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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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와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던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부모님이었다. 유별난 구석이 있고 그것을 늘 자신만만해했기에 기대를 많이 했었던 첫째 딸. 10년이 넘게 유학 생활을 하면서 돈도 엄청나게 썼었다.
그 사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하셨고,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해변가 식당 지배인이 되어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식당 이층에 살 게 되었다. 아버지는 30대 딸의 병원비를 내주고, 월경이 멈춰 상담을 받아주고, 입원을 하면 필요하다는 책과 먹고 싶다는 음식을 가져다주려고 식당 일이 끝나고 1시간 거리를 달려와 주었다.
퇴원 후에는 같은 방을 쓰며 잠을 못자면 같이 밤 산책을 해주고, 도서관에 데려다주고, 불안증세로 몸에 마비가 오면 응급실에 데려갔다. 어느 날 밤은 다이제스티브가 먹고 싶다고 말하자 쿠팡에서 한 상자를 주문해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함께 지낸 그 식당 2층 방에서 아버지는... 일요일 밤 혼자, 아마도, 잠을 자다가. 식당은 모두 놀라고 아버지네 식구들은 억울해했다. 어머니는 병원을 가지 못한 걸 몹시 안타까워했다. 나는 아버지의 표정이 궁금했다. 스페인에 잠시 나가 있는 동생에게는 알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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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일요일 새벽이었다. 나는 행자 생활을 마치고 먹물 옷으로 갈아 입고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절로 들어간 이후 실로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서울 생활을 견디지 못해 은사스님의 허락을 받고 잠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었다. 어머니는 놀란 가슴으로 한걸음에 달려오며 아버지에게 연락을하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급체로 아파서 주말이라 바쁜 식당 일도 뒤로하고 2층 방에 누워있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전화를 했을 땐 혀가 꼬일 정도로 아파서 통화를 길게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저러다 죽는 거 아니냐.”라고 몇 번이고 웅얼거렸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일을 나간 지 삼십 분도 안되 돌아왔다. 가족 연락처가 없어 돌아돌아 아버지 친구로부터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우리는 급하게 식당으로 달려갔다.
두 시간쯤 걸려 도착한 식당에 아버지는 없었다. 밥을 챙겨주던 주방 이모님과 그사이 늘어난 식구들이 지난밤 11시까지도 아버지가 괜찮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모님은 그날 낮에 죽을 챙겨 주며 얼굴을 보았고, 새로운 삼촌은 저녁 고혈압약과 소화제를 올려다 주고 퇴근을 하며 카운터 마감 때문에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한다. 방에는 그 흔적들과 평소와 같이 담배 보르며 영양제, 라면이 쌓여 있었다. 침대 근처로 틀니가 던져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