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지리산 천은사>
▷ 위치 : 전남 구례군 노고단로 209
▷ 가볼만한 시기 : 10월 말~11월 초순
▷ 함께 가볼만한 곳 : 화엄사, 사성암, 피아골
매해 가을이 오면 전남 구례에까지 먼 길을 달려가서 단풍으로 둘러싸인 화엄사 산사를 둘러보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호사를 누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구례에는 화엄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척(10분 거리)에 천은사라는 숨은 보석과도 같은 사찰도 있다. 천은사 천왕문을 지나 넓은 마당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2층으로 지어진 누각 보제루가 보인다. 법요식 등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기 때문에 누각에 들어가 앉을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나는 계단을 올라오느라 흘린 땀을 식힐 겸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각 안쪽 열린 창을 통해 저 아랫길 쪽에서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이때, 지나오면서 특별한 감흥이 없었던 천왕문 쪽 앞 마당이 창을 통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순간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천왕문, 석등,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들이 먼 산을 배경 삼아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 창틀은 액자틀이 되어, 자연을 단정하게 정리해 주고 있었다. 창이 없었더라면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사물은 보는 사람의 위치와 시선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여기 누각에 앉아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한 공간에 배치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제각기 흩어져 있는 사물들을 한 공간에 잘 어울리게 구도를 잡아 여기 그림 액자에 담아낼 생각을 해낸 그 옛날 예술가는 누구였을까. 후세에 누군가가 자신의 숨겨놓은 비밀 코드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어 열린 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