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오너로부터 들은 말 (22)

— ‘너는 내 뜻대로 움직여라’

by Jace

“너는 내 뜻대로 움직여라.”


중견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오너로부터 이런 말을 한 번쯤은 듣게 된다.


그렇다고 정말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이

제대로 된 충성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너의 뜻을 그대로 실행하는 건 복종이다.

하지만 맥락 없는 기계적 복종은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리스크를 남긴다.

그 뜻이 조직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점검하는 건

분명한 책임이다.


진짜 프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오너가 원하는 사람은

Yes-man이 아니다.


오너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내가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상황”이다.


그래서 오래 살아남는 2인자는

결정에는 빠르게 따르되

리스크는 반드시 정리해 전달한다.


반대하지 않는다.

대신 판단의 기준을 제공한다.


오너가 감정적으로 밀어붙일 때

정면 반박은 답이 아니다.

데이터로 밀어붙이는 것도

결국은 또 다른 충돌일 뿐이다.


이럴 땐 이렇게 말한다.


“대표님 방향 이해했습니다.”

“실행 과정에서의 리스크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논리는

주장이 아니라

판단을 돕는 재료로 깔아 두는 것이다.


오너가 틀렸다는 걸

말로 설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질문으로는 가능하다.


“만약 일정이 2개월 정도 지연돼도

같은 결정을 유지하는 게 맞을까요?”

“이 사안을 실패로 정의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로 보시면 될까요?”


사람은

틀렸다고 지적받으면 방어하지만

스스로 말하게 되면

생각을 바꿀 여지를 만든다.


오너를 설득하는 사람은 오래 못 가고,

오너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은 남는다.


“저 사람 없으면 회사가 안 굴러간다.”


이 평가는

성과보다 구조에서 나온다.


문제를 사람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언어로 바꾸고,

대표가 몰라도 되는 일은 걸러내고,

반드시 알아야 할 리스크는

징후 단계에서 올리는 사람.


그래서 오너는

이렇게 말하게 된다.


“저 사람 덕분에

머리가 편하다.”


승계 국면이나

2세 경영이 시작될수록

줄을 잘 서는 사람보다

기준을 지키는 사람이 남는다.


누구의 사람도 아니고

회사의 사람.


시스템을 남기고,

기록을 남기고,

말은 최소화하는 사람.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오너에게는 판단의 재료를 주고

조직에는 움직일 기준을 주며

자신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중견기업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2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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