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만들어준 새로운 삶,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처음 올 때는 한 달, 반 년 등으로 생각을 했고, 그렇게 급하게 제주의 모든 것들을 만나려 했다. 올레길을 나날이 걷고, 바다를 나날이 만났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뜨겁게 흘렀고, 여름이 오면서 가을도 왔다. 귤이 노랗게 익어가는 시간이 되면서 제주가 눈에 익숙하게 다가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기약 없이 흐르고 나의 기약의 뭍을 다시 찾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차도 제주로 가져왔다. 뭍에 나가도 동력이 떨어지니 집지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차츰 제주의 오름과 곶자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차가운 바람도 오름을 찾는, 곶자왈을 만나는 내 마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따라비를 만났다. 이승학을 찾았다. 민 오름도 거기 있었다. 곶자왈이 많은 안덕도 자주 갔다. 서우봉은 몇 번이나 머물면서 여러 숲길을 걸었다. 용눈이 오름, 다랑쉬 오름, 저지 오름, 병곳 오름, 백약이 오름 등은 오름의 백이 격이었다. 영주산, 송악산 등도 무척 좋았다. 그렇게 하늘과 가까이 가면서 기꺼운 시간들이 흘렀다.
이제는 제주와 더불어 생활한 시간도 꽤 흘렀다. 바쁘게 하지 않아도 제주는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 요즘 자주 가는 곳은 신천 목장, 성읍 마을, 남조로의 여러 공간들, 일출봉 등이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자주 찾는다. 차가 걸음이 되어 시간도 단축하면서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소학행의 삶을 살고 있다.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머물면서 제주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대화는 내면으로 성숙되면 아마 물리적으로 관계나 끝이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은 아니다. 봄의 고사리도 다시 만나야 하고, 겨울의 밀감을 현장에서 더 많이 먹어야 한다. 곳곳의 먹거리를 찾아서 제주의 맛을 기억해야 하고 인심과 바람을 통해 제주의 역사를 찾아야 한다. 그들이 모두 내면에 익숙함으로 잉태될 때 네 차가 뭍으로 나를 데려다 놓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 시간은 몰라보게 흐르는 듯하다.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여름이 오면서 폭염과 폭우라고 놀라운 소식을 전하던 것이 어제인 듯한데 벌써 가을의 전량사들이 우리 곁을 찾는 듯하다. 곤충들이 주변에 머물고 조석의 바람이 얼굴에 입맞춤한다. 놀라운 자연의 섭리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지난 시간을 찾게 만든다.
대단한 세상을 만나면서 내 제주의 생활도 영글어 간다. 제주가 내게 다가와 인생의 빛나는 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이제는 기억으로만도 남은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도록 될 것 같다. 이런 가운데 머물러 있는 표선의 한자리는 내 제주의 정점이 되고 있다. 여기서 해비치를 만나며, 목장과 어울린 바다를 만나고. 번영로를 달리면서 기억의 장을 넓히고 있다. 감사한 제주의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