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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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출가 전 정리해야 할 게 많지 않았다. 나라와 나라를 옮기는 이사를 4차례나 해낸 상황이었고, 그동안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며 물건을 채우는 것이 아닌 비우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정리하기 차마 힘들었던 것은 USB에 저장된 사진들과 내가 그린 그림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확고부동의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삭제 버튼을 짜릿한 쾌감으로 클릭했다.
분명 인생에서 큰 결정이긴 했는데, ‘어랏, 이 기분 왠지 낯설지만 않잖아.’
<까칠한 채식주의자의 풍성한 식탁>은 학부 졸업 후 도시의 소비문화에 회의를 느끼고 시골로 이사해 블로그에 그 이야기를 담으며 쓰게 된 나의 첫 책이다.
그동안의 무분별한 소비 생활을 저열하게 느끼고 까다롭게 먹고 입어 정신을 고양 시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삶에 불만족하고 있었다.
새로운 각도에서 삶을 바라보려 시도했지만 나의 욕망의 패턴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단지 물건에 두는 가치의 차이였을 뿐, 삶의 질을 있음과 없음으로 나누고 나름의 기준에 만족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았다.
“더” 만족스러운 “슬로우라이프”에 대한 환상을 좇아 태국의 치앙마이로 이사를 했다. 생활비가 적게들어 번역 일로 금전적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 할 수 있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을 얻어 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할 수 있었다.
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여러 이민자로 인해 다양한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태국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3년의 생활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다시 떠난다.
이번엔 단순히 소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보다 문화적인 미니멀라이프를 갈망했다. 마음 한켠에 지워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적으로 주변 조건에 집착하며 공허함을 잊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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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배낭여행은 삶의 방향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소비 위주의 세상을 새로운 각도로 마주하게 하는 기회였다. 배낭을 메고 만난 여행자들 속에서 처음으로 정신적인 삶을 예찬하는 목소리를 만나며 그동안 교육되어온 사회적 잣대에 대해 막연히 품던 의심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10년, 한편으로 삶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을 나름 세우고 있지만 여러 시행착오 안에 있었다. 채우는데 치중하는 사회에서 눈을 돌린,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 사는 ’미니멀라이프’를 나의 삶에도 큰 모토로 삼고 있었지만 삶에서 겪는 각종 풍파의 공허함을 견디지는 못했다. 관계 속에서 흔들리고, 내안에 끊임없는 욕망과 싸우고 있었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처절히 실패하고 시작한 행자생활은 간소한 삶을 영위하는 목적 역시 행복이라면, 간소한 삶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절제를 통해 더 큰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절제를 통해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 -신념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념을 순간순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기.
생활의 모습을 거듭 바꾸며 행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서 집착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너머의 만족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걸 막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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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 몸과 마음을 단순하게 하는 것은
감각을 통한 거짓 관념에 속지 않기 위해 욕망을 절제하는 일,
심리 내면의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일,
자신의 무지를 알아차리고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