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성장하던 시절에 집의 어른들이 저녁만 먹으면 잠이 들고, 새벽같이 일어나 밖에 나가시던 일이 기억난다. 저녁에 잠에 취하는 요즘의 일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게 된 것이다. 사람은 잠을 자는 게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저녁이 일찍 자니 자연적으로 새벽잠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 이리저리 거닐기도 하고, 이렇게 책을 읽기도 한다. 사위가 조용한 새벽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되어, 하루를 이끌어 내고 있다. 타인이 보기엔 나의 이런 여유가 부러움이 되고 나에겐 이 시간들이 아름다운 사치가 될 듯하다.
나는 옛날의 어른들처럼 새벽에 일하러 나가야 할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새벽에 잠이 없는 삶이 이루어지는 것은 세월 탓이다. 보통의 경우,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나이가 새벽잠을 없어지게 한다고. 아이들과 30여 년이 넘는 생활을 하고, 이제는 현장에서 물러나 이렇게 언어를 통해서 여유의 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나의 삶은 복 되다. 이렇게 시간을 아무런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다. 새벽이면 남들이 모두 하루의 무게에 마음이 무거울 지라도 난 하루를 어떻게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궁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여분의 인생 속에 나에게 특별히 주어진 가슴 떨리는 시간들이다. 이 시간들에 이렇게 언어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흥겨운 일이다. 마음을 늘 빛 속에 머물게 만드는 일이다.
집의 아이들을 보면 새벽에는 꼼짝을 못 한다. 밤에 늦게까지 개인적인 일을 하고 새벽에는 꿈의 나라에 헤매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바쁘다. 그러기에 재충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낮이 되어 정신이 혼란스러우면 언제나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새벽의 시간이 이렇게 풍요 속에 흘러갈 수가 있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삶은 나의 젊을 때의 모습이다. 지금의 나완 정반대의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나의 삶이 그렇게 풍족하고 여유가 넘치는 삶이라는 얘기다. 시간의 사치를 누리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적인 욕심이 없이, 경제적인 부담이 없이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생활이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지? 스스로에게 늘 묻곤 한다.
창밖이 아직도 어둡다.
가까이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울까 조심스럽기는 하다
혼자 서재로 움직인다
집안에 홀로 불을 켜놓고 있다
그 불이 잘 익은 영롱한 과일처럼 보인다
풍성한 가을처럼 느껴진다
창밖의 어둠이 싫지가 않더
고요가 넉넉함이 된다
이렇게 시간을 만들고 있음이 타인이 보기엔
부러움이 될 수가 있다
서재에 머물고 있는 이 시간이
나에겐 정말 복된 시간이다
오늘도 이렇게 서재에서 새벽을 열고 있다. 이 시간 나의 맑은 정신은 요즘의 하늘 같이 세상을 세밀하게 읽는다. 나의 일상도 그렇다. 오늘도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가 눈에 보인다. 하루의 일상을 충분히 계산할 수 있는 삶이 되는 게다. 변수가 별로 없다. 만들지도 않고. 난 이런 평온한 삶이 좋다. 타인이 보면 아마 부러움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일 게고, 나로 보면 시간을 스스로를 위해 가꾸는 일상이 될 게다. 무척이나 행복하다. 이제 새로운 도전 같은 것은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기회를 만들고도 싶지 않다. 주어진 일들을 즐기며, 감사하며, 도우며, 돌보며 그렇게 눈에 보이게 살아가는 게다. 별로 깨어지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두지도 않을 게다. 나를 내가 조정해 나가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나가고 즐겨하는 생활을 바라보고 있다. 스스로에게 사치스러운 일상을 주고 있다. 행복함과 사치는 어찌 보면 나에겐 같은 의미다. 나의 노년의 시간은 이렇게 꿈을 꾸며 흘러갈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