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 리뷰
▷한줄평 : 상처를 숨기지 않은 용기가 우리 모두가 ‘주인’ 임을 알게 한다
▷평점 : ★★★★★
▷영화 : 세계의 주인(The World of Love), 2025.10.22 개봉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는 기계식 자동 세차장 입구로 미끄러지듯 들어선다. 물줄기가 세차게 쏟아지고 롤러가 돌아가며 차안 밖의 소리가 완벽하게 차단된다. 그 순간 함께 타고 있던 딸 ‘주인’(서수빈)은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격정적으로 토해낸다. “엄마, 왜 몰랐어, 엄마는 내 얼굴만 보고도 알았어야지!”. 엄마 ‘태선’(장혜진)은 말없이 딸을 바라보다가 무심히 티슈와 페트병을 건넨다. 1분쯤 지났을까. 차는 금세 세차장을 빠져나온다. 쓰디쓴 감정의 찌꺼기는 한꺼번에 빨리 씻어내는 것이 낫다는 듯. 감정이 모두 추슬러졌는지 흘깃 쳐다보더니 엄마는 익숙하다는 듯 말을 건넨다.
“한 바퀴 더 돌까?”
아마도 그동안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온 그들만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세차장은 이들의 ‘치유’와 ‘사랑’의 의식이었다.
‘상처’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한 번 씻어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금세 다시 세차를 해야 할 시간이 돌아온다., 내면 깊숙이 남은 생채기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복수를 했든, 용서를 했든 세차장을 드나들 듯 솟아오르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반복해 씻어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는 말은 거짓된 위로이다. 상처는 잊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는 것이다. 겉으론 태연한 척 당당해 보이지만 깊은 상처는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댄다. 그 치유하기 힘든 상처가 더 이상 곪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돌보는 방법밖에 없다. 각자의 익숙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영화 <세계의 주인>의 주인공 ‘주인’은 이 깊은 상처를 스스로 드러내 보인다. 누군가가 눈치라도 챌까 두렵고 불안해, 숨기기에 급급한 이 상처를 ‘주인’은 당당하게 세상 앞에 꺼내 놓는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이 세상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전혀 다른 방식을 제시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불편해 보이기까지 한 지점에서, 이를 어떻게 수습하려는지 짐짓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드러난 상처가 아니라, 스스로 드러낸 상처
고2 여학생 ‘주인’은 누구보다도 밝고 활달한 ‘인싸’로 그려진다. 친구들과 함께 인스타 영상을 찍기도 하고, 운동장에서는 배구와 농구를 가리지 않고 즐긴다. 점심시간엔 19금을 넘나드는 농담도 서슴지 않는다. 방과 후엔 며칠 빠졌던 태권도장을 혼자라도 찾아가 몸을 단련할 정도로 자기를 돌볼 줄 알고, 단체 봉사활동 모임도 꾸준히 참석한다. 수차례 바뀐 남자친구와의 연애도 꽤나 진심이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고등학생들의 키스신은 강렬하기까지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반 친구 ‘수호’(김정식)가 동네에 들어올 성폭행범의 출소를 반대하는 청원서명에 동참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주인은 한사코 이를 거절한다. 전교생 중에서 유일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서명지에 '평생 씻지 못할 깊은 상처', '한 사람의 인생과 영혼을 파괴하는'라는 문구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성폭력의 상처를 딛고 지금 이 순간에도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지금의 삶을 부정하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평생 상처 속에 갇혀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피해자다움’에 주인은 동의할 수가 없다. 순간 우리는 이 장면에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쉽게 편견과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는지 발견하게 된다.
결국 수호와의 갈등은 몸싸움으로 번지고, ‘학폭위’까지 열리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주인은 자신의 과거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누구나 숨기고 싶어 할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어쩌면 주인은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이 세계의 주인(主人)으로 당당히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명제이다. 하지만 그 당연함을 증명할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폭력적인 ‘시선 투쟁’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주인’의 고백은 경이로움을 넘어서 걱정을 먼저 불러온다.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주인의 고백은 곧 비수의 화살이 되어 되돌아온다. 절친들조차 이전과 달리 대하고, 그들이 건네는 위로의 말과 행동은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친구들은 그동안 놓쳤던 주인의 말과 행동, 표정과 시선을 되짚으며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 적극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익명의 쪽지, ‘’이주인, 뭐가 진짜 너야? 너는 진짜 괜찮아?’라는 이 한 문장은 그동안 당당히 서 있던 ‘세계의 주인’을 단숨에 무너뜨릴 만큼 잔인하다.
과거의 상처를 이겨내는 여러 가지 방법들
주인의 상처는 끈질기게 가족들까지도 괴롭힌다. 상처는 쉽게 덜어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배가되어 각자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상처의 몫이 할당된다. 엄마는 독술로 죄책감을 달래고, 아빠는 집을 떠나 자연 속으로 도피해 버린다. 할머니는 절에서 삼배를 올리며 ‘전생의 업보’를 지우려 하고, 동생 해인(이재희)은 가해자가 보낸 편지를 숨기고, 마술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싶어 한다.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해인의 학예회 마술쇼. 그는 관객들에게 각자의 걱정과 고민을 쪽지에 적어 플라스틱 통에 넣도록 한다. 그러나 실수로 바꿔치기하려던 통이 바닥에 나뒹굴면서 쪽지들이 쏟아져 버렸다. 사라지게 하고 싶었던 상처는 결국 세상 밖으로 드러나 버리고 만 것이다.
비슷한 친족 성폭력 사건으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봉사모임 언니 ‘미도’(고민시)는 ‘용서’로 상처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가해자는 죄를 인정하지 않고, 변호사는 끊임없이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며 상처를 거듭 들춰낸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은 사람을 용서할 수는 없다.
“나는 용서 많이 노력하는데… 아직 잘 안돼, 내 자신이.”
용서조차 상처를 지워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냉정하게 보여준다.
상처를 이겨내는 첫출발
어느 날 주인은 엄마가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혼자 남겨진 아이의 몸을 꼬집어 가면서 아픈 것을 참지 말라고 말한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이래도 안 아파? 이래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지. 안 아프다는 건 거짓말이야!”
그리고 학교 책갈피에서 발견한 세 번째 익명의 쪽지의 글귀가 화면에 클로즈업되면서, 동일하게 자신들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교실 속 여러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로 주인의 상처는 확장된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주인만이 아니었다.
그제야 우리는 성폭력 피해자 주인을 바라보던 관찰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내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된다. 즐겁게 떠들고 웃으며 보내던 행복한 순간 뒤에, 문득 숨통을 죄여오고 명치를 자극하며 위로부터 끌어 올라와 토설하게 만들던 깊은 상처까지 소환된다.
상처는 드러낼 때야 비로소 치유된다. 치유의 출발은, 우리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동일한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데 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내뱉는 어설픈 동정과 위로는 접어두어야 한다. 누군가 자신의 상처를 고백할 때, 위로 대신 나 역시 그런 상처를 가졌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상처는 나누는 순간,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된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상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 아닌가?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도 함께 껴안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이게 인생의 비극이라면 비극일 테다.
영화가 말하는 ‘세계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며 우리 모두다. 바흐의 사냥 칸타타 ‘양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Sheep May Safely Graze)’가 흐르는 엔딩 크레딧이 끝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시 ‘기러기(Wild Geese)’가 떠올랐다.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러면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 말처럼,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상처는 무엇이냐고. 그리고 이제, 그것을 드러낼 용기가 있느냐고.
기러기 / 메리 올리버, 민승남 옮김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들과 울창한 나무들,
산들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ㅡ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
You do not have to be good.
You do not have to walk on your knees
for a hundred miles through the desert, repenting.
You only have to let the soft animal of your body
love what it loves.
Tell me about despair, yours, and I will tell you mine.
Meanwhile the world goes on.
Meanwhile the sun and the clear pebbles of the rain are moving across the landscapes,
over the prairies and the deep trees, the mountains and the rivers.
Meanwhile the wild geese, high in the clean blue air,
are heading home again.
Whoever you are, no matter how lonely,
the world offers itself to your imagination,
calls to you like the wild geese, harsh and exciting —
over and over announcing your place
in the family of things.
2025.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