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에서 75%의 함정
매출은 늘었는데, 회사는 망하고 있었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
하지만 대표는 매달 자금 조달 미팅을 뛰어다닌다.
창고는 신상품으로 가득 찼고, 통장은 텅 비어 있다.
이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반복되고 있는
‘흑자 도산’의 전형적인 시작이다.
매년 연초, 기획 회의실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작년 100억. 올해 120억 갑시다.”
그 다음은 자동이다.
더 팔기 위해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쌓는다
문제는 이 공식이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은 회사가 이 공식으로 망한다.
시즌이 끝날 무렵, 창고 앞에서 같은 말이 나온다.
“왜 이렇게 재고가 남았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팔아서 망한 게 아니라, 만들어서 망했다.
회계상 재고는 자산이다.
하지만 패션에서 재고의 본질은 다르다.
재고는 이미 빠져나간 현금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상태다.
창고에 쌓인 옷은 상품이 아니라
현금이 옷으로 바뀐 채 묶여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장부상 이익과 실제 현금은 다르게 움직인다.
• 영업이익(장부) = 매출 - 팔린 원가 - 판관비
• 영업현금효과(실제) = 매출 - 생산한 원가 - 판관비
패션은 6개월 뒤에 팔릴 옷을 위해 오늘 돈을 쓴다.
즉 팔리기 전에 이미 돈을 지급한다.
예측이 틀리는 순간, 장부에는 이익이 남고
통장에는 현금이 사라진다.
이것이 ‘흑자 도산’의 구조다.
패션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정상 판매율(Sell-through) 75%.
※ 판매율 = 특정 기간의 (판매총액 ÷ 생산 입고총액)
왜 75%인가?
예를 들어보자.
원가 3만 원 판매가 10만 원
겉보기에는 충분히 남는 구조다.
하지만 정상 판매율이 75%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 할인 판매로 마진이 무너지고
• 남은 재고의 물류·관리 비용이 붙고
• 결국 남은 이익을 전부 잠식한다
이 지점부터는 단순한 수익 감소가 아니다.
손실이 구조적으로 확정되는 구간이다.
정리하면:
75% 이상: 돈을 번다
70% 이하: 벌어도 남지 않는다
60%대 이하: 많이 팔수록 망한다
국내 중소 패션 브랜드 평균은 60~65%.
이미 대부분이 위험 구간 안에서
버티고 있는 셈이다.
패션 수요는 맞출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디자인, 원단, 컬러, 사이즈, 가격, 채널, 납기, 타이밍, 날씨,
이 변수들이 조합되면 경우의 수는 사실상 무한대다.
게다가 신상품은 데이터도 없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 틀린 질문: 어떻게 정확히 맞출까?
• 맞는 질문: 틀렸을 때 어떻게 덜 망할까?
여기서 더 위험한 것이 있다.
‘할인의 악순환’이다.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면
상시 할인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 순간 소비자는 학습한다.
“정가에 사면 손해다.”
이 한 번의 학습이 브랜드 자산을 무너뜨리고
정상 판매율 75%를 영원히 깨뜨린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SPA 패션 기업 ZARA의 본질은
디자인이 아니다.
재고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다.
그들은 맞추려 하지 않는다.
대신 보고 움직인다.
모든 회사가 ZARA가 될 수는 없지만,
구조는 누구나 바꿀 수 있다.
핵심은 4가지다.
1. 선생산 축소 (50~60%)
처음부터 다 만들지 않는다.
시즌 초 절반만 생산하면 예측 실패의 피해도 절반이 된다. 나머지 절반은 시장이 결정하게 둔다.
2. 반응 생산(QR) / 리오더 체계
잘 팔리는 상품만 빠르게 추가 생산한다.
이를 위해 국내외 공장과 ‘소량 다회 생산’ 계약을
미리 체결해야 한다.
준비 없이는 반응할 수 없다.
3. SKU 20% 축소
전체 매출의 80%는 상위 20% 아이템에서 나온다.
나머지 80%의 상품이 창고를 채우고, 현금을 묶고,
조직을 소모시킨다.
구색이 아니라 적중률을 올려야 한다.
4. 현금 기준 의사결정
매출이 오를 때 재고도 같이 오르고 있다면,
성장이 아니라 위험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매달 결산에서 볼 숫자는 영업이익이 아니라
재고회전율과 정상판매율, 그리고 영업현금흐름이다.
지금 바로 확인해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의 정상 판매율은 몇 % 인가?
많이 팔아서 망하는 게 아니다.
많이 만들어서 망한다.
잘 맞추는 회사가 아니라,
빨리 틀리고 빨리 고치는 회사가 살아남는다.
창고가 가득 차는 순간, 위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매출은 허영이고, 이익은 해석이며, 현금은 현실이다.
#많이팔수록망한다 #정상판매율 #75퍼센트의법칙
#현금이왕이다 #재고는묶인현금이다 #패션업의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