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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토 Oct 16. 2021

텃세

엄마 우리 학교 애들은 이상해. 그룹을 만들어서 놀아. 나는 아직 그룹에 못 들어갔어.


둘째 아들이 말했다. 학교 동갑 한국 아이 중에 둘째를 따돌리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있다. 중상모략을 기획하고 시행하는 꼴이 10살 아이라고 믿을 수 없는 수준이라 참 보기가 싫다. 그 아이 때문에 우리 아이는 아직 친한 친구가 없다. 밥도 혼자 먹다시피 하는 거 같았다. 나는 "그룹을 만들어서 자기들끼리만 몰려다니는 건 조무래기들이나 하는 짓이야"라고 말해줬다. 뱃속이 썩는 거 같았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같은 동네에서 자랐다. 늘 터줏대감 역할이었다. 고정된 친구들이 있었고, 어디를 가도 친한 아이들이 있었다.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우리 아이들은 목소리가 컸다.


반면 나는 초등학교 때 무수히 전학을 다녔다. 길게 살아야 2년이었다. 어딘가 뿌리내리기엔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래도 사람은 어딘가 던져놓으면 거기에 맞춰서 살아야 할 수밖에 없다. 눈치껏 친구를 찾았는데, 이미 너무 많은 친구가 있는 아이는 내 친구가 될 수 없었고 주변부 아이들 중에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를 찾아서 놀았다. 그나마도 그런 아이 중에도 나를 배척하는 아이가 있으면 다시 다른 친구를 찾아야 했다. 피곤하고 즐겁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미 너무 많은 친구가 있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부러워했었는데, 내 아이들이 그런 존재가 된 것이 흡족했다.


그러고 보면 여기 오기 전에 회사생활도 퍽 수월했다. 한 번은 통계를 내야 해서 전 직원 명단을 들여다보며 일일이 분류를 하는데, 이름을 보니 누가 누군지 다 알겠는 것이 우스웠다. 크지 않은 회사에 15년을 다니다 보니까 선배 후배 임원까지 다 아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지인들과 일을 하니 어려울 게 없지.


그러고 보면 내가 착각을 했던 부분이 하나 있다. 세상에는 그저 다른 거 없이 시간만을 쌓아서 만든 자원이 있다. 내가 부러워했던 친구 많은 친구들이나, 터줏대감이던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그것은 노력이나 고통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자본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치롭다고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한국 학부모 모임에서 프랑스 적응의 어려움에 대하여 이야기가 나오니,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더라고요,라고 여기 우리보다 일 년 정도 먼저 온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럴까요,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의 아들도 저 나쁜 아이에게 일 년 전에 왔을 때 같은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 아이에게는 상처가 컸다는데,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 보이긴 했다. 텃세를 부리는 건 자기가 확보한 자원을 인지하고 나눠주고 싶지 않아 발버둥일 치는 것일 텐데,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니까 결국 어리석고 측은한 행동일 것이다. 그래도 속이 상한데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저녁으로 아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해주었다.(여긴 떡볶이가 귀한 음식이다.) 어쨌든 잘 자라던 뿌리를 뽑아서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 게 힘들기는 하다. 더 크게 자라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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