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와 위선

by 제이언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가장 좋아하던 기구는 그네도 아니고, 정글짐도 아니고, 철봉도 아닌 미끄럼틀이었다. 그네는 멀미가 심했고, 서서 타거나 반동으로 거의 한 바퀴 돌릴 정도로 잘 타는 애들도 많았으며, 스스로 창작한 그 반동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코뼈가 부러지는 등의 사고를 겪은 소수를 직관하며 아예 멀리하게 됐다. 정글짐은 꽤 좋아하긴 했는데 얼음땡 놀이를 정글짐에서 하다 발을 헛디뎌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연쇄추돌 사고를 겪은 후 싫어하게 됐다. 철봉 또는 구름사다리는 손으로 매달릴 근력이 부족했다. 큰 조건 없이 쾌락을 줄 수 있는 건 미끄럼틀이었다. 아니면 운동장에서도 할 수 있는 모래성 놀이 같은 것.


사람을 마주할 때 나는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고, 옛날 어느 유튜브에서 본 팁대로 눈이 아닌 코나 인중을 바라보면 상대방이 나를 본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여 아직도 눈을 보기 힘들 땐 코나 인중을 본다. 어머니나 둘째 이모를 포함하여 가끔 예쁜 여자와의 대화 이벤트가 발생할 때면 마찬가지로 코를 보는데, 속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완벽한 미끄럼틀이다. 정말 하루 종일 타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은 워터 슬라이딩이다. 저런 여자와 함께 살 수 있다면 내 온몸이 흠뻑 젖더라도 전혀 불쾌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는 어머니고, 익숙함에 젖어 잊고 있다 새삼스레 발견하곤 한다. 맞다, 어머니 미인이었지. 근데 왜 나는 저 코를 물려받지 못했을까. 물려받았다 한들, 이 미끄럼틀의 가치를 알아봐 줄 여자가 있을까? 세상은 넓으니까 어딘가에는 있겠거니 하더라도, 확실한 건 우리 집에서 반경 5km 안에는 나의 미끄럼틀을 세심하게 봐줄 여자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생각들에 빠져 상대방의 말을 자주 놓치게 되곤 한다. 문장이 미끄럼틀을 타다가 단어 한두 개가 밖으로 튕겨져 날아가는 것만 같다. 극심한 대본에 시달려 소통의 구멍으로 추락하는 장면은 어린 시절 팔꿈치 피멍과 쌍코피를 유발한 정글짐 추락 때의 어린 내 모습과 같다. 내게 사람 간의 소통이란 정글짐에서 하는 얼음땡과 다를 바 없다.


소통이 없는 삶은 살았어도 죽은 것과 같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채 보낸 셈이다. 그러나 반박할 생각은 없다, 독자들이 거의 없더라도 어쨌거나 글로써 소통하고 있는 셈이니까. 글을 쓰지 않는 나머지 시간은 생존을 위한 단기 알바, 나나 어머니를 위한 병원 방문, 어쩔수가없는 그런 일정을 제외하면 집에서는 오직 방과 화장실의 동선을 벗어나지 않는 완벽한 시체나 다름없으니까. 내 삶 자체는 굴곡졌다 해도 일상은 전혀 굴곡지지 않은 것이다. 중력이 있지만 경사가 없어 작동하지 않는 미끄럼틀과 같다. 호흡으로 뇌와 주고받고 소통하는 훌륭한 미끄럼틀을 보고 감탄만 할 뿐.


제 배우자는요, 친절하고 사려심 깊었으면 좋겠어요. 배려심과 사려심의 차이점은 아시죠? 외모는 크게 안 보고 중요한 건 마음이에요. 저한테는 외적인 이상형도 딱히 없다고요. 머 쌍꺼풀은 어떻고 키는 무조건 170 이상이고 이런 것들이요. 확실히 해두자. 정글짐의 정육면체처럼 딱 맞는 이상형의 조건은 없다 해도 과연 외모를 안 볼까? 미끄럼틀에 대한 찬양은 이걸 장기 시리즈화해서 장편소설이나 논문처럼 길게 뽑아낼 수 있다. 내 기준으로 예쁜 여성의 코를 보고 있으면, 그 완벽한 코의 쉼표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느새 손에 들린 대본을 읊으며 허기와 수면도 잊고 어엿한 시체가 될 수 있다. 내 어깨에 먼지가 쌓이고 그 덕에 특유의 비염과 맞물려 재채기 도돌이표에 빠져 침묵을 밀어내는 와중에도 그 코의 쉼표에서 눈을 떼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완벽한 각도와 둥근 마감, 비록 누구나 그 쉼표 안에 털이 있긴 하지만 그 털마저 포근하게 느껴질, 마침 무더위의 햇빛을 피하기도 딱 좋은 그늘진 안식처. 내 곰팡이 번진 퀴퀴한 내면의 그늘도 가려주는 그 양산과 같은 쉼표 안에 살고 싶다.


이렇게 입이 근질근질한데 어찌 참고 살았을까? 시체로 살아온 긴 경력은 구멍 하나 없는 위선을 쌓기 충분했다. 호흡으로 뇌와 주고받고 소통하는 훌륭한 미끄럼틀을 보며 반성한다. 초심을 흥! 하고 휴지에 싸서 버렸구나. 역시 나는 글을 쓰는 게 참 좋다. 내 코는 어머니처럼 예쁜 것도 아니고, 비염이나 축농증 없이 호흡을 원활히 하는 것도 아니니 또 화가 날랑 말랑한다. 분노가 창작과 삶의 근간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나의 태만과 습관을 고쳐주는 조교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코의 쉼표를 보고 있자면 완벽한 위선이 들통날까 두려우면서도 언제나 찬양할 준비가 되어있다. 즐거운 들통이 되리라 확신한다. 미끄럼틀에 두 발을 담그고 손을 놓을 그 순간이 조만간 오기를 희망한다.


사진 출처 : 제시카 알렉산더(Jessica Alexander) (JoBlo Movie 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