에서 수중을 관찰하듯이 자신만의 AR캐릭터를 직접 촬영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문을 닫았던 부산타워는 ‘다이아몬드 타워’로 이름을 바꾸고 재개장했다. 새 단장을 한 부산타워는 '다시 찾고 싶은 용두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다시 부산시민의 사랑을 받는 공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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