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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나들이

by 이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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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나섰다. 3박의 일정으로 나선 둘의 걸음이다. 제주에서 아침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렸다. 지하철이 잘 되어있는 서울은 예상외로 우리들의 걸음에 편이를 제공했다. 김포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에 내렸다. 그곳에서 맛집을 찾아 칼국수를 한 그릇 하고자 하는 계획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뚜벅이로 맛집을 찾는 일이 나이가 든 우리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점심을 먹은 후 막내를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이동을 했다. 신사동, 낙원동, 탑골공원 등을 거닐면서 시내를 투어하는 시간이 꽤 보람되었다. 인사동의 골목골목은 얘기와 책 등의 기억과 조화를 이뤄 익숙함으로 다가왔고, 추위가 추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인사동 거리를 걸어 회사에서 행하는 교육을 받고 있는 막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갔다 거기에 우리의 다음 여정을 안내받기로 약속이 되어서다.



딸내미를 만나고 우리는 북촌으로 향했다. 차로 북촌을 투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북촌의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네까지 큰 도로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북촌의 진면목이 눈에 선연하게 들어왔다. 지난날 교토에서 걸었던 길이 오버랩 되면서 옛길의 전형으로 다가왔다. 역사와 선조들의 삶이 아울러 사고의 무게로 일어 왔다. 좋은 경험의 장이 되었다. 함께한 딸내미께 감사하는 마음이 일었다. 역시 아는 이들의 안내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북촌을 내려오면서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게 되었다. 전경들의 차가 진을 이루고 있는 헌법재판소 주위를 지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되었다. 필요한 곳에 공권력이 움직여야 하고 국민의 혈세가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씁쓸한 정경을 마음에 담았다. 신속하게 모든 일들이 끝이 나고 정상적인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 민족의 아픔이 빨리 치유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시간이 흘렀다.



북촌에서 내려와 막내 사위를 만났다. 그리고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남산에 올랐다. 케이블카를 타고자 하는 우리 4명의 의견으로 쉽게 남산에 오르는 시간을 가졌다. 남산에서 조망은 청명한 날씨만큼이나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었다. 특히 용산 인근은 새롭게 눈에 다가왔다. 내일 그곳에서 지인의 자녀 결혼식이 있기에 역사가 아니라도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남산에서 관동별곡을 떠올리고, 지난 시간 서울 이모네 식구들과 올랐던 기억도 떠올렸다. 많은 생각들이 명멸하는 곳, 남산...... 현재의 삶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등포 쪽에서 숙소에 들어갔다. 그곳까지 안내한 딸 부부는 우리가 쉬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숙소를 마련해 준 딸네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지녔다. 이번 서울 투어는 두 딸의 도움으로 많은 부분이 이루어졌다. 숙소는 평안했고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또한 막내의 큰 선물을 받는 시간도 가졌다. 이튿날은 아침 조식도 주문이 되어 있어 깔끔한 식사를 통해 2일째 시간을 잘 준비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10시에 나와 가까이 있었단 막내 집에 들렀다. 앞사람이 반찬을 좀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이들이 출근한 집에 들른 것이다. 몇 가지 밑반찬을 만들고 우리 둘은 그곳에서 나와 용산에서 행하는 결혼식에 하객으로 들렀다. 사실은 제주에서 나온 것도 이 결혼식에 맞춘 시간의 운영이었다. 결혼식에 참여하면서 서울 투어를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리 움직이게 된 것이다. 결혼식은 주례가 없이 행해지는 실속 있는 행사로 인식되었다. 음식이 너무 풍요롭게 준비되어 있어 조금은 경제적으로 되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결혼식장에서 나와 외대앞에 있는 아이들의 큰이모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장인, 장모가 머물러 있는 현충원을 찾아보자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일환이었다. 집 주인들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주변에는 재개발을 한다고 주택들이, 길거리가 어지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재개발, 좋기는 하지만 주변에 너무 큰 악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집들이 쓰레기가 널린 골목과 함께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조금은 허허로운 마음이 드는 공간이었다. 그 길을 걸어 산책을 하면서 야경을 구경했다.



3일째 대구에서 올라온 아이들 이모와 서울의 식구들, 우리 가족은 모두 지하철을 타고 현충원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숙연한 시간을 가졌고 만남의 집에서는 차도 한 잔씩 나누었다. 지난 시간 지녔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세월의 무상함도 느꼈고, 겸허하게 남은 시간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현충원은 늘 그렇게 거기에 있으면서 많은 위로와 재생을 꿈꾸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다시 올 시간을 마음에 그려보면서 추념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둘째 딸 내외가 그곳까지 와주었다. 그들에게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자고 있는 곳이었다. 다른 식구들은 만남의 장소에서 지하철로 이동을 하고 우리는 아이들 차를 타고 아이들 집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앞날을 생각하고 저녁을 먹었다. 그 후 아이들은 우리를 공항 가까운 숙소로 데려다주었다. 새벽에 제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기에 공항 가까이 있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마련해 준 숙소다. 숙소에서 김포공항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새벽에 걸어보니 찾기가 정말 쉬운 곳이었다.



비행기는 6시 45분 김포를 이륙하여 한 시간 정도 후에 우리를 제주공항에 실어도 놓았다. 3박의 서울투어가 끝이 났다. 두루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눔과 사랑, 추모와 정겨움,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 등이 공존했던 서울의 시간들, 아마 기억 속에 오래 남아갈 듯하다. 이 기억들은 마음속에서 농익어 다시 따뜻한 언어로 재생해 찾아오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그 언어들을 만나는 날을 백지 위에 익숙함으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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