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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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왔지만 일상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SD 스님 절에서 지내면서 유트브로 초기불교 강의를 듣기 시작했었다. 초기불교 수행을 할 수 있는 비구니 절로 다시 출가를 위해 찾아가기로 한다.
처음 출가를 할 때처럼 맨몸으로 당장 갈아입을 속옷과 옷 한 벌을 챙겨갔다. 절의 어른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일을 말씀드렸다.
당시만 해도 앞으로 스님 생활을 하기 위해 다른 여러 스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서울과 SD 스님 절에서 나오게 된 정확한 이유를 말씀드리지 않았다. 단지 나의 선택들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워낙 좁은 비구니 세계에서 가능하지도 않단걸 알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말씀을 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였다. SD 스님께서 나의 첫 은사스님이 비구니계에 큰 어른 스님이라 자신의 도움 외에 다른 누군가 선뜻 받아주기 어려울 거라 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걱정과 달리 이곳 스님은 그 자리에서 잘 찾아왔노라고 나를 제자로 맞아 주셨다. 그렇지만 함께 듣고 있던 스님의 제자들이 이곳 스님들은 모두 나의 첫 은사 스님이 있는 절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나를 받아주면 어떻게 하냐고 당황스러워했다. 환영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큰 형님은(첫 번째 제자는) 삭발식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 후로도 눈 한번 제대로 맞추어주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이 어색했고 긴장되었다. 한 테이블에서 먹는 밥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화장실에 일주일 동안 가지 못해 관장을 할 지경이 되었고, 창고에 짐을 가지러 가거나 샤워를 하게 되어 혼자가 되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부터 처음으로 느낀 냉대를 기억한다. 하지만 이 모욕은 그것과는 비교과 되지 않는 수치감을 더하고 있었다.
저녁마다 식구가 모두 모여 가족회의를 했다. “A형이 아니냐? 밥을 잘 안 먹으니깐 화장실에 못 가지.”
절의 어른 스님께서 안부를 묻고 챙겨 주시면 큰형님의 핀잔이 돌아왔다. 물론 큰 형님에게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챙길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유일하게 당부한 말은 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뜬금없이 눈을 마주치고 방긋 웃으며 일이 힘들면 언제든지 장기수행자로 지내며 일을 도와주고 있는 한 남자 수행자 방으로 가서 도움을 부탁하라고 말했다.
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불교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는 초기불교의 가르침이 합리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국내 불교 내부의 고지식한 패러다임의 혁명으로 느껴졌다. 그동안 힘든 시간 속에서 이곳 어른 스님의 법문이 더욱 깊이 다가왔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곳에서 지내며 내가 느낀 내부사정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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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어와 있던 행자는 큰 형님과 사이가 좋았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동갑에 외국에 살았었고, 미술계 전공을 하였으며, 학생들을 가르쳤던 등 공통점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것이 우리의 관계에 그리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지는 않다. 종종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시했다.
자신이 재가자로 오랫동안 이곳을 다니며 가족 재사를 올려왔고, 지금도 부모님이 종종 다녀가며, 출가를 할 때도 재산의 일부를 가지고 들어왔다고 물어보지 않은 말들을 시도 때도 없이 재잘거렸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건 그녀가 심지어 셋째 형님에게 면박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는 빵을 굽는 장기 수행자가 점심에 치아바타를 만들었다.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남아 있는 빵을 셋째 형님이 우리 테이블로 가져다주어 각자 하나씩 그릇에 옮겨 담는데… 큰 형님이 굳어진 표정으로 내 빵을 홱 뺏어간다.
속가 가족이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분들 걸 따로 챙기지 않았나 보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이야 당연하지만 나에게만 닥친 급작스럽고 거친 손길에 많이 놀랐다.
눈물이 흐를까 봐 남은 밥을 억지로 쑤셔 넣고 화장실로 달려가 한참을 쭈그려 앉아있었다. 방으로 돌아가자 같이 방을 나누어쓰는 행자가 눈을 마주치고 씽긋 웃으며 뜬금없는 이렇게 말한다. “점심 맛있게 먹었어요? 나는 빵을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 배가 너무 부르네.”
에휴- 행자는 얄밉기도 했지만 사실 코믹한 인물이긴 했다. 사실 내가 출가를 하고 스님들과 겪은 갈등들 대부분 분명하게 어떤 잘못이라고 말하기 미묘한 문제라 시시콜콜 말할 수가 없는데 이 행자에 대해서는 실컷 말하고 웃을 수 있다.
“나는 먹는 거 안 좋아해,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내가 원래 강사였잖아, 내가 요가를 오랫동안 했거든, 사는 게 힘든 게 뭔지 잘 몰라서, 그 형님 속가 집은 원래 가난해서 그런거야, ”라고 말하는 그녀.
정말? 그녀는 나보다 한 뼘이나 작은 키에 몸은 두 배나 컸고, 평소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옆에서 음식을 허겁지겁 입에 넣고 있질 않나, 틈만 나면 드러누워 코를 골았다.
자신이 타박을 준 셋째 형님의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며 큰 형님에게 쪼르륵 달려가고, 재활용 수거를 위해 들른 아저씨들에게 음료수를 드리며 말동무를 해드리고 있으면 자신은 뜬금없이 눈을 감고 자연을 만끽하질 않나.
여러모로 큰 착각 속에 빠져있었다. 나는 정말 상관하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사르트르가 <닫힌 방>이란 책에서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라고 했다는데 아주, 매우, 몹시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