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번째 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요즘 들어 유난히 오래된 말들이 자주 떠오른다.
뉴스를 보다가, 문득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가
생각났고
그 기억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할아버지였던
증조할아버지의 유언으로 이어졌다.
증조할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사신 분이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한학을 익히셨고
무엇보다 삶을 통해 얻은 감각과 판단력이
유난히 또렷했던 분이라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그분이 남긴 말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도,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손들은
정치나 당파에 발을 담그지 마라.
남에게 받은 부조금은 모두 빚이다.
당대에 못 갚으면,
후대에서라도 반드시 갚아라.”
어릴 때는 이 말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그저 조심하라는 옛사람의 말쯤으로
흘려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사람을 만나고,
관계 속에서 선택의 갈림길을 몇 번 지나오고 나서야
그 말이 왜 그렇게 단호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호의를 받게 된다.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기회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그 순간에는 고맙고 편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호의 뒤에 따라오는
보이지 않는 기대와 부담을 느끼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문득
‘받은 것은 결국 빚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아무 말 없이도 그 기준을 몸으로 알고 있었던
증조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정치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말 역시
야망을 경계하라는 뜻이었을지 모른다.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이익과 편 가르기로 쉽게 뒤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충분히 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분은 아마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말은 짧았고,
여백은 길었다.
많이 배우지 못했던 시골 어른의 말이지만
지금의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대는 달라졌고, 세상은 훨씬 복잡해졌지만
사람을 지탱하는 기준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의 말은 늘 그렇다.
들을 때는 잘 알지 못하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조용히 삶의 한 장면에서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 말들은 훈계도, 충고도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을 건너오며 끝내 붙잡고 있었던
아주 최소한의 기준이었다는 것을.
#어른들의말씀 #기억의조각 #삶의기준 #늦게이해한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