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연 지배구조 속에서 본 권력의 얼굴
※ 특정 사례를 넘어, 지배구조와 권력에 대해 생각해 본
개인적 기록이다.
“권력은 구조를 따르고, 태도는 사람을 남긴다.”
지난 목요일 오후, 내부 보고 자리에서 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 장면은 며칠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임원들과 팀장급 이상 간부 십여 명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회장은 사장을 향해 격한 톤으로 질책했다.
회의는 형식상 경영 보고 자리였지만, 실제로 그 공간을
지배한 것은 숫자도, 전략도 아니었다.
권력이었다.
그날 나는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눈으로 보았다.
오너의 3심
그 장면을 보며 ‘오너의 3심(욕심·의심·변심)’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성과를 향한 욕심, 통제하려는 의심, 그리고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변심.
이는 단순한 개인의 성향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권력이 한곳에 집중된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속성처럼 느껴졌다.
특히 회장과 사장이 부자(父子) 관계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부자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 존재한 것은 ‘권력을 쥔 사람’과
‘그 권력 아래 선 사람’뿐이었다.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그 문장이 왜 생겨났는지, 나는 그날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했다.
100% 지분 구조가 만드는 현실
이 회사는 일가족이 지분 100%를 보유한
비상장 중견기업이다.
지배적 대주주가 분명한 구조 속에서 최종 의사결정은
사실상 한 사람에게 크게 귀속된다.
물론 제도적 장치와 내부 통제 체계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분이 한쪽으로 집중된 환경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형식적으로 존재하더라도 실제 작동 방식은 지배적 대주주의 판단과 성향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기 쉽다.
지배구조는 단순히 법적 틀이 아니라, 권력이 어디에
모여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참모의 딜레마
이런 구조에서 역설적으로 더 중요해지는 존재가 있다.
바로 참모다.
권력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곁에서 방향을 조정하고,
필요한 순간에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으면서도 소신을 지키는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침묵은 안전하지만 방조가 될 수 있다.
직언은 필요하지만 관계를 흔들 수 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어쩌면 그것이 참모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분위기는 말없이 변한다
조직은 권력의 질서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그 질서가 공개된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지는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다.
나는 그날, 회의실 안 사람들의 표정과 시선,
줄어든 말수 속에서 분위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변화를
읽었다.
누군가 한 사람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다른 이들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권력은 한 사람에게 집중될 수 있지만,
그 영향은 조직 전체로 확산된다.
ESG의 G, 그리고 현실
요즘 우리는 ESG를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Governance, 즉 지배구조를 강조한다.
이사회 구성, 내부통제, 규정과 프로세스.
그러나 지분이 한쪽으로 집중된 비상장 기업에서
선진적 지배구조를 구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지배적 대주주의 의중이 회사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 속에서, 지배구조는 선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문화의 문제다.
이상은 제도로 만들 수 있지만,
균형은 권력의 분산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권력의 감정에 잠식되지 않아야 한다.
구조를 냉정하게 이해하되, 감정의 편에 기대어서도 안된다.
그리고 공개적 질책이 남긴 보이지 않는 균열을 조용히
메워야 한다.
현실의 구조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지분 구조도, 권력의 흐름도 단기간에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어떤 자세로 서 있을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권력은 쉽게 나뉘지 않는다.
특히 혈연이 얽힌 구조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원칙의 중심에 서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권력에 기대어 움직였던 사람이 아니라
권력 속에서도 스스로의 기준을 지켜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