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이라는 용어가 그 세력을 많이 상실한 시간에 살고 있다. 극한 호우, 극한 더위 등의 용어가 우리 주변에 남발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전에 쉽게 불 수 없었던 비, 더위 등이 우리들의 마음을 옥 쬐어 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용어가 주변 위험성도 잘 감지하고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극한이라고 하면 무슨 일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쉽게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었다. 지금 그 용어의 의미가 조금 더 많이의 뜻으로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경우일까?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다가온다. 용어 사용이 조금 더 섬세하게 이루어졌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의 기우이리라.
요즘 재해 문자가 너무 많이 온다. 그렇게 많이 받다 보면 타성에 젖는다. 그만큼 세상이 어지럽고 우발적인 일이 많이 일어나는 때라고 하지만 나날이 받는 문자는 식상하게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어련히 그런 것이거니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정말 위험한 경우도 많은데 말이다.
모든 일에 경중이 가려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최상의 의미를 가지는 용어들은 분별해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우리는 강조를 위해서 그들을 너무도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용어가 자꾸만 그 힘을 잃어가는 시대에 생각이 많다. 오늘도 우린 극한이란 말에 우리를 가두고 있다.
세상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개인적인 일일 경우는 더 하다. 긍정의 생각을 가지고, 선의로 모든 것을 보며, 웃음으로 살아간다면 주어지는 모든 상황들이 극한에서 조금 물러나 있지 않을까?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 말을 유효하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은 극한이란 말이 주변에서 조금 멀어져 있게 할 것이다.
극한 폭우, 극한 푹염의 시간들 속에, 우리의 삶이 극한으로 치닫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조금만 더 주변을 넓게 보자. 그리고 조금만 더 참자. 그러면 시원한 바람도 더러는 불어와 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