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 그리고 선택 (33)

by Jace

어제 퇴근길이었다.

신호 대기 중에 문득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됐다.


음력 12월 초.

달은 얇은 손톱처럼 깎여 있었고,

매서운 한파 속에서 달조차 움츠러든 것처럼 보였다.


차가운 어둠 속에서

초승달이 빛났고,

가로등이 빛났고,

신호등이 빛났고,

자동차들의 전조등과 브레이크등이 빛났다.


어둠은 짙었지만

빛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둠은 언제나 빛의 조연이고,

빛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주연이 된다는 생각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의 존재 가치는 더 또렷해진다.


빛과 어둠처럼

서로 상반된 것들조차

세상에서는 늘 묘한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어둠에 움츠러들 것인가.

아니면 빛에 희망을 품을 것인가.

선택은 언제나 내 몫이다.


임진왜란 당시,

칠천량 해전의 패배 이후 조선 수군은 사실상 괴멸 상태에

놓였다.

이순신 장군은 모함으로 파직되어 백의종군했다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했다.


그가 마주한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남아 있던 전선은 고작 열두 척.

다들 이 열두 척 만으로는 더 이상 싸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달랐다.

그는 “아직도 전선이 열두 척이나 남아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침몰해 사라진 전선이 아니라,

남아 있는 전선의 가능성을 선택했다.


그리고 명량해전에서

스물일곱 배가 넘는 왜의 수군을 상대로

기적 같은 대승을 거두었다.


같은 현실을 보고도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물컵에 물이 반쯤 차 있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반 잔밖에 없다”고 말한다.

목이 마른 다른 누군가는

“반 잔이나 남아 있다”고 안도한다.


맨발의 아프리카 원주민을 보고

신발 회사 직원 한 사람은

“희망이 없다”는 출장 보고서를 쓴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모두에게 신발을 신게 할 기회가 있다”며

엄청난 가능성을 출장 보고서에 담는다.


똑같은 상황이다.

다만 무엇을 보느냐,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비관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낙관을 선택한다.


시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사람보다

일단 한 걸음 내딛고,

가능성을 바라보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는 사람에게

조금 더 나은 미래가 있지 않을까.


빛과 희망을 선택하는 순간들이 쌓여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꾸고,

그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내일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