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이 불시착해서 달에 떨어진다면

by 제이언

재작년까지의 나를 알던 사람들은 내 취미를 노래방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노래방은 스팀 게임과 글쓰기를 제외한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였다. 셋의 공통점은 혼자 즐길 수 있다는 점이고, 나머지 둘과 달리 노래방은 이른바 혼코노(혼자 코인 노래방 가기) 외에 다른 지인들과 함께 할 수 있다. 내가 보컬트레이너는 아니지만, 상대를 마주할 때 눈에 담긴 우주나 귀의 굴곡, 코의 쉼표 외에 자주 관찰하는 부위는 성대. 정확히는 성대의 떨림을 통해 탄생하는 목소리다. 성종을 파악하는 습관이 있는데, 가령 나는 바리톤이다. 목소리는 저음이고 가성이나 억지로 쥐어짜서 내는 고음을 배제한 최고음은 평균 남성의 진성 한계음인 2옥타브 파#~솔이다. 누나는 콘트랄토는 아니지만 알토의 영역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는 메조소프라노, 누나처럼 음역대가 풍부하진 않지만 가성이 예쁜 어머니 역시 메조소프라노, 박정현은 소프라노. 학창 시절 한 번도 노래방에 같이 가본 적 없는 전교 1등 범생이는 테너, 하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고 평소 말하는 발성도 살짝 갈라지는 느낌이라 나얼 같은 맑은 고음이나 김범수 같은 탄탄하고 군더더기 없는 고음보다는 이수 같은 복근의 힘이 받쳐준다면 허스키한 고음이 될 약간의 소질이 있는 테너. 대학교 시 동아리 때 글에 관심 많던 친한 후배는 가성처럼 들리는 김종국이나 KCM 느낌의 테너. 어제 교통카드 찍기 전 이거 연신내역 가요? 라고 기사님께 물어보던 아주머니는 귀가 쨍한 날카로운 발성이나 음 자체는 높지 않아 남성의 바리톤과 같은 메조소프라노, 그녀에게 대답하던 기사님의 성종은 베이스. 남자들이 대부분 저음인 것 같아도 막상 무진장 저음이라 느껴질 정도의 베이스 성종은 드문 편이다. 오히려 반에서 한 명쯤 있는 목소리 얇고 높은 테너가 더 비율이 높다. 여자의 콘트랄토도 드문 편이고, 나 엄청 저음인데? 싶으면 그냥 음역대 풍부하거나 베이스 또는 콘트랄토에 근접한 바리톤 또는 메조소프라노인 것이다. 성우로 치면 옛날 투니버스에서 방영했던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 등장하는 기로로 성우인 시영준 성우가 대표적인 베이스다.


한때 즐겼던 온라인 게임 겟앰프드나 사람들과 노래방 가는 걸 즐겼던 까닭은, 내가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온라인 게임은 전부 경쟁이고, 오버워치나 발로란트 같은 게임은 3D 멀미가 심하고 에임도 좋지 않아 잘할 수 없었기에 예전부터 격투 게임으로 남을 이기는 걸 좋아했다. 직장 상사나 지하철 빌런 같은 이들을 현실에서 후두려 팰 수는 없으니까. 글이나 격투 게임으로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서 해소됐다. 노래방은 짝사랑하는 이성에게 뽐낼 수 있는 기회! 일 수 있지만 내가 어울리는 무리에 여성은 없었고, 자취방에서 늘 보던 얼굴들 혹은 친구의 친구처럼 단지 동성끼리 있어도 어쨌든 누군가에게 나 잘한다고 실력 발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쟤 노래 좀 하더라, 평소 목소리랑 노래할 때 목소리가 달라, 하는 소문이 미끄럼틀이 완벽한 여성에게 퍼지길 기대했다. 이 두 가지 공통점은 경쟁에서 지게 되면 상당히 기분 나빠지고 더는 하기 싫어지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공유한다. 재작년 이후로 노래방에 가길 꺼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예전에도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는 듣기 좋고 힘찬 고음은 어쩌다 컨디션이 좋을 때 발생했고, 보통 1차 소주 2차 막걸리 등의 계단을 거쳐 막바지에나 노래방을 갔기에 몽롱하거나 알코올과 담배에 목이 잠겨 성대가 깨끗한 상태는 아니었으므로 아주 잘 부르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목소리도 좋고 선곡도 탁월하고 고음도 듣기 좋았기에 그 리액션들을 안 보는 척, 눈을 감거나 화면에 나오는 뮤비를 응시하는 척 하나하나 담아두고 만끽하며 한편으로 평소 말 더듬고 소심했던 답답한 일상을 고음을 통해 응어리를 뱉어낼 수 있어 몹시 좋아하던 취미였다. 사실 지금도 파바로티 성대와 발성 가질래, 노벨문학상 받을래 하면 한참 고민하다 작가의 꿈을 버리고 테너 가수를 택할 정도로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를 뽐내며 세상 다 가진 양 점프해서 달에 착륙할 정도로 노래는 내 일상의 몸통을 차지했다. 불행하게도 평소 말하는 발성과 뒤집힌 생활 습관, 꾸준한 담배와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 등으로 내 최고음도 차츰 낮아졌고, 예전에는 완창할 수 있었던 김건모 노래 등도 부르지 못하거나 듣기 싫은 고음, 데시벨만 높아 고음이 아닌 고성에 가까운 소음과 힘 빠지는 가성만 뱉을 수 있는 처지가 돼 버렸다.


흔히 십팔번으로 표현하는 애창곡들이 있었고, 남들처럼 휴대폰 검색이나 인기 순위 목록에 진입하지 않아도 그 골목에 발을 담그는 순간 이미 뭘 부를지 구상하고, 부르는 순간마저 재생되고 있었다. 여럿이서 부르면 자기 차례가 잘 오지 않아 어지간해선 마이크를 잘 넘겨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저번 추석 때 사촌들과 노래방에 갔는데 내가 뭘 불렀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고, 부르다가 삑사리 나면 어떡하지, 우리나라 발라드는 왜 이리 높은 거야, 역시 고등학생 때 자주 부르던 패닉이나 김동률밖에 없나, 라는 식으로 고민만 하다 그 김동률 노래마저 하이라이트에서 음이 많이 흔들리고 갈라져 듣기 싫은 소리가 나오고 그걸 듣는 사촌들의 반응을 살피며 역시 노래방 괜히 왔다, 라고 자책하며 내 음정과 감정은 무겁게 지각을 뚫고 맨틀에 진입했다. 더 이상 노래방에 가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가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계일학의 학이라 스스로 믿었기에 은퇴하고 별 볼 일 없어진 과거의 챔피언 내지는 패잔병처럼 어깨는 가라앉았다. 전성기 내 시절 성대를 알던 옛 친구들이나 최근 사촌들도 왜 이렇게 실력이 형편 없어졌지? 같은 의구심 담긴 눈으로 처량한 내 뒷목을 응시했다. 과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게 됐고, 더불어 혼코노를 통해 응어리를 해소한다는 개념도 싹 다 증발했다. 가면 갈수록 하향세인 실력을 확인받고,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며, 오랜 공백으로 곡 선택에 차질도 생겼으므로 되려 싫어하는 취미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싫어하는 취미? 안팎이 다른 내 위선처럼 모순된 말이다.


현재 기준 아직도 섭종을 하지 않은 겟앰프드에 추억이 서려 접속했는데, 원형경기장과 타이타닉이라는 맵에서 내 캐릭터는 아무런 활약도 펼치지 못한 채 맵 밖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나이 먹을수록 몸의 체질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힘도 떨어져 더는 내가 자랑했던 게임으로 남들을 죽이지 못하는 신세가 돼 버렸다. 노래를 통해 알게 모르게 상대의 기를 죽인다고 착각하고 자위했던 그 시절도 먼지 낀 수족관 유리처럼 탁해졌다. 상대의 눈도 잘 못 마주치고, 어눌하던 내가 그나마 기세를 펼칠 수 있는 수단 셋 중 둘이 벌써 나가리됐다. 남은 건 글쓰기지만, 예전 네이버 블로그 때의 딜레마가 되풀이될 뿐이다. 스스로 양질의 글이라 생각해도 누군가 읽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글이다. 안 괜찮지만 괜찮다, 는 식의 힐링을 주는 글쓰기는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같다. 예전의 고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지금 좀 더 행복했을까? 여자 친구가 20대 때 생겼다면 내 삶은 긍정적으로 변했을까? 아버지가 집을 안 나갔으면 공부 잘했을까? 전부 의미 없는 가정일 뿐이다. 성큼성큼 오르던 고음의 회상은 지붕을 뚫기도 전에 이미 중력의 손아귀에 잡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어쩌면, 나처럼, 그게 소리를 채집하는 어느 미끄럼틀 여인의 귀로 불시착해 가까워진 우리가 키스했다면 지금의 내 모습과는 다른 내가 있지 않았을까? 글쓰기의 주된 출발은 가정이다. 코의 쉼표를 자주 핥을 수 있는 가정적인 여인의 부재가 지금의 글을 탄생시킨 것이다. 허면 머해, 이게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닌데. 자주 하던 밤산책을 오랜만에 해볼까 싶다. 지나가다 고성방가가 들리면 또 셜록 홈즈에 빙의해서 혼자 추리하고 자위하는 게 내 비루한 취미가 됐다. 달짝지근한 고음과 술 냄새와 시끄럽게 웃던 그 조명은 이제 없을 것 같다. 안구건조증 앓는 음침한 눈으로 환한 새벽을 더듬으며 재채기하는 서른 살 백수, 한때의 좋은 모습만 회상하며 자위하는 한심한 그 남자가 바로 나다. 나는 나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전부 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