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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기억한다

by 이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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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떠나있던 공간에 들리면서


머리의 기억이 고된 시간을 맞이하는 것을 본다


전화번호가 잘 떠오르지 않듯, 오래 떨어진 벗의 이름이 백지로 남아있듯


숫자에 약한 내 기억력은


문 앞에 서서 멍한 시간을 보내게 한다


번호로 개폐하는 문은 오래 찾아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는지


두꺼운 부피로 나를 막는다


잠깐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아득함이 인다


그렇게 멀리 떠나있었던 스스로를 자책해 보고


다시 문을 바라보지만 내 눈은 쉽게 집안으로


나를 들이지 못하고 있다


갖은 생각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흩날리고


장인을 불러볼까 하는 마음까지 된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믿음이 있는 나를 보면서


몸에 의지해 기억을 재생해 본다


확실히 생각이 멀어진 곳에 몸이 깨어있다


몸은 정확하게 숫자를 부르고 난 철컥거리는 경쾌한 소리를


세상을 얻은 듯한 기꺼움으로 듣는다


숱한 시간 아득한 몸짓으로 살아온 나날이


이렇게 지식이 되어 몸에 배어 있을 줄이야


다시 소중하게 여겨보는 몸이 기억하는 지식,


그것은 언제까지나 나를 버리지 않을 게다


오늘도 무심하게 문을 열고 닫는다


그렇게 걷고,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기다리며


영육의 조화로운 내 삶을 매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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