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를 누리는 거문 오름을 많이 들었다. 거문 오름 아래를 몇 번이고 들렀다. 오를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듣고 찾은 기회가 지식이 되는 기회는 더러 가졌다. 용암을 생각할 때도 고사리를 생각할 때도 곶자왈을 떠올릴 때도 거문 오름은 좋은 이야깃거리였다. 그런 거문 오름을 우연한 기회를 타고 깊이 만나게 되었다.
제주에 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표선에서 번영로를 타고 제주로 가는 시간이 있었다. 요즘 번영로는 정말 많이 탄다. 그러면서 그 길에서 들어가는 표지판이 있는 오름을 만난다. 그리고 오름을 찾고자 하는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과 몸의 곤함 때문에 오름을 찾지는 못했다. 기웃거리는 시간만 더러 가졌다. 제주로 가는 시간 속에 자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 다른 오름들은 제쳐두고 거문 오름을 택했다. 그만큼 들리는 소리가 요란했기 때문이다.
거문 오름에 들르고 직접 만나니 그 요란스러움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라든지, 전시관이 잘 지어져 있다는 것이라든지, 입장료를 내는 것이라든지 모두가 오름으로는 생경한 것들이었지만 그 외에도 분화구의 탐방로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3단계 탐방로가 잘 다듬어져 있었다. 멋진 행로가 아닌가 다니면서 느꼈다.
예약으로 탐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곳이었다. 안내자도 붙여 주었다. 난 기회가 좋게 무리 속에 일원이 되어 탐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전시관에서 시간을 기다리며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오름을 오르는 무리들과 섞여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코스는 정상,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이었다. 비교적 순탄하지만 그래도 오름은 오름이었다. 다리의 강도를 시험하는 시간도 지녔다. 오르는 길에 삼나무는 서로를 의지해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도 잘 가꾸어진 나무들의 행진을 보면서 자연스러움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안내인도 기존의 식수된 나무들을 일정 분량 제거하고 자연적으로 자라는 나무들이 생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였다. 자연스러운 숲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정책이라고 했다. 나무들이 서로 나누고 위로하는 듯해 마음이 따뜻해졌다.
전망대에서 조망해 보는 주변 경관은 멋스러웠다. 분지를 들러싼 봉우리들이 놀라운 정경으로 다가왔다. 사계가 각기 다르게 변신한다는 안내인의 말속에 경관을 둘러보면서 일행들은 다시 찾을 것을 타인들에게 공유하고 있었다. 호사스러운 자리에 있는 듯해 행복했다.
2코스는 용암이 분출하면서 이루어진 분화구를 돌아보는 길이다. 분화구 안으로 길을 잘 조성되어 있었다. 용암이 흐른 자취가 남아 있었고 그들이 굴을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온기가 흘러나오는 숨골은 그 증거가 되었다. 안내인은 만장굴도 이 용암이 흘러 만들어낸 절경이라고 전해 주었다. 그런 굴이 숱하게 만들어진 용암의 흐름이었다고 용암이 흘러간 길을 안내인은 전했고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분화구 안은 곶자왈로 이루어져 있었다.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돌들이 버섯으로 분해되어 흙이 되고, 바위 위에는 낙엽들이 쌓이고 그렇게 하면서 생명이 싹틀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척박한 땅에 생명이 깃들게 되면서 숲이 이루어졌다. 곶자왈이다. 난 곶자왈을 만나면서 분재를 많이 떠올렸다. 이끼가 자리고 복수초가 꽃을 피우며 노루귀가 자라는 곳을 3월의 하늘 아래서 보았다. 분화구 안은 다양한 동식물이 기거하고 있는 곳이었다. 안내인은 말했다. 제주의 모든 생명들이 이 분화구 안에서 산다고.
2코스는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우리의 걸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리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었던 길은 한 시간 반을 훌쩍 흐르게 했다. 3코스는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다. 그 길은 다음으로 미루고 점심시간이 많이 지나 있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명패를 오름 관리인에서 넘기고 거문 오름의 찾음을 마쳤다.
거문 오름은 역시 이름다웠다. 가치가 있었고 멋이 있었다. 역사가 있었고 생명도 있었다. 다시 들러야 하겠다고 여기면서 돌아 나온 거문 오름은 마음에 많은 영상이 되었다. 그 영상들은 민들레 씨앗처럼 되어 내 가슴에서 사람들의 가슴으로 날아가 정착할 것이라 여겨진다. 분화구를 세척해 생명이 깃들게 한 버슷처럼 내 마음을 세척해 주는 기꺼운 견문이 되었다. 아마 그 이름을 호명할 날이 다시 있지 않으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