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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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했던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견뎌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의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절의 어른 스님이 첫 은사스님께서 나를 서울로 보낸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거 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이곳이 아니라면 더는 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나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다. 스님들께는 그동안 힘들었던 일을 뒤로하고 이곳에 올 수 있게 되어 감동의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에두를 수 있었지만 알면서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장기수행자들에게 받는 위로는 피할 길이 없었다. 안타까워하며 소소한 보살핌을 주었다.
근데 그럼 그것 때문에 또 면박을 받고…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보고 싶은데 힘든 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중 주소 이전에 대한 말이 나왔다. 나는 망설이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주소를 옮기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마음속으로 더이상 출가생활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런 불환대 속에서 내가 이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정말 나를 낮추고 열심히 한다면 인정을 받을 수도 있고 관계의 힘든 상황을 호전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겪어온 일련의 일들을 비추어 보아 그 관계의 맹목성은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특히 비구가 아닌 비구니의 신분으로 시대착오적인 굴레를 벗어나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동시에 재출가를 허락해주신 어른 스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당장에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떠나더라도 어떻게든 행자생활은 마치겠다고 다짐했다.
또 꼭 스님이 되지 않더라도 어른 스님의 가르침 아래에서 6개월을 보내고 나면 나에게도 얻을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마다 막연하던 생각들이 뚜렷한 형체를 지니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처한 상황들로 자존감이 매우 떨어져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내 안의 착각들이 하나씩 깨져가고 세상이 내가 바라보는 대로 빚어지는 걸 절실히 느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큰 형님이 처음으로 제대로 눈을 맞추고 이유를 물어왔다. 눈물이 흘렀다. 그렇다고 마음속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어느새 방으로 들어가 짐을 싸고 있었다. 대화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나는 출가를 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해버린 것이다.
재가자로 수행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그렇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쳤다.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짐을 싸고 그 누구와 인사 없이 절 밖을 나와야만 했다.
깊은 산골이라 버스정류장까지도 꽤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마침 어른 스님의 외출 길에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힘겹게 참아온 눈물을 쏟았다.
눈치를 보느라 목구멍으로 넘긴 설움을 토해냈다. 멈추지 않는 눈물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온갖 설움이 뒤섞여 있었다.
큰 형님이 잠시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어른 스님과 단둘이되자 엉엉 우는 나에게 무엇이 그렇게 슬픈지 물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행자야, 그냥 우리랑 여기서 살자.”
나는 대답 할 수 없었다. 단지 침을 삼키기 조차 어렵게 눈물이 흐를 뿐이었다.
큰 형님이 진흙에 바퀴 자국을 선명히 만들며 차를 몰고 왔다. 먹물 옷 입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던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