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팔수록 왜 망할까? (127)

— 패션에서 75%의 함정

by Jace
매출은 늘었는데, 회사는 망하고 있었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

하지만 대표는 매달 자금 조달 미팅을 뛰어다닌다.

창고는 신상품으로 가득 찼고, 통장은 텅 비어 있다.

이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반복되고 있는

‘흑자 도산’의 전형적인 시작이다.




(Part 01) “20% 더 팔자”는 말이 회사를 망친다


매년 연초, 기획 회의실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작년 100억. 올해 120억 갑시다.”

그 다음은 자동이다.

더 팔기 위해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쌓는다

문제는 이 공식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은 회사가 이 공식으로 망한다.

시즌이 끝날 무렵, 창고 앞에서 같은 말이 나온다.

“왜 이렇게 재고가 남았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팔아서 망한 게 아니라, 만들어서 망했다.


(Part 02) 재고는 ‘자산’이 아니라 ‘묶인 현금’이다


회계상 재고는 자산이다.

하지만 패션에서 재고의 본질은 다르다.


재고는 이미 빠져나간 현금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상태다.


창고에 쌓인 옷은 상품이 아니라

현금이 옷으로 바뀐 채 묶여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장부상 이익과 실제 현금은 다르게 움직인다.

• 영업이익(장부) = 매출 - 팔린 원가 - 판관비
• 영업현금효과(실제) = 매출 - 생산한 원가 - 판관비


패션은 6개월 뒤에 팔릴 옷을 위해 오늘 돈을 쓴다.

즉 팔리기 전에 이미 돈을 지급한다.


예측이 틀리는 순간, 장부에는 이익이 남고
통장에는 현금이 사라진다.

이것이 ‘흑자 도산’의 구조다.




(Part 03) 75% — 생존과 몰락을 가르는 숫자

패션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정상 판매율(Sell-through) 75%.


※ 판매율 = 특정 기간의 (판매총액 ÷ 생산 입고총액)


왜 75%인가?

예를 들어보자.

원가 3만 원 판매가 10만 원

겉보기에는 충분히 남는 구조다.


하지만 정상 판매율이 75%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 할인 판매로 마진이 무너지고
• 남은 재고의 물류·관리 비용이 붙고
• 결국 남은 이익을 전부 잠식한다


이 지점부터는 단순한 수익 감소가 아니다.

손실이 구조적으로 확정되는 구간이다.


정리하면:

75% 이상: 돈을 번다
70% 이하: 벌어도 남지 않는다
60%대 이하: 많이 팔수록 망한다


국내 중소 패션 브랜드 평균은 60~65%.
이미 대부분이 위험 구간 안에서
버티고 있는 셈이다.




(Part 04) 예측하지 말고, 틀린 뒤 빨리 고쳐라

패션 수요는 맞출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디자인, 원단, 컬러, 사이즈, 가격, 채널, 납기, 타이밍, 날씨,

이 변수들이 조합되면 경우의 수는 사실상 무한대다.

게다가 신상품은 데이터도 없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 틀린 질문: 어떻게 정확히 맞출까?
• 맞는 질문: 틀렸을 때 어떻게 덜 망할까?


여기서 더 위험한 것이 있다.

‘할인의 악순환’이다.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면

상시 할인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 순간 소비자는 학습한다.


“정가에 사면 손해다.”
이 한 번의 학습이 브랜드 자산을 무너뜨리고
정상 판매율 75%를 영원히 깨뜨린다.




(Part 05) 살아남는 회사는 ‘구조’를 바꾼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SPA 패션 기업 ZARA의 본질은

디자인이 아니다.

재고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다.

그들은 맞추려 하지 않는다.

대신 보고 움직인다.


모든 회사가 ZARA가 될 수는 없지만,
구조는 누구나 바꿀 수 있다.


핵심은 4가지다.


1. 선생산 축소 (50~60%)

처음부터 다 만들지 않는다.
시즌 초 절반만 생산하면 예측 실패의 피해도 절반이 된다. 나머지 절반은 시장이 결정하게 둔다.


2. 반응 생산(QR) / 리오더 체계

잘 팔리는 상품만 빠르게 추가 생산한다.
이를 위해 국내외 공장과 ‘소량 다회 생산’ 계약을
미리 체결해야 한다.
준비 없이는 반응할 수 없다.


3. SKU 20% 축소

전체 매출의 80%는 상위 20% 아이템에서 나온다.
나머지 80%의 상품이 창고를 채우고, 현금을 묶고,
조직을 소모시킨다.
구색이 아니라 적중률을 올려야 한다.


4. 현금 기준 의사결정

매출이 오를 때 재고도 같이 오르고 있다면,
성장이 아니라 위험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매달 결산에서 볼 숫자는 영업이익이 아니라
재고회전율과 정상판매율, 그리고 영업현금흐름이다.


결론: 패션은 ‘현금흐름 산업’이다


지금 바로 확인해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의 정상 판매율은 몇 % 인가?


많이 팔아서 망하는 게 아니다.

많이 만들어서 망한다.


잘 맞추는 회사가 아니라,
빨리 틀리고 빨리 고치는 회사가 살아남는다.


창고가 가득 차는 순간, 위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한 줄 요약

매출은 허영이고, 이익은 해석이며, 현금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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