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의 이야기>
‘나’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배려는 도와주는 마음을 ‘씀’이지만 하심은 내려놓는 마음이다. 바깥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단속해야 한다.
절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기 위한 행자생활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하심을 배운다. 이름도 없이 단순노동만 하고 묵언 한다. 내세울 것이 없는 본질의 상태로 돌아가 최대한 투명해질 수 있도록 비우는 시간이다. 승가라는 공동체에 일부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정화과정일 수도 있겠다.
몸이 쑤시도록 일을 하며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뉘우친다. 선업을 쌓는 시간이라고 한다. 온몸이 힘들어서 흘리는 눈물이 어느새 마음 속 응어리를 깨닫고 깊이 뉘우치는 참회의 눈물이 되어있다. 육체적 고통이 내안의 이기심뿐 아니라 자만까지 너덜너덜 하게한다.
입을 다무는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이다. 그동안의 나를 잠시 쉬고 밖으로 귀 기울인다. 내안의 비교하고, 남보다 잘나고 싶은 마음, 결국 남을 업신여기는 들뜬 마음을 알아차리고 외부에 경청하는 것이다. 분별없이 이루어지는 깊은 합일에 감사한다.
참회와 함께 감사하는 마음이 깊이부터 일어나면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존중까지 할 수 있을 것이고, 일체의 생명체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마음이 일어날것 같다. 얼핏 바람결에 그런 마음을 내어 본 것도 같다. 담구어본 하심의 깊이는 곧 깨달음이고, 자애의 뿌리였다.
하심이란 단순한 진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만, 실로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깨고 자신을 버리는 일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까. 이해하였다고, 절제한다고 하지만 매번 크나큰 착각이었단걸 뒤늦게 깨닫는다. 순간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 아니라 불만족 없이 진심으로 자신을 낮추는 일, 진심의 진심을 내는 일에 침묵은 쉽사리 오만이 되기도 한다. 긴 침묵이 어느새 구실을 대며 무장 중립을 하고 있더라. 하심은 결코 억지로 이루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