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란정을 내려와 다시 영월로 넘어간다. 한반도면 사무소에서 주천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주천면 사무소 삼거리 못 미쳐서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른다. 한우와 사과가 질도 좋고 저렴하다. 예정에 없는 장 보기로 시간을 보내 발걸음이 바빠진다.
주천면과 무릉도원면, 그리고 주천강
마을과 강 이름인 '주천'은 특이하게도 술 주(酒) 자, 샘 천(泉) 자를 쓴다. 고려 때 주천현(酒泉縣)이 있었던 곳이니 오래된 이름이다. ‘주천’이란 술이 샘솟는다는 주천석(酒泉石)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주천리 뒷산 망산 기슭에는 바위샘이 있지만 술은 나오지 않고 그 이름만 남아 있다. 주천 시장 인근의 목욕탕 이름도 술샘 사우나다. 주천면은 영월군 서부에 있는 면이다. 동북부를 제외한 지역은 크고 작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강은 산을 만나면 비켜 간다. 자연히 태기산에서 발원한 주천강은 북쪽에서 동쪽으로 굽이쳐 흐른다. 강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영월 읍내가 나오고, 북쪽으로 거슬러 오르면 무릉도원면이다. 원래는 수주면이었다. 마을 이름에 물 수(水) 자, 두루 주(周) 자가 사용된 것에서 우리는 이곳의 풍광을 짐작할 수 있다. 수주면으로 들어갈수록 산지는 험준해지고 계곡은 깊어진다. 면의 가운데를 지나 주천면과의 면계를 따라 흐르는 주천강의 곡률도는 더욱 높아진다. 수주면의 들머리가 무릉리고 다음 마을이 도원리다. 2016년 무릉리와 도원리에서 딴, '무릉도원면'으로 면 명칭을 변경했다. ‘이상향’, '별천지'를 비유적으로 이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을 면의 이름으로 삼았다.
요선암 돌개구멍
요선암을 찾아간다. TMAP 내비게이션에 사자산 미륵암을 찍으면 요선암 입구 주차장으로 안내한다. 요선암 돌개구멍 안내판이 서 있다. 산기슭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미륵암에 닿는다. 암자 입구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고 겨울을 날 장작이 쌓여 있다. 해우소를 돌아 강가로 내려서면 주천강 요선암이다.
주천강은 이곳에서 법흥천과 합류한다. 면 이름도, 동네 이름도, 강 이름도 특이하리만큼 아름다운 '무릉도원면 무릉리 주천강'의 강바닥은 큰 바위들이 넓게 깔려있어 물이 맑고 깊은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평창 군수였던 문예가 양사언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감탄하여, 계곡의 너럭바위 위에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의미의 '요선암(邀仙岩)'이란 글씨를 새겼다고 전해진다.
요선암 주변의 강바닥 약 200m 구간은 강물의 침식작용으로 화강암 암반에 다양한 크기의 구멍이 집중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작은 항아리나 원통 모양의 구멍을 돌개구멍(pot hole) 또는 구혈(甌穴)이라 한다. 강물이 굽이쳐 흐르며 운반한 자갈과 모래가 오목하게 파인 강바닥의 기반암에 들어가 소용돌이치며 암석을 깎아내어 생겨난 지형이다.
이미지 출처 : 현지 안내문
돌개구멍의 학술적 가치와, 바위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조각해 놓은 듯한 독특한 경관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이 지역의 강바닥 전체를 천연기념물 제543호 (영월 무릉리 요선암 돌개구멍, 2013년)로 지정하였다.
요선정과 사재강 그리고 사람
주차장에서 요선암 가는 길 옆에 제14회 사재강 문화제 시화전 <요선정과 사재강 그리고 사람>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등단 시인, 마을 주민, 초등학생들의 시화 펼침막이 나뭇가지 사이에 전시되어 있다.
부드럽게 혹은 필사적으로 물살을 거슬러 오르던 은빛 生이, 황막하게 접혀 있다
순리대로 사는 것이 전부였을 육신은 훌훌 털어버리고 무욕의 영혼 한 벌 남겨 놓은 것일까
빈 접시 위의 고요
가슴에 안고 떠난 다음 生의 물소리 들리는 듯
김종호 <생선뼈>, 제14회 사재강 문화제 출품작
부산일보, 강원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인 김종호 님의 시구를 읊으며 요선정으로 올라간다. (2022.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