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의 이야기>
•
그렇게 기나긴 1년이 지나갔던 것이다. 나는 실패와 불행으로 낙담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해보고 싶은 건 모두 해본 것 같다. 더는 딱히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그것이 인생을 포기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글을 쓰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게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여전히 후회와 걱정 속에서 허우적 되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역시 틀리지 않다.
어머니 집으로 돌아와 한시간 거리의 서점에 매일 걸어가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무엇보다 이 상황을 각자의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미안했고, 어찌 되었건 나로 인해 원하지 않는 상황을 겪은 스님들에게 미안했다.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아버지의 죽음과 미련이 남지 않도록 도운 스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여기까지란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이 시간 동안 당시에 화가 났던 기분이 풀려갔던 것이다. 텅 빈 몸과 마음으로 길을 걸으며 자연히 부드럽고 따뜻한 것들에 마음을 쓸 수 있었다.
•
몸과 마음이 안락을 찾자 다시 절에서 눈치밥을 먹으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승복을 벗고 입은 옷은 어색하게만 느껴졌고, 집에서 역시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삭발을 했고 틈이 나는 대로 유트브로 불교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초기불교를 가르치는 곳으로 알려진 한 선원을 수행자로 찾게 되었다.
선원에서 하루는 5시에 시작된다. 선방에 모두 모여 죽비에 맞추어 삼배를 하고 1시간 동안 좌선을 한다.
좌선이 끝나면 아침을 먹고 운력을 한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선방에 올라가 2시간 동안 좌선을 한다.
사시예불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면 운력을 하고 다시 선방에 올라가거나 자유시간을 갖는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다시 선방에 모여 죽비에 맞추어 삼배를 하고 2시간 동안 좌선을 한다. 그리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친다.
매주 수요일은 법회날로 마침 선원장스님의 책 출간과 이와 연관된 법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평소에도 오후 자유시간을 이용해 선원장스님의 법문을 유트브를 통해 들었다.
하루 5시간 이상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목적으로 있으며 단순한 노동 외에 생계에 대한 쫓김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동시에 오후 자유시간을 통해 지적 갈망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도 있었다. 법문을 듣고 번역을 하며 그 의미들을 되새기고 일기를 썼다.
그렇다고 해서 한순간에 그동안의 고민이 없었진 건 아니지만 고요해지는 마음으로 고통 속의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서 먼저 숨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지켜본다.
번뇌가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 역시 욕심이라고 한다. 단지 일어나는 생각들이 무엇인지 알아차린다.
생각들은 크게 욕망과 화, 어리석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욕망과 화는 어리석음이 바탕이 된다. 먼저 생각이 일어나면 욕망인지 화인지 구분하며 알아차린다.
계획을 세우거나 즐거운 일을 떠올리는 것 등은 욕망이고, 후회하고 슬퍼하며 안타까워하는 것 등은 화이다.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나면 그 감정에 빠져있지 않고 객관화 시켜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기 쉬워진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면 들어가고 나가는 숨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한다. 꼭 앉아서 할 필요는 없는데 걷기 명상을 하면서 행위에 집중하여도 좋다.
운력을 할 때는 몸의 움직임 그 자체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처음부터 잘 될 수는 없었지만 생각에 빠져있지 않으려고 알아차림을 하겠다는 의지를 계속해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선원장스님의 법문을 계속해 들었던 이유도 같다. 단지 명상으로 정신의 집중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명상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스님은 책을 통해 괴로움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괴로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안내해 준다. 다시 말해 책은 괴로움의 특성을 체계적으로 알아가는 시간이되어 주었다.
영원하지 않고 주인이 없는 것에 습관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