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에 보이는 것들 (48)

— 도시의 뒤편에는 늘 산이 있다

by Jace

잠원동 집에서 역삼동 회사로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도,

그동안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같은 길, 같은 시간, 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도시는 그저 배경에 불과했다.


그러다 최근, 추운 날씨에도 미세먼지 없이

하늘이 유난히 맑았던 날이 있었다.

그날은 달랐다.

도시의 풍경 너머로 언제나 산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빌딩으로 가득 찬 도시의 전경 뒤편에는 늘 산의 능선이

이어져 있었다.

지도에서 방향을 다시 확인해 보니,

강남권에서 북쪽으로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남쪽으로는 대모산과 구룡산이 도시를 감싸듯 자리하고

있었다.

매일 오가던 익숙한 공간이,

그제서야 비로소 ‘지형’ 위에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중·고등학교 시절 지리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떠올랐다.

우리 국토의 약 70%는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서울을 포함해 대부분의 도시는 산으로 둘러싸여

형성되었고, 그 사이를 강이 관통하며 도시의 골격을

만들어 왔다.

높은 빌딩과 촘촘한 도로망 속에서도,

도시는 여전히 산과 강 위에 놓인 지형의 연장선 위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 풍경은 언제나 보였던 것이지만,

맑은 날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하늘이 열리자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산의 윤곽과

강의 흐름이 도시의 배경으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이,

조건이 달라지자 갑자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 둔감해져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문득 보이듯이,

회사 경영 역시 반복되는 사이클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다만 개인의 일상과 달리,

기업의 리스크는 ‘언젠가 보이겠지’ 하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항상 보고 있어야 하고,

놓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냉정한 태도가 필요하다.

맑은 날이 아니어도,

이미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퇴근길의 풍경은 매일 같아 보이지만,

맑은 날이면 문득 고개를 들게 된다.

도시의 뒤편에는 늘 산이 있고,

그 산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되묻는 배경처럼

서 있다.


그 사이로 한강은, 오늘도 도시를 가로질러 말없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