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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i Nov 10. 2020

세상에 지키는 예의

예술가 가까이서 바라보기: Sarah Lucas



Sarah Lucas, 런던에 위치한 작가의 집에서 -그녀 작품 특유의 성격을 대변하는 팬티스타킹에 솜 뭉치를 넣어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다.





어느 찬 바람이 부는 오후 어느 숙련된 예의가 돋보이던 사람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받은 이후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소하고 예민한 배려를 받으며 이타적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함부로 하는 판단과 가벼운 조언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계속해 변하는 상황과는 달리 고정된 언어의 한계 때문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깊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사회에서 은폐되는 것을 들추어내는 “무례함”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미술 작가 Sarah Lucas의 지난 인터뷰를 탐독했다.


그녀에게 작품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을 동요시키는 모호성에 대해 탐색해 보려는 것이었다.” 작품 속 “이미지가 흥을 띄우고 있는가? 불쾌함을 자아내는가? 단지 비극을 나을 뿐인가?”를 고민해 보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글을 쓰는 사람이 언어로 목소리를 내듯 자신만의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 (참고: https://www.nytimes.com/2018/09/05/arts/design/sarah-lucas-new-museum.html)



<Fat, Forty and Flabulous> 1991





<Sex Baby Bed Base> 2000





구체적으로 Lucas의 작품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정립되는 성 상징물을 가지고, 많은 부분 페미니즘의 카테고리 안에서 조사되고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적나라한 이미지를 통한 주제에 대한 직선적인 언급은 관람자에게 충격을 주고 때론 불쾌하게까지 하는데 아주 순수한 태도를 보이면서 세상의 추악함을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은 자신의 인식 안에 잠재된 모습을 작가를 통해 확인하며 긍정과 부정 속에서 유머로 받아들이거나 경멸하게 된다.





<Au Naturel> 1994





그러한 일차적 반응 뒤로 이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관람객은 이미지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기 위해 모호성을 계속해 파헤치며 이미지 속 기호와 상징들이 가르키는 방향에 대해 학습해 나간다.

‘작품이 통념에 혼란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때론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미지들 속에서 대중매체가 선전하는 여성성에 자꾸만 시비를 걸고 있는 것만 같다고 느껴지는데,


결국 Lucas 작품 속 타블로이드 기사 이미지는 풍자되고 있는 여성뿐만 아니라 판단되고 지적되고 기준에 부합되기를 요구되는 모든 여성의 위치를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이 어떻게 폭력과 억압의 부산물인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녀의 작품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시간 속에서 현상세계의 저의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을 대입해보고, 나아가 자신에 의지에 따라 이로운 것은 지키고 해로운 것은 포기해 나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Squab Squaw>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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