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거야

정지아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독서 후기

by 제이바다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지만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농부 아버지에게는 가난한 농부 아버지의 딸이 있고,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아들이 있으며,

빨치산 미전향 장기수 아버지에게는 빨치산의 딸이 있다.


그렇게 인간의 굴레는 마치 운명처럼 우리를 휘감는다.

아버지는 어쩌면 어떤 삶을 살아갈지 선택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의 딸은 아버지를 선택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억울하다.


당하기로 따지자면 내가 더 당했다.
아버지는 선택이라도 했지, 나는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빨갱이가 되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겠다 선택하지도 않았다.
태어나보니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었을 뿐이다.(76p)


책 속 주인공의 외침은 현실의 무게만큼이나 축 쳐져있다.

그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분노하며 살아내야 했던 시간들.

어쩌면 그 분노를 담아내는 그릇이 한없이 작았음을 깨닫는 것은

나이가 들어 뒤늦게 찾아오는 후회와 함께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맞이한 마지막은

이 길고 지난한 '해방일지'의 마침표를 찍는 듯 했다.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는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198p)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아버지의 지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아버지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주인공은 적잖이 당황스럽다.

'나는 아버지의 몇이나 되는 얼굴을 과연 보았던 걸까?'


집안에서 부대끼며 수도 없이 보아왔던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로서 마땅히 감당해야할 책임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딸의 입장에서 바라던 방식으로 보아왔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더욱 궁금해 질 수 밖에 없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중략)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249p)
아버지는 더없이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아 방을 내어 주었던 방물장수가
서까래에 매달아 놓았던 마늘 반 접을 훔쳐간 일을 두고서도
‘오죽했으면 그깟 것을…’ 하며 못내 안타까워던 분이었다. (14p)
나중에 그 친구가 그랬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한 게
우리 아버지가 처음이라고.
어쩐지 아버지 말에 지금까지의 모든 설움이 씻겨 내리는 것 같았다고. (141p)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138p)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더없이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방물장수 도둑질을 "오죽했으면 그깟 것을…"이라며 안타까워했고,

장애를 가진 딸의 친구가 혹시라도 의식할까 싶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는,

철저히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으로 장례식장 발걸음조차 무거웠을 친척과 이웃도 있었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아버지의 삶에도 수많은 결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늘 이야기하곤 했었다.

무엇인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거라고.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사정이,
나에게는 나의 사정이,
작은 아버지에게는 작은 아버지의 사정이.
어떤 사정은 자신밖에는 알지 못하고,
또 어떤 사정은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 (33p)


빨치산이라는 현대사의 비극 한가운데 서야 했던 아버지에게도,

그런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만의 깊은 사정이 있었으리라.

책을 읽으며 나는 문득, 아버지와 같은 결을 가진 그의 마음 한 조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첫걸음은 무거웠겠고,
산이 깊어질수록 걸음이 가벼웠겠구나.
아버지는 진짜 냉정한 합리주의자구나.
나는 처음으로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17p)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오래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환경은 때로 나를 옭아매는 굴레가 되었다.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나 또한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간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표정, 말,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여느 아버지들처럼, 내 아버지의 삶도 매우 단조롭고 무미건조해 보였다.

노년에 불 꺼진 방에서 작은 TV 소리에 의지해 웅크리고 누워 있던 아버지의 모습.

그가 선택한 삶이든, 선택받은 삶이든,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 나름의 이유로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찬란한 불빛만으로 가득하지도, 사그라든 불씨만도 아니기에,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를 견뎌낼 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한다는것 자체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저 지금의 내가 그러하듯이

아버지의 인생 또한 고달팠을 것이라는 사실이 아련하게 다가올 뿐이다.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224~225p)


결국,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아버지로부터의 해방일지'는

나의 삶 속에서도 계속 쓰여야 한다.

그래야 나의 아이들도 훗날 겹겹이 쌓인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어느 날 문득 그리움에 웃고 울 수 있을 것이기에...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속에 부활하는 것이라고. (231p)


아버지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기억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부활하는 아버지와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 숨 쉴지,

나의 해방일지를 묵묵히 써 내려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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