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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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49재를 못다 지내고 나는 다시 절로 돌아갔었다. 삭발을 하고 승복을 입고 어머니 집에서 지내자 내가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인연이 이미 있었던 SD 스님에게 승가대학이 아닌 서울의 암자로 보내지며 은사 스님과 심화된 갈등을 설명하고 그사이 일어난 아버지의 죽음을 말씀드리자 자신의 절로 불러주었다.
스님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생에 겪어보지 못한 갖은 천한 대우 속으로 굴러 들어간다. 발가벗긴 채 세상으로 던져졌다고 할까?
SD 스님은 일단 내가 10년 유학 생활을 하고 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너는 외국인이니깐’라고 결과 지었다. 그리고 승적 유지를 위해 종단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부탁하기 위해 나와 같은 날 절로 들어와서 함께 머물게 된 C 스님은 몇십 년째 ’빙의’ 증상을 겪고 있다고 했다. 정말로 외부의 또 다른 영혼이 옮겨붙었는지 나로서는 확인할 바가 없었지만 잠깐 사이에도 다양한 성격을 드러내었던 건 맞다. 믿거나 말거나, 10명이 넘는 잡귀가 달라붙어 있다고 한다.
C 스님은 SD 스님 주도하에 나의 염불 강의 담당이었는데, 머리를 쓰다듬으며 과자봉지를 건네다가 염불을 외우고 있지 않았다고 호통을 치고, 예불을 함께 끝내고 절을 하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며 손바닥이 완전히 평평하게 펴지지 않았다고 같은 절을 반복해서 수십번을 시키지 않나… 듣기만 하던 시집살이라던가 군대에서 겪을법한 독재자형 일방적 횡포가 난무했다.
게다가 독방을 쓰기는 했지만 기침 소리까지 들리는 칸막이 건물이었고, 스님은 심심해지면 툇마루에 걸터앉아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오징어를 씹으며 맥주 캔을 땄다.
C 스님은 SD 스님과도 문제가 많았다. SD 스님은 히스테리적이라 독설을 일삼았고, C 스님은 C 스님 나름대로 말썽을 부렸다.
SD 스님이 C 스님에게 법당에서 하는 염불부터 자신은 젓가락만 얹는 요리와 심지어 상차림에까지 얄미운 소리를 하는 사이, C 스님은 SD 스님이 외출만 하면 SD 스님 방을 들락거리고 목조건물 방에서 촛불을 킨다든지, 보일러실을 들락거리며 밸브를 조작했다. 조용한 날이 없었다.
어느 날 밥을 차리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로 둘은 언성을 높였고 결국 C 스님이 절을 떠나게 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담사 스님이 차린 밥상에 투덜거리자 화가 난 C 스님이 눈물까지 흘리며 당장에 택시를 불러 떠났다.
그리고 SD 스님의 화풀이 상대는 내가 되었다. 실은 C 스님과도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다. 절에 처음 왔을 때 코로나로 오갈 데가 없어 잠시 머무는 B 스님이 있었다. 다니고 있는 대학 기숙사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매일 SD 스님과 C 스님으로부터 차리던 밥상에 대한 불평과 염불, 스님 간의 예의 등에 잔소리를 듣다가 들어온 지 2주가 조금 넘어 거의 쫓겨 나가다시피 나가게 되었다. 이때까진 SD 스님과 C 스님은 의견을 모았었다. 그 일을 뒤로하고 SD 스님과 나, 단둘이 지내게 된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들이 떠나며 그분들이 하던 대로 내가 법당에 들어가고 상을 차렸다. 그것도 모자라 당시 행자로 있었던 건 아니지만 스님도 재가자도 아닌 어중간한 신분으로 있으며 잡일에 대한 눈치까지 받아야 했다. 나는 아침 설거지를 마치면 걸레질이나 거미줄을 걷어내는 간단한 일은 자발적으로 했지만 잡초가 너무 자랐다는 말에 나서지 않았다. 나머지 시간에는 방에서 염불을 외우고 법문을 들었다.
SD 스님은 새로 안치되는 불상에 들어가는 사경을 급하게 끝내야 한다고 밤낮이 바뀌어 지냈다. 평소보다 더 예민해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스님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물었고 나는 그 지루한 이야기를 최대한 짧게 간추려 간단하게 말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었다기보다는 당장에 겪고 있는 서러움이 북받치는 걸 느꼈다. 스님의 시시콜콜한 잔소리에 정신이 너덜너덜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굵은 눈물 3~4방울이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러자 시작된 스님의 독설.
“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눈물 흘릴 자격 없어.” 스님의 “조카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어. 그 아이의 설움이라면 몰라도 너는 울 자격이 없어.” 그렇지, 내 눈에도 비구니가 눈물을 훌쩍이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담사 스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위를 제대로 설명하기도 전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아버지 재사를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못지냈다는거지? 천도는 해드려야지~”
우리 가족은 이미 다른 절에서 기본재를 마쳤고 더이상 다른 재를 지낼 생각이 없었다. 또 당시 나의 입장에서 돈이 얼마나 들지 모르는 천도재를 해달라고 어머니에게 상의해보는 것 자체가 곤란했다. 나는 그냥 몸 둘 바를 몰랐고 스님은 매사 화가 나 있었다.
단둘이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으며 차린 밥에 대한 이런저런 자신의 평가 말고도 젓갈 냄새가 심해 손을 못 대던 김치를 먹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고, 채식을 했었다고 말하고 난 뒤에도 무언으로 강요되는 동물성 음식들, 어느 날은 뜬금없이 마늘과 양파를 먹는 게 어떻게 채식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지 않나 (보통 절에서는 오신채를 먹지 않는다). 내가 눈에 가시거리가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 또한 스님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을 낼 수가 없었다. 인간적으로 마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씀드렸다.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 며칠 더 머물고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마음으로 도저히 부처님 오신 날 이어질 노동을 자발적으로 해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걸 감수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스님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떻게 자신이 환속 과정을 도와주었는데 그럴 수 있는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한 사람이라도 출가자를 더 만드는 것이 의무인 자신의 입장이 무엇이 되겠냐고 나에게(?) 따졌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 모두 나의 선택이었고, 재 출가를 할 생각이 있다고 안심 시켜 드렸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은사 스님에게 이미 말을 해두었으니 자신이 그 절로 너를 꼭 데려다주어야겠다는 것.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출가를 안 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스님으로서의 책임이 아니라고 자신의 불안한 입장을 옹호했다.
사실 C 스님을 내쫓은 (쫓아냈다고 표현하더라) 이유도 나 때문이었다고,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냐”며 화를 참지 못했다. 얼굴을 잔뜩 구기며 목소리를 높이는 스님에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러 질문을 던지기는 했지만 정확히 나에게 질문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밤 9시가 되어가는 시간 스님은 당장에 나가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알았다고 하자 이번엔 어머니에게 연락하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심장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기분으로 3시간이 넘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왔다. 올라가는 길 휴게소에서 어머니가 사주시는 음료수를 마시며 나도 그제야 분통을 터뜨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