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순간, 진짜가 시작되었다

나희덕 시인의 <길 위에서>를 읽고

by 제이바다


나희덕 시인의 「길 위에서」를 읽었을 때, 신혼집에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2층 낡은 빌라 방에는 벽지 위를 오가는 여러 개미떼가 있었다.

시에서 처럼 개미들은 지워진 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길을 잃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끄러미 관찰하던 기익이 새삼 떠오른다.


시인은 말한다.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나 역시 그랬다. 누군가의 방향을 흐트러뜨리거나, 냄새를 지워버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수없이 누군가에 의해 길을 잃어왔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진학, 직장, 결혼 - 내 삶에서 중요했던 결정들조차도,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는 나의 삶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제약조건들 속에서 선택된 것들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선택한 것이든, 선택된 것이든 모든 것은 나의 책임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삶을 살아가는 방식' 속에서 선택은 더욱 제한되었다.


나의 선택은 주관식이 아니라, 사지선다형 문항들 속에서 가장 적절한 답을 고르면 되는 일이었다.

선택을 망설이다 시간이 지나버리면, 과거의 '나'를 토대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이 자동선택해 주기도 했다.

그리면 나는 그저 그 선택을 수긍하며 살아내면 되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나를 놓이게 하고, 그렇게 주어진 선택에 순응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선택을 정당화하기라도 하듯이 주어진 일에 늘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완성해 냈다.

그렇게 살아온 나를, 사람들은 '착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내 안의 진짜 나는, 어쩌면 늘 길을 잃은 채로 서성이는 개미와 닮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거짓된 사람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하지 못한, 가짜에 불과하다.


어느 날 아침, 지독히도 출근하기 싫었던 날,

오늘만큼은 나를 위해 '다른 선택'을 시도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올라왔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마치 내 몸이 이미 그렇게 움직이도록 프로그램된 것처럼, 개미의 길 위에 서 있었다.

아, 신이 나에게 부여한 내 시간조차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걸까.

나는 그렇게 잘 길들여진 새가 되어 있었다. 열린 문 앞에서도 날지 못하는 새.


그래서 영화 『매트릭스』의 설정이 낯설지 않다.

우리가 믿는 이 현실이 과연 진짜일까? 누군가에 의해 조종된 시스템 속의 반응 아닐까?

떼를 지어 가는 개미, 길을 잃어 우왕좌왕하는 개미와

그 개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그 누군가의 시선.


이제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얼마나 진실된 순간을 살아내고 있을까?

서성거리는 개미처럼 과거에 대한 후회에 머무르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현재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길을 잃었던 개미가 그랬듯이

곧 새로운 길을 찾아낼 것이다.

길을 잃어버린 지금,

어쩌면 진짜 나의 길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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